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계서원에서 바람차 한 잔
권 천 학
장마철 지난 탓인지 가르침 외면한 채 살아가는 눅눅한 죄스러움 탓인지 낡은 기둥 받들고 있는 주춧돌 틈에 삿갓 쓴 버섯 돋아 조용하고 허물어진 담장을 타넘어 햇살도 가득, 소리 없이 뿌려지는 뜰 안 매미들끼리 모여서 글 읽는 소리 쟁쟁한 9월의 묵계서원
삭아가는 세월 잠긴 대문 빗장에 걸려 기진해있고 주인도 문지기도 없는 자갈마당에 잡초 우북하여 집 안팎이 온통 쓸쓸함 뿐인 빈집 빈 마당
조용히 귀를 열어 나지막하게 글 읽는 소리 듣고 있는 녹슨 자물통 늙은 몸으로 댓돌 위에 누워있는 무심한 한 시대를 무심으로 지키고 있어 옛 어른의 한 세월이 무색하여 돌아서다가 나지막한 처마 아래, 입을 다문 채 내려다보고 있는 현판과 눈인사 나누는 사이 안부 궁금하던 차 헐린 담장을 넘어 마실 나온 까치 한 마리 앞장 선다
지나가던 바람 한 줄기 서둘러 문밖에서 읍하더니 너울너울 손 흔드는 칡넝쿨과 함께 마지막 예를 올리며 바람에 꿀을 풀어 타내는 바람차 한 잔, 칡꽃 향기가 그나마 빈 가슴을 달래준다
(문학마실 11월, 18호)
----------------------- 약력
*여원에 단편 「모래성」당선, 부록으로 출간. *여성중앙에 단편 「끊임없이 도는 풍차」당선. * 시 「지게」, 「삶의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현대문학 데뷔. * 「저녁노을 붉은 꽃」, 「끈」등 드라마 당선(KBS, SBS) *월간 어머니 편집장, 풀잎문학 주간 역임. *서울신문 컬럼니스트, 관악문화신문 논설위원, 컬럼니스트 역임. *진단시동인 역임. *한국전자문학도서관 웹진 『블루노트』발행(2002~2007년). *시 「2H₂+O₂=2H₂O」외 16편으로 하버드대학 번역대회 우승. *단편 「오이소박이」로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시 「금동신발 」외 9편으로 코리아타임즈 번역대회 시부문 우승
*저서 첫시집 『그물에 갇힌 은빛 물고기』을 비롯 최근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 까지 단독시집 9권 공저, 동인지 다수 편저 <속담 명언 사전>
현재 토론토 거주.
http://mail2.daum.net/hanmailex/Top.daum#cmd__ReadMail
|
'권천학의 시마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불 (0) | 2011.12.13 |
---|---|
시- 가을 조문(弔問) (0) | 2011.11.22 |
시-낙동강 (0) | 2011.11.06 |
시-지식은 똥 * 권 천 학 (0) | 2011.05.05 |
서설 * 권 천 학 (0) | 2011.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