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權 千 鶴
덮어 두게나 속세에 뒹구는 아랫도리
흰 설움 붉은 웃음도 조금은 감추고 더러는 잊어가며 그냥 그렇게 먼발치서 보게나
가까이 너무 가까이는 말고 조금만 당겨 서게
나무가 나무로 바위가 바위로 그리하여 숲이 되듯이 나, 여기 한 떨기 꽃으로 그대, 저만큼 한 무리 그리움으로 그냥 그렇게 그러나 무심하지는 말게
숲에 가면 모든 것이 다 무심한 듯 하다. 그리고 말이 없다. 바위는 바위대로 무심하고, 나무는 나무대로 무심하고, 이끼는 이끼대로 무심하다. 그 무심한 사이를 오가는 발 달린 것들, 뛰고 기고 날아다니면서 그 또한 무심하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무심하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면 자연의 성경을 이미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말없이 숲을 감싸 안는 안개를 보고 숲의 모든 것들이 다 무심하지 않고, 안개 또한 무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자연의 성경구절에서 섭리의 장을 읽어낸 것이다. 숲의 모든 것들이, 안개까지도 다 무심하지 않고, 다 제 모습을 갖추고 있고, 무엇인가를 다 말하고 있고, 그리고 서로서로 소통하고 있음도 알게 된다. 숲을 보려면 세상을 보면 된다. 세상을 보면서 숲을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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