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설(瑞雪) -새해 아침에 쓰는 편지
권 천 학
좋은 증조라지요 때마침 새해 첫날 이곳에도 눈이 펑펑 쏟아집니다 허공이 뿌옇습니다. 마치 그리움으로 가슴이 먹먹하던 지난날들의 어느 한 때 같습니다 우리의 만남도 우리의 시작도 언제나 순백의 눈송이었지요
보, 고, 싶, 어, 그 한 마디면 마냥 행복했고 따끈한 차 한 잔 앞에 놓고 마주보고 있으면 그저 좋았지요
이제 다시 또 시작되는 한 해,
저 넓은 세상 속으로 어찌 또 걸어 들어가야 할지 먼지 묻은 옷을 갈아입고 더러워진 손과 발을 씻으며 이름 붙이지 않은 기도를 합니다
눈 속에서 더 깊이 익는 아이스 와인 한 잔! 그 숙성의 시간을 위하여!
오직 흰 빛으로 남을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과 간곡한 시간 염려마저 하얗습니다 뿌옇기만 한 허공이 또 얼마나 깊을런지요 먹먹하고 또 먹먹해집니다
그러나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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