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 주전자 바위 주전자 바위 * 권 천 학 아버지는 늘 아름다운 모습으로 취해 있으시다 빈 주전자를 들리운 채 등 떠밀려 내닫던 유년의 골목길엔 눈물이 그렁그렁 출렁이는 바다를 품어 안고 휘청휘청 출렁이는 세월을 노 저으시던 아버지 주전자 속의 꿈을 조금씩 따루어 마시며 가슴을 비워내시고 바람 소리 가.. 권천학의 시마을 2010.03.04
춘분 춘분 * 權 千 鶴 봄이면 눈이 없어도 눈 뜰 줄 아는 나무처럼 땅심 깊숙이 물관부를 열고 투명한 물길을 여는 나무처럼 먼 가지 끝 잎새까지 초록등불 밝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나무처럼 눈 감고 있으면서 속 눈 틔우는 나무처럼 실버들 가지 연두 빛으로 몸 트기 시작하는 춘분 때 쯤 환절기의 몸살감.. 권천학의 시마을 2010.03.01
시-삶의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 삶의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 * 權 千 鶴 여행에서 돌아온 그 자리에서 또 다시 시작되는 여행 깊이를 알 수 없는 내 우수의 샘가에 삶의 안자락 담그는 그대 껍질 두터운 꽃씨 품고 앓는 계집의 텃밭 허무의 밭이랑에 개간의 곡괭이 내려 꽂는 든든한 사내 쌓인 치정 헐어내는 빈 계절의 신새벽 펄펄 .. 권천학의 시마을 2010.02.20
시 <낮은 목숨들끼리> 낮은 목숨들끼리 * 권 천 학 -앉은뱅이 채송화 토막토막 잘린 몸둥이 땅에 묻으면 또다시 피가 돌고 함께 잘린 조각들을 모아 다시 여는 새 날 소중한 목숨들끼리 도란도란 작으면 작은 대로 상처로 남아야 하는 이 시대의 아픔 마다 않고 함께 하는 낯익은 얼굴들 보통의 목숨들끼리 다둑다둑 가난.. 권천학의 시마을 2010.02.17
시-안개*권천학 안개 權 千 鶴 덮어 두게나 속세에 뒹구는 아랫도리 흰 설움 붉은 웃음도 조금은 감추고 더러는 잊어가며 그냥 그렇게 먼발치서 보게나 가까이 너무 가까이는 말고 조금만 당겨 서게 나무가 나무로 바위가 바위로 그리하여 숲이 되듯이 나, 여기 한 떨기 꽃으로 그대, 저만큼 한 무리 그리움으로 그냥 .. 권천학의 시마을 2010.02.05
시-각, 12월을 깨닫다 각(覺) -12월을 깨닫다 權 千 鶴 수레 짐이 무거워 덜고 덜어가면서 끝내 다다른 길 끝 등마루 섣달 여벌 옷 조차 없이 가파르게 선 흰 소 한 마리 오르면 닿으리라 믿었던 하늘 또다시 저만큼 서 있고 숲도 구름도 그 아래 여여하다 바퀴 아래 깔린 시간들이 시퍼렇게 일어서는 모서리에 마지막 짐 내려.. 권천학의 시마을 2010.02.02
시-금둥불상앞에서 금동불상 앞에서 * 權 千 鶴 -부처꽃 법대로 살게 해 주십시오 법 없이도 살게 해 주십시오 본디 땅에 발붙이고 사는 척추동물 답게 하늘로 머리 두고 살게 해 주십시오 굽은 길 위에서도 반듯하게 걷고 자갈 박힌 마른 길가에 자잘한 꽃 피워 올릴 줄 알게 하시고 조금은 모자라게 채우는 재미로 만족.. 권천학의 시마을 2010.01.31
시-풍란 풍란 권 천 학 문수보살을 만나 극락에 오른다 바람 속에서 건강한 햇살만 골라 담은 치마폭 흙 발자욱 새겨진 대궁이에서 마알간 꽃 한 송이 뽑아 올린다 향기 머금은 미소로 세상의 기름기 걷어낸다 <메모> 아무리 시끌벅적한 세상이라도 어디 한 줄기 맑은 샘 숨어있고, 아무리 지저분한 세.. 권천학의 시마을 2010.01.24
시-그 오랜 이름 사랑에게 그 오랜 이름 사랑에게 * 權 千 鶴 그날 밤 꿈자리에 바늘이 부러지더군요 누비던 꿈 개켜 시렁에 얹어버렸지요 믿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왠지 가슴이 따끔거리며 서늘했어요 그뿐이었어요 오래 전의 일 그런대로 예사로운 날들이었지요 미열이 나는 날도 있고 딸꾹질을 하기도 해고 가.. 권천학의 시마을 2010.01.15
시-쓰레기는 아름답다 쓰레기는 아름답다 權 千 鶴 섣달그믐 무렵 년 내내 모아진 각종 영수증을 정리할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곧 빚지는 일이고 쓰레기를 만드는 서글픈 노동이고 나도 세상을 더럽히는 쓰레기일 뿐이라는 통증 때문에 일어나는 스파크 100볼트의 전류가 일으키는 심장발작 해마다 섣달은 오고 나는 여.. 권천학의 시마을 2010.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