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오랜 이름 사랑에게 * 權 千 鶴
그날 밤 꿈자리에 바늘이 부러지더군요 누비던 꿈 개켜 시렁에 얹어버렸지요 믿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돌아서는데 왠지 가슴이 따끔거리며 서늘했어요 그뿐이었어요 오래 전의 일
그런대로 예사로운 날들이었지요 미열이 나는 날도 있고 딸꾹질을 하기도 해고 가끔씩 식은땀을 흘리는 정도였으니까요 사는 일이 다 그렇거니 했지요 헛손질도 하고 돌부리에 채이기도 하고 이따금씩 신경통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러면서 꿈도 드물어지는 사람 사는 일
이제는 꿈도 꾸지 않는 내게 꿈같은 일이 벌어졌어요 시름시름 앓던 자리 떨치고 일어나 바람이라도 쏘일까 거울 앞에 섰을 때 시렁에 얹은 꿈 자락을 펼쳐 걸친 여자가 거기, 오늘 아침 거울 속에 서 있었어요 누비다 만 바늘 자국엔 핏물이 배어있고 여전히 알싸한 향기가 나더군요 믿기지 않는 마음에 돌아서는데 갑자기 심하게 따끔거렸어요 그날 밤 부러진 바늘이 아직도 내 늑골에 박혀있었던 거예요 아직도 삭지 않은 사랑이 있었나 봐요
<메모> 끝없이 꿈을 꾸는 버릇은 여전하다. 이루지 못할 꿈을 꾸는 버릇 또한 여전하다. 그러나 안다. 이루지 못할 꿈을 꿈으로 내가 살아있고,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살아있어야 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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