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모 탈모 權 千 鶴 (시인) 낙엽이 진다 11월, 한 살이 마치고 때가 되어 돌아가는 길목 한 계절 때늦어 돌아 못 가는 발길 눈물겹다 활활 타올라 하늘에 이르고 싶은 시간의 심지에 이루지 못한 꿈들이 뽑혀 나와 제 몸에 불 지르며 소신 공양하는 해거름 한 웅큼의 꿈도 이루지 못해 앓다 지친 잎 거울 속 .. 권천학의 시마을 2009.10.09
경고 -휴전선 2 경고 ―휴전선․2 權 千 鶴 전쟁이 꿈이 아니 듯 통일도 꿈이 아닐 것 세계 지도 위에서 덩치 큰 싸늘한 이름이 지워지듯 깊게 패인 휴전선도 지워질 것 철조망을 풀 것 이데올로기의 사슬도 풀어 버릴 것 낫과 망치에 으깨어지던 자유를 구할 것 지뢰 뽑은 자리에 민주의 꽃모종을 할 것 해빙기에 부는.. 권천학의 시마을 2009.09.21
임진각에서 임진각에서 權 千 鶴 아비도 늙히고 아들도 늙히는 세월에 눈마저 멀었는지 눌물 밖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Let the iron horse run again’ 어느 나라 사람들이 끄적인 말인지는 몰라도 어릴 적 추억 속에 내닫던 논둑길 밭둑길 같습니다 기적 울리고 달려가는 미카 3, 244를 따라 가랑이 사이에 불 지.. 권천학의 시마을 2009.09.18
시-한 그루 사과나무 <시> 한 그루 사과 나무 권 천 학 (시인) 내가 한 그루 나무일 때 어린 시절 노오란 꿈이 매달린 탱자 울타리 안의 한 그루 사과나무일 때 ‘고향’이라는 단어는 봄마다 돋는 새싹이 되고 잊히지 않는 기억들은 새싹 위에 올라앉아 꽃으로 벙글었다 안간힘으로 버티는 한 그로 나무가 되어 목숨에 .. 권천학의 시마을 2009.09.16
시-망향단의 바람 망향단의 바람 ―휴전선 權 千 鶴 멈춰있는 시간 위에 우리는 우두커니 서 있었다 하염없는 길 끝에 우리들 아버지의 고향이 있으련만 행선지 없는 푯말에 걸려 주저앉은 향수가 검푸른 절망의 웅덩이로 고여있었다 단절의 시대를 사는 마른풀들이 야윈 모습으로 시들어 가는 갈색의 계절 생전에 고.. 권천학의 시마을 2009.09.14
<시>실향민 金씨 <시> 실향민 金씨 權 千 鶴 황해도 수안군 율계면 당치리 288번지를 전쟁에 잠시 비워 둔 1922년생의 金씨는 강원도 정선군 북면 고한리 혹은 명주군 강동면 산성우리(山城遇里)에 임시 주소를 두고 살면서 될수록 휴전선 가까운 곳에서만 살면서 바람처럼 떠돌다가 죽어 새가 되리라 되뇌곤 했다 계.. 권천학의 시마을 2009.09.10
탈출 탈출하고 싶다 권 천 학 탈출하고싶다 시멘트 골조 딴딴한 허공 심장의 고동소리와 맥박소리를 엿듣는 벽 속의 귀 숨막히는 빈집으로부터 파헤쳐진 길바닥과 열려있는 맨홀 속의 궁창으로부터 가던 길 돌려세우는 U턴의 횡단보도 앞에서 쓰레기 매립지로 떠나는 무쇠트럭 하수종말처리.. 권천학의 시마을 2009.08.10
시-어머니 시-어머니 어머니 권 천 학 땀 젖은 베적삼에 올올이 배인 한숨일레 정한수 흰 사발에 말갛게 씻긴 세월 저승길도 넘나드는 치성으로 어둠을 닦아내고 추위도 몰아내고 무명실 굵은 물레에서 비단정성 뽑는 이여 온갖 푸성귀 고루 심은 텃밭에서 참깨꽃 아욱꽃 때 맞춰 피어내고 자고나면 움트고 키 .. 권천학의 시마을 2009.07.05
시-철원평야 2 . 헛된 약속의 땅 <시> 철원평야 2 . 헛된 약속의 땅 권 천 학(시인) 온몸이 통째로 슬픔의 귀가 되는 약속의 땅 사지(四肢)가 찢겨나간 자유의 토막들이 아직도 채워진 수갑을 못 푼 채 조국을 부르는 소리 노동당사의 지하실에 갇힌 피울음을 하늘로 하늘로 퍼내는 죽지 찢긴 솔개미 탱크 바퀴에 깔렸던 풀잎들은 소.. 권천학의 시마을 2009.06.26
철원평야 1 . 달라진 것 없다 <시> 철원평야 1 ' 달라진 것 없다 권 천 학(시인) 텅 비어 있었다 다만 기다림에 야윈 억새풀과 매서운 북풍과 겨울을 쪼는 갈가마귀떼와 빈 들녘 그리고 그것들을 지키는 허수아비 뿐 아무도 없었다 다만 검게 끄슬린 채 뿌리 뽑힌 주춧돌과 들 곳 없어 떠도는 기적소리와 언 땅 밑에서 뒤척.. 권천학의 시마을 2009.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