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연재시53-내가 만난 부처-시집<나는 아직 사과씨 속에서>중에서

천마리학 2013. 9. 26. 22:30

 

 

연재53회

 

 

내가 만난 부처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아오지의 탄광촌 가파른 언덕배기, 무너진 흙더미에서 만난매미가 떠올랐다. 팔다리도 잘라내고 날개도 떼어버린 채 아직은 번데기였던 매미

 

폐허가 된 인생의 막장에서 비틀거리는 빈혈의 여름날, 나무 위의 푸르름에 걸터앉아 잠시 땀을 걷어주던 그 연주가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지상에서의 짧은 여름 한 철을 보내기 위해서 그토록 오랜 시간을 엎드려 보내야 하다니. 모진 형벌의 매미가 끔찍스러웠다

 

내 팽개쳐진 또 하나의 삶, 구체적인 불행의 현장을 목격해야 하는 기막힌 내 인생의 어깨를 툭 쳤다. 지상에서 보내는 짧은 여름 한 철이 곧 삶이라면 땅 속에 엎드려 보내야 하는 어둠의 시간은 가장 빛나는 삶이라고. 날개를 부벼 큰 소리로 연주하던 노래가 아름다웠다면 땅 속에 엎드려 묵언 기도로 바쳐지는 노래는 더욱 눈부시다고. 들리는 음악을 듣는 귀보다 침묵의 음악을 듣는 귀를 가져보라고

 

아오지 탄광촌 인생의 막장, 무너져가는 흙더미에서 비틀거리는 빈혈의 내게 온몸으로 보여주던 매미의 번데기는 내가 만난 부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