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연재시 41회 어둠의 씨, 나는 아직 사과씨 속에 있다

천마리학 2013. 8. 15. 10:35

 

 

 

연재50회

 

 

하늘에 이르는 길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이곳에선 보려고 하며 안 된다

침엽수의 날카로운 바늘이 눈을 찔러댄다

들으려고 해도 안 된다

전기톱날 소리에 이미 고막은 망가졌다

보이는 걸 보지 않고

들리는 걸 듣지 않는 법을

나무는 알고 있었다.

 

묵언의 참선만이

하늘에 이르는 길임을

나무는 알고 있었다

 

 

 

 

 

 

연재49회

 

 

나무처럼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다시 산다면

몸 안으로 섭리의 길 트고

그 길 따라가는

나무처럼 살리라

 

밝은 해 아래

말없이 잎 피우고

때 되면 꽃 피워 열매 맺는

나무

 

그 씨앗에 다시

목숨의 파란 움 틔워가는

나무처럼 살리라

 

 

 

 

 

 

연재48회

 

 

나무를 믿었다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나는 나무를 믿었다

내 톱질이 나무의 재생을 도와주듯

나무가 나의 탈출을 도와주리라는 것을.

 

 

고단한 삶을 벗어버리고

이승으로부터 탈출한 육신을

고향마을 뒷산 소나무 밭

그윽한 솔향기로 감싸 안는

통나무 관이 되어주거나,

 

빛과 어둠을 쓸어 담고

아득하게 출렁이는 바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떴다 지는 목숨 이끌어

암흑의 바다를 건네주는

통나무배가 되어 주리라는 것을

 

 

 

 

 

 

연재47회

 

 

4 부 해탈의 나무

 

 

나무의 집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허름하지만 믿음직한 모습으로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분명히 존재하는

집 한 채 짓고싶다

바닷바람 촘촘히 배인 해송을 베어

결 살려 속살 희게 깎고

짭짤한 세상살이에

적당히 소금기 밴 모습으로

확실하게 받쳐주는 정신의 무게를

묵직하게 얹은 대들보

알맞게 굽고 둥글어서 줄기줄기 엮어내는

서까래며 추녀며

하늘이 내려와 물결 짓는 집

굵은 뼈대 일으키는 곧은 기둥 세우고

배흘림기둥이라면 더욱 좋을

넉넉한 집 한 채

자라나는 어린 것들

등 따습게 다둑여줄

송진내 감도는

나무의 집

 

 

 

 

 

 

 

연재46회

 

지구의 체온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동토의 얼음장을 뚫고

땅심 깊숙히 뿌리를 박으면

더운 심장에서 올려 미는

지구의 체온과 만날 수 있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도

싹을 틔우는 나무는

푸른 목숨을 키우기 위해서

깊이깊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지하갱도를 통해서

자유를 퍼 올리는 노동이

하늘길을 열고

목숨의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초록 비타민이

눈부시다

 

 

 

 

 

 

연재45회

 

초록 비타민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맛깔스런 햇빛과

바람의 자유로움이 섞이고

투명한 물맛이 어우러져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낸

초록 비타민

 

푸르게 잘 자란

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햇빛의 성분과

바람의 방향을

그리고 물줄기의 흐름까지도

가늠할 수 있다

 

 

 

 

 

연재44회

 

 

나무의 언어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몸 펼쳐놓고

침묵으로 말하는

나무

 

전기톱에 밑둥이 무너질 때

부르르 떠는 환생의 몸짓

한 번의 경련으로 다 말해버리는

절대 침묵

침묵은 가장 커다란 나무의 언어였다

 

 

 

 

 

 

연재43회

 

욕망의 숲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숲은 더 이상 푸른 희망이 살고있는

숲이 아니었다

욕망의 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늙은 공룡의 늪이었고

어둠을 통해서 죽음에 길들여지고

가파른 삶을 터득해가는

우리들의 목숨은

시시각각 조여오는 사슬에 묶여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죽음 곁으로 가는 사형장이었다

 

 

 

 

 

 

연재42회

 

한 그루 사과나무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내가 한 그루 나무일 때

어린 시절 노오란 꿈이 매달린

탱자 울타리 안의

한 그루 사과나무일 때

고향이라는 단어는

봄마다 돋는 새싹이 되고

잊히지 않는 기억들은

새싹 위에 올라앉는

꽃으로 벙글었다.

 

안깐힘으로 버티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목숨에 잔뿌리 내리고

메마른 숨길 타고 오르는

줄기줄기 아픈 관절에

홍옥처럼 새빨간 등을 다는

조국은

밑둥 어디쯤에서

숨이나 쉬고있는지,

절망의 심지에

희망의 불을 붙이는

조국은

땅 속 어디쯤에서

물길이나 트고있는지

 

 

 

 

 

 

연재41회

 

어둠의 씨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내가 아직

사과 씨 속에 들어있을 때

사과 씨 속의 씨눈 속으로

사과 씨 씨눈 속의 어둠으로

 

어둠의 씨 속으로

밤 지나가고

어둠의 씨 눈 속으로

햇빛 뚫고 지나가고

씨눈 속에 눈 틔우는

바람 지나가더니

껍질 벗고 여무는

어둠의 씨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