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226

새해아침의 기도 * 權 千 鶴

새해아침의 기도 * 權 千 鶴 또 새롭게 하소서 지금까지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지금까지 살던 집 그대로 살고 지금까지 쓰던 물건 그대로 쓰고 지금까지 만나던 사람 그대로 만나며 다만 정갈하게 그 모든 것이 오롯한 고마움이며 축복임을 알게 하소서 세상 어디 시작 없이 끝이 있었던가 태어나지 않은 죽음 없고 젊음을 건너뛰어 늙을 수 없음을 젊은이는 푸르되 들뜨지 않게 젊지 않은 이는 나이에 순종하며 늙되 낡지는 않게 있던 그 자리가 새로운 시작임을 눈 뜨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이 기적임을 알게 하소서

시조-산수국

산수국(山水菊) * 權 千 鶴 산수국(山水菊) * 權 千 鶴 물결 진 그리움에 아슴한 들녘 저 편 보랏빛 꽃등 켜고 손짓하는 그 사람 시큰한 눈두덩 위로 산자락이 환하다 Hydrangea Cheonhak Kwon Translated by Hana Kim and John Mokrynskyj In my waves of longing, Is that someone beckoning to me from the far side of that field carrying a purple flower lantern? The base of the mountain is dazzlingly bright to my swollen eyes.

꽃의 자서전

페북에서 꽃의 자서전 권천학 정류재 문학관의 소나무 열 서너 살쯤엔 레이스 달린 드레스가 입고 싶었어요 스무 서너 살 땐 흑진주가 박힌 관을 쓰고 싶었어요 시른 서너 살 무렵엔 활활 타고오르고 싶더군요 그러다 마흔 서너 살이 되니까 빨간 인주의 낙관이 갖고 싶었어요 쉰 서너 살쯤엔 서리에도 지워지지 않는 시 한 편 갖고 싶었어요 그리고나서 또 다시 긴 꿈을 꾸며 당신의 꽃밭에서 목숨 곱게 용수 내리고 싶어요 -시집에서 *권천학 시인은 소박한 소년의 꿈에서 서서히 시인의 향을 느끼고 유명한 시인으로 거듭 났다. 안동에서 일본 다시 김제 거쳐 익산에서 전주, 서울로... 국내에서 을 자처하며 천 마리 학 떼를 몰고 다닌다. 그는 캐나다에서도 알라스카로 갔다가... 밴쿠버에서 온타리오로... 세계적 청정지역에..

그들에게 경의를

회원여러분! 부디 지치지 마시고, 힘을 내어 꿋꿋하게 견디시기 바랍니다. 하늘은 맑고 푸릅니다. 불청객 COVID-19가 설치거나말거나. 그런곳이 또 있습니다. 바로 우리들, 회원여러분들의 마음속입니다. 싱싱함을 잃지말고 꿋꿋하게 고비를 넘기고 있는 우리들의 마음은 푸르고 싱싱합니다. 푸르고 싱싱한 곳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박우삼님의 하늘텃밭(우삼님은 '하늘정원'이라고 하시지만)입니다. 그곳에서 푸르름과 싱싱함이 자라고 있습니다. 우삼님의 돌봄을 받으며... 그들에게 경의를 * 권 천 학 박우삼님의 하늘텃밭의 상추, 싱싱함이 솟구치는 모습이 보이죠? *************************************************** 그들에게 경의를! * 권 천 학 시인. 국제PEN한국본부 이사..

하하하...아리에게

웃음으로 시작하는 하루!! 오늘아침에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화장실 구석 창 아래에 웬 남자가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구요. 저와 손자 손녀 셋이서 사용하는 화장실인데 느닷없이 웬 남자가 입술에 담배를 꼬나물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답니다. 보세요! 오래 전 아리를 위해서 쓴 시가 떠올랐습니다. ************ Ari -3살2개월된 아리에게 할머니 권천학 환하게 떠오르는 햇덩이를 빼닮았구나 봄바람에 피어나는 꽃송이를 닮았구나 맑은 눈과 뾰족한 입 새 세상이 열리고 새싹이 돋고 그 빨간 입술로 옹알옹알 몸짓으로 통하는 아리 나라 말 우주에 안 통하는 것이 없구나 콩 콩 콩 너를 따라가면 콩 콩 콩 새 세상이 열리고 하 하 하 네 손을 잡으면 하 하 하 새 하루가 열린다 *..

아이러니,Irony

"Si vis pacem para bellum!" 오늘은 625동란 70주년이 되는 날, 마음을 여미며 생각해봅니다. 누군가 말했습니다. "평화적 수단으로만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국가는 머지않아 다른 국가에게 흡수될 것이다" 또 누군가는 말했습니다. "좋은 전쟁도, 나쁜 평화도 결코 없다"고. 그리고, "평화를 위한 전쟁은 순결을 위한 성행위와 같다"고도 했습니다. 아이러니, Irony * 권 천 학(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Si vis pacem para bellum!" ‘평화의 댐’에 가면 평화를 지키는 대포가 하늘을 향해 위풍당당하다 살인을 막는다고 살인을 하는 사형제도가 철석같듯이 전쟁을 증오하고 평화를 지켜야한다면서 평화의 심장을 향해 조준되어있는 대포 평화의 이름으로..

제2땅굴에서

북한의 땅굴은 모두 남침용입니다. 1997년 미국의 해병대에서 발간한 '북한 핸드북'에 따르면 20여개로 추정된다고 하고, 우리나라에서 발견한 땅굴은 4개입니다. 제1땅굴은 1974년 연천에서, 제2땅굴은 1975년 철원에서, 제3땅굴은 1978년 파주에서, 제4땅굴은 1990년 양구에서입니다 제가 제2땅굴을 방문한 것은 발견된 얼마 후였습니다. 군사분계선에서 1,2km 떨어진 곳이었고, 2명이 동시에 총검을 매고 걸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습니다. 시간당 구보로 2만4천명의 군인이 남한 즉 발견된 철원으로 쏟아져나올 수 있다고 했습니다. 6.25남침 70주년이 되는 오늘, 다시한번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그 날, 땅굴의 막장까지 갔다나오면서 들었던 물방울 소리와 음습한 습기가 지금도 느껴집니다. 제2땅..

노동당사에서

ㅇ 지난 6월16일,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1년9개월만에 폭파되었습니다. 우리의 자존심과 540조가 넘는 세금이 한 순간에 날아가버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노동당사에서 * 권 천 학 온몸이 통째로 슬픔의 귀가 되는 약속의 땅 사지가 찢겨나간 자유의 토막들이 아직도 채워진 수갑을 못 푼 채 조국을 부르는 소리 노동당사의 지하실에 갇힌 피울음을 하늘로, 하늘로 퍼내는 죽지 찢긴 솔개미 탱크 바퀴에 깔렸던 플잎들은 소리 없이 일어서고 참호마다 싸늘하게 내려앉은 어둠은 병사의 가슴을 관통시킨다 북녘의 바람은 좌표를 잃는 채 정처 없이 떠돌다가 마른나무 가지에 걸려 연(鳶)이 되고 족쇄 채워진 소망을 두른 채 떨고 서 있는 겨울 나무의 숨소리 오래 전, 제가 방문했을때의 노동당사입..

아버지의 흔적

아버지의 흔적 * 권 천 학 사부곡 1 무적함대였던 등판과 막강했던 어깨가 아버지였다 힘없는 두 다리 사이, 습하고 냄새나는 아버지의 부자지를 주물럭거려가며 내가 태어난 DNA의 통로가 되어준 흔적과 씨앗주머니의 주름 사이사이를 닦는다 퀴퀴한 역사의 어두운 길을 더듬어 들어간다 초점 없는 시선으로 그윽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아버지, 부끄러움도 없다 어쩌면 아버지는 지금 생명의 근원이 되는 바이칼 어디쯤을, 고비사막의 모래언덕 어디쯤을 찾아 헤매며, 원시 이전의 시간이 고여 있는 웅덩이를 응시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회로의 어디쯤에서 우린 만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 돌아오세요!

아버지의 등골

나라를 위하여 건강합시다! 오늘은 캐나다의 '아버지 날'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버이날'로 통합하였습니다. 아버지! 그 거룩한 이름을 기념하기 위하여! 오늘 하루, 가슴 뜨겁게 불러봅시다. 아 버 지 ! 친구가 보내준 해바라기 이미지를 모든 아버지께 바칩니다. 우리들에게 아버지는 해바라기 같은 존재이니까요. 우리집의 젊은 아버지, 패트릭, Patrick을 위하여! 아버지의 등골 * 권 천 학 아버지 등골은 산맥이다! 들어갈수록 깊어지고, 들어갈수록 우뚝해지는 산맥이다 그 산맥 오르내리며 살고 또 살았다 살고 또 살며 우뚝우뚝, 넘어진 자리마다 세워놓은 돌 표지석 움푹진푹 피해가며 걷던 벼랑길, 아슬아슬 줄 타던 아버지의 그 산맥에서 아버지의 등골은 깊은 강이다! 흐르고 또 흐르면서 낮은 곳 후미진 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