산불 산불 * 권 천 학 잠시 다녀가는 가을을 따라 숲길 걷다가 불바다 만나 화들짝 걸음을 멈춘다 누가 질렀을까 이 큰불! 확 버리고 싶다 타오르던 갈망으로 목 마르던 팔색조 힘겨운 날개짓으로 떨어트린 깃털 한 개 바람에 날리고 있을 먼 섬의 산굼부리 어딘가도 새별오름 어딘가도 .. 권천학의 시마을 2011.12.13
시- 가을 조문(弔問) 가을 조문(弔問) 계절장(葬)이 치러지고 있는 가을 조문객들이 넘친다 일생에 단 한 벌 마지막 떠나가는 길 밝힐 치장으로 마련해둔 무색옷 빛 곱게 갈아입은 나무들의 수의(壽衣) 온 산 가득 눈부시다 시집 올 때 차려입었던 단 한 벌의 물 고운 호사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어.. 권천학의 시마을 2011.11.22
시-묵계서원에서 바람차 한 잔 묵계서원에서 바람차 한 잔 권 천 학 장마철 지난 탓인지 가르침 외면한 채 살아가는 눅눅한 죄스러움 탓인지 낡은 기둥 받들고 있는 주춧돌 틈에 삿갓 쓴 버섯 돋아 조용하고 허물어진 담장을 타넘어 햇살도 가득, 소리 없이 뿌려지는 뜰 안 매미들끼리 모여서 글 읽는 소리 쟁쟁.. 권천학의 시마을 2011.11.06
시-낙동강 낙동강 권 천 학 흔들지 마라 무심(無心)의 발걸음으로 너덜샘을 떠나 구불구불 골짜기들을 지나서 안동 땅 감아 안느라 허리 휘어가며 모래턱 만들어 쉬엄쉬엄 내닫기도 하고 철교 아래 이르러 피 묻은 한 시대의 시름으로 굳어진 녹물 씻어내며 한 숨 참고, 더러 고시랑거리는 .. 권천학의 시마을 2011.11.06
시-지식은 똥 * 권 천 학 지식은 똥 * 권 천 학 닥터 팽이 진료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는 동안 이십 칠 개월 된 말썽장이 아리가 이 구석 저 구석 제 맘대로 통통통통 뒤따라 다니며 말리느라 힘 드는 나를 아랑곳없이 진료실 옆의 연구실 문을 벌컥 연다 빈 방, 문 옆에 뼈로 서 있는 사람 실제크기의 인체골격구조 앞에서 아리의.. 권천학의 시마을 2011.05.05
서설 * 권 천 학 서설 * 권 천 학 -새해 아침에 쓰는 편지 서설, 좋은 징조라지요 때마침 새해 첫날 이곳에도 눈이 펑펑 쏟아집니다 허공이 뿌옇습니다. 마치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하던 지난날들의 어느 한 때 같습니다 만남도 시작도 언제나 순백의 눈송이었지요 또 다시 시작되는 한 해의 첫 기.. 권천학의 시마을 2011.03.13
시-아웃 사이더 아웃 사이더 --콜렉터 6 권 천 학 문밖에서 오래 서성이는 한 사람을 보았네 햇빛도 고도를 낮추고 지친 꿈들이 무거운 몸으로 서서히 내려앉는 그 시각 흘러나오는 웃음소리를 그리워하면서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의 날 선 체온을 두려워하면서 세상의 중심으로 따뜻함 속으로 뛰어들지도 달.. 권천학의 시마을 2010.04.19
<시>제재소 옆을 지나며 <시> 제재소 옆을 지나며 權 千 鶴(시인) 속살의 아픔 한가운데를 지나가는 톱날소리를 들으며 한 생애를 뭉턱 뭉턱 잘라먹는 톱날소리를 들으며 나이테 속으로 얇게 얇게 저미는 톱날소리를 들으며 무너진 몸뚱이의 옹이를 파내는 톱날 소리를 들으며 죽지 못한 가지들을 쳐내는 톱날소리를 들으.. 권천학의 시마을 2010.03.26
시-우리중의 누구는 <시> 우리 중의 누구는 * 권 천 학 우리 중에 누구는 쇠 날을 싸잡아 힘 잡아주는 대패가 되고 우리 중의 누구는 싸늘하게 식어 살아있는 날이 되고 우리 중에 누구는 대패 날에 깎이어 반들반들 모양새 갖추어 다시 태어나고 우리 중에 누구는 쇠 날과 대패 사이에서 대패 밥으로 으스러지고 말기.. 권천학의 시마을 2010.03.11
시 <안개마을> 안개 權 千 鶴 덮어 두게나 속세에 뒹구는 아랫도리 흰 설움 붉은 웃음도 조금은 감추고 더러는 잊어가며 그냥 그렇게 먼발치서 보게나 가까이 너무 가까이는 말고 조금만 당겨 서게 나무가 나무로 바위가 바위로 그리하여 숲이 되듯이 나, 여기 한 떨기 꽃으로 그대, 저만큼 한 무리 그리움으로 그냥 .. 권천학의 시마을 2010.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