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조문(弔問)
계절장(葬)이 치러지고 있는 가을 조문객들이 넘친다
일생에 단 한 벌 마지막 떠나가는 길 밝힐 치장으로 마련해둔 무색옷 빛 곱게 갈아입은 나무들의 수의(壽衣)
온 산 가득 눈부시다
시집 올 때 차려입었던 단 한 벌의 물 고운 호사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어머니
평생을 호미질로 자갈밭 가꾸느라 멀고 눈물겹던 길 끝 화사함에 콧잔등이 시큰거린다
가슴에 품어 안은 돌에 윤기 올려 시로 엮어내느라 고단했던 나의 이별식에서도 한 편의 마지막 시가 빛으로 부화하여 슬픔의 한 모서리를 쓰다듬어주는 화사한 노래가 될까
불꽃이 되어 세상 어느 귀퉁이 어둠 한 나절이라도 밝혀 줄 작은 등으로 내걸릴 수 있음이니
만장(輓章) 앞세워놓고 꽃상여 짊어진 산이 울먹울먹 찬란한 이별사(離別詞)에 취하여 휘청거린다
<메모> 잘도 익은 열매들, 바라만 봐도 눈이 부신데, 잘 살아온 지난 계절의 흔적들 모두 지우고 떠나려는 가을의 이별법이 더욱 애잔하다. 그 이별 뒤에 오는 회한 때문이리라. 그 이별 뒤에 오는 약속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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