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시-묵계서원에서 바람차 한 잔

천마리학 2011. 11. 6. 12:29

 

 

 

 

 

 

 

 

 

묵계서원에서 바람차 한 잔

 

권 천 학

 

장마철 지난 탓인지

가르침 외면한 채 살아가는 눅눅한 죄스러움 탓인지

낡은 기둥 받들고 있는 주춧돌 틈에

삿갓 쓴 버섯 돋아 조용하고

허물어진 담장을 타넘어

햇살도 가득, 소리 없이 뿌려지는 뜰 안

매미들끼리 모여서 글 읽는 소리 쟁쟁한

9월의 묵계서원

 

삭아가는 세월

잠긴 대문 빗장에 걸려 기진해있고

주인도 문지기도 없는

자갈마당에 잡초 우북하여

집 안팎이 온통 쓸쓸함 뿐인

빈집 빈 마당

 

조용히 귀를 열어

나지막하게 글 읽는 소리 듣고 있는

녹슨 자물통

늙은 몸으로 댓돌 위에 누워있는

무심한 한 시대를 무심으로 지키고 있어

옛 어른의 한 세월이 무색하여 돌아서다가

나지막한 처마 아래, 입을 다문 채

내려다보고 있는 현판과 눈인사 나누는 사이

안부 궁금하던 차

헐린 담장을 넘어 마실 나온 까치 한 마리

앞장 선다

 

지나가던 바람 한 줄기

서둘러 문밖에서 읍하더니

너울너울 손 흔드는 칡넝쿨과 함께

마지막 예를 올리며

바람에 꿀을 풀어 타내는 바람차 한 잔,

칡꽃 향기가 그나마 빈 가슴을 달래준다

 

 

 

 

 

낙동강 권 천 학 흔들지 마라 무심(無心)의 발걸음으로 너덜샘을 떠나 구불구불 골짜기들을 지나서 안동 땅 감아 안느라 허리 휘어가며 모래턱 만들어 쉬엄쉬엄 내닫기도 하고 철교 아래 이르러 피 묻은 한 시대의 시름으로 굳어진 녹물 씻어내며 한 숨 참고, 더러 고시랑거리...

 

(문학마실 11월,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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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여원에 단편 모래성당선, 부록으로 출간.

*여성중앙에 단편 끊임없이 도는 풍차당선.

* 시 지게, 삶의 중심으로 떠나는 여행으로 현대문학 데뷔.

* 저녁노을 붉은 꽃」, 「등 드라마 당선(KBS, SBS)

*월간 어머니 편집장, 풀잎문학 주간 역임.

*서울신문 컬럼니스트, 관악문화신문 논설위원, 컬럼니스트 역임.

*진단시동인 역임.

*한국전자문학도서관 웹진 블루노트발행(2002~2007년).

*시 2H₂+O₂=2H₂O외 16편으로 하버드대학 번역대회 우승.

*단편 오이소박이로 경희해외동포문학상 대상 수상.

*시 「금동신발 」외 9편으로 코리아타임즈 번역대회 시부문 우승

*저서 첫시집 그물에 갇힌 은빛 물고기을 비롯 최근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 까지 단독시집 9권

공저, 동인지 다수

편저 <속담 명언 사전>

현재 토론토 거주.

이메일 im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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