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분 * 權 千 鶴
봄이면 눈이 없어도 눈 뜰 줄 아는 나무처럼 땅심 깊숙이 물관부를 열고 투명한 물길을 여는 나무처럼
먼 가지 끝 잎새까지 초록등불 밝히는 마음의 눈을 가진 나무처럼 눈 감고 있으면서 속 눈 틔우는 나무처럼
실버들 가지 연두 빛으로 몸 트기 시작하는 춘분 때 쯤 환절기의 몸살감기를 앓는 내 삶의 낮과 밤 일교차 심한 봄추위 속에서 어느 새 새 촉을 뽑아 올리며 푸릇푸릇 몸을 튼다
봄이면 으례히 봄병을 앓는다. 그 깊은 어둠과 추위와 고독이라고 하는 쓴 커피맛이 한데 어우러져 가슴 저 밑바닥을 문질러대는 밤마다 나는 늘 꿈꾸면서 아프면서 절망하면서 기쁘다. 싹이 나느라 살집이 터지는 아픔. 가지가 뻗느라 고 찢어지는 아픔, 잎이 피느라, 꽃을 피워내느라 온몸을 바쳐 열매 맺느라 나는 아프다. 애써 피워낸 꽃과 잎을 지우면서 열매를 익힌다. 그리고 지는 꽃잎을 위해 나는 또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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