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시 <안개마을>

천마리학 2010. 3. 8. 04:53

 

 

 

 

 

안개

 

 

權 千 鶴

 

 

 

 

 

 

  

덮어 두게나

속세에 뒹구는 아랫도리

 

흰 설움

붉은 웃음도

조금은 감추고

더러는 잊어가며

그냥 그렇게

먼발치서 보게나

 

가까이

너무 가까이는 말고

조금만 당겨 서게

 

나무가 나무로

바위가 바위로

그리하여 숲이 되듯이

나, 여기 한 떨기 꽃으로

그대, 저만큼 한 무리 그리움으로

그냥 그렇게

그러나

무심하지는 말게

 

 

 

 

 

 

숲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무심한 듯 하다. 그리고 말이 없다. 바위는 바위대로 무심하고, 나무는 나무대로 무심하고, 이끼는 이끼대로 무심하다. 그 무심한 사이를 오가는 발 달린 것들, 뛰고 기고 날아다니면서 그 또한 무심하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무심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자연의 성경을 이미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말없이 숲을 감싸 안는 안개를 보고 숲의 모든 것들이 다 무심하지 않고, 안개 또한 무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의 성경구절에서 섭리의 장을 읽어낸 것이다.

숲의 모든 것들이, 안개까지도 다 무심하지 않고, 다 제 모습을 갖추고 있고, 무엇인가를 다 말하고 있고, 그리고 서로서로 소통하고 있음도 알게 된다.

숲을 보려면 세상을 보면 된다. 세상을 보면서 숲을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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