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50회
하늘에 이르는 길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이곳에선 보려고 하며 안 된다
침엽수의 날카로운 바늘이 눈을 찔러댄다
들으려고 해도 안 된다
전기톱날 소리에 이미 고막은 망가졌다
보이는 걸 보지 않고
들리는 걸 듣지 않는 법을
나무는 알고 있었다.
묵언의 참선만이
하늘에 이르는 길임을
나무는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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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9회
나무처럼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다시 산다면
몸 안으로 섭리의 길 트고
그 길 따라가는
나무처럼 살리라
밝은 해 아래
말없이 잎 피우고
때 되면 꽃 피워 열매 맺는
나무
그 씨앗에 다시
목숨의 파란 움 틔워가는
나무처럼 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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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8회
나무를 믿었다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나는 나무를 믿었다
내 톱질이 나무의 재생을 도와주듯
나무가 나의 탈출을 도와주리라는 것을.
고단한 삶을 벗어버리고
이승으로부터 탈출한 육신을
고향마을 뒷산 소나무 밭
그윽한 솔향기로 감싸 안는
통나무 관이 되어주거나,
빛과 어둠을 쓸어 담고
아득하게 출렁이는 바다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떴다 지는 목숨 이끌어
암흑의 바다를 건네주는
통나무배가 되어 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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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7회
제 4 부 해탈의 나무
나무의 집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허름하지만 믿음직한 모습으로
도드라지지 않으면서 분명히 존재하는
집 한 채 짓고싶다
바닷바람 촘촘히 배인 해송을 베어
결 살려 속살 희게 깎고
짭짤한 세상살이에
적당히 소금기 밴 모습으로
확실하게 받쳐주는 정신의 무게를
묵직하게 얹은 대들보
알맞게 굽고 둥글어서 줄기줄기 엮어내는
서까래며 추녀며
하늘이 내려와 물결 짓는 집
굵은 뼈대 일으키는 곧은 기둥 세우고
배흘림기둥이라면 더욱 좋을
넉넉한 집 한 채
자라나는 어린 것들
등 따습게 다둑여줄
송진내 감도는
나무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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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6회
지구의 체온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동토의 얼음장을 뚫고
땅심 깊숙히 뿌리를 박으면
더운 심장에서 올려 미는
지구의 체온과 만날 수 있다
영하 20도가 넘는 추위 속에서도
싹을 틔우는 나무는
푸른 목숨을 키우기 위해서
깊이깊이 내려갈 수밖에 없다
지하갱도를 통해서
자유를 퍼 올리는 노동이
하늘길을 열고
목숨의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초록 비타민이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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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5회
초록 비타민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맛깔스런 햇빛과
바람의 자유로움이 섞이고
투명한 물맛이 어우러져
화학반응을 일으켜 만들어낸
초록 비타민
푸르게 잘 자란
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햇빛의 성분과
바람의 방향을
그리고 물줄기의 흐름까지도
가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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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4회
나무의 언어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몸 펼쳐놓고
침묵으로 말하는
나무
전기톱에 밑둥이 무너질 때
부르르 떠는 환생의 몸짓
한 번의 경련으로 다 말해버리는
절대 침묵
침묵은 가장 커다란 나무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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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3회
욕망의 숲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숲은 더 이상 푸른 희망이 살고있는
숲이 아니었다
욕망의 검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늙은 공룡의 늪이었고
어둠을 통해서 죽음에 길들여지고
가파른 삶을 터득해가는
우리들의 목숨은
시시각각 조여오는 사슬에 묶여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죽음 곁으로 가는 사형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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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2회
한 그루 사과나무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내가 한 그루 나무일 때
어린 시절 노오란 꿈이 매달린
탱자 울타리 안의
한 그루 사과나무일 때
“고향”이라는 단어는
봄마다 돋는 새싹이 되고
잊히지 않는 기억들은
새싹 위에 올라앉는
꽃으로 벙글었다.
안깐힘으로 버티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목숨에 잔뿌리 내리고
메마른 숨길 타고 오르는
줄기줄기 아픈 관절에
홍옥처럼 새빨간 등을 다는
조국은
밑둥 어디쯤에서
숨이나 쉬고있는지,
절망의 심지에
희망의 불을 붙이는
조국은
땅 속 어디쯤에서
물길이나 트고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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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1회
어둠의 씨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내가 아직
사과 씨 속에 들어있을 때
사과 씨 속의 씨눈 속으로
사과 씨 씨눈 속의 어둠으로
어둠의 씨 속으로
밤 지나가고
어둠의 씨 눈 속으로
햇빛 뚫고 지나가고
씨눈 속에 눈 틔우는
바람 지나가더니
껍질 벗고 여무는
어둠의 씨
나는 아직
사과 씨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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