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마을

시-쓰레기는 아름답다

천마리학 2010. 1. 12. 02:40

 

 

 

쓰레기는 아름답다

 

權 千 鶴

 

 

 

 

 

 

 

 섣달그믐 무렵

 년 내내 모아진 각종 영수증을 정리할 때마다

 살아가는 일이 곧 빚지는 일이고

 쓰레기를 만드는 서글픈 노동이고

 나도 세상을 더럽히는 쓰레기일 뿐이라는

 통증 때문에 일어나는 스파크

 100볼트의 전류가 일으키는 심장발작

 

 해마다 섣달은 오고

 나는 여전히 쓰레기 속에서 앓고

 

 사십 넘어 찾아온 어느 섣달 무렵

 머릿속에 반짝 불이 켜지면서

 심장으로 흐르는 전류

 세상은 쓰레기로 하여

 깨끗해질 수 있음!

 

 충분히 쓰이고 떠나는 희생으로

 세상이 아름다워짐!!

 

 미련 없는 한 생애의 끝에서

 다비장으로 향하는 순종과

 재활용의 미덕으로

 우리들 삶이 비로소 맑아질 수 있음!!!

 

 

 

 

 

어느 추운 겨울날 쓰레기 노적장 근처를 지나가다가 인부들이 거기 쌓인 쓰레기를 태워 몸을 녹이는 것을 보았다.

쓰레기 타는 화기는 지나가는 나에게까지 느껴졌다.

인부들이 주고받는 이야기 소리가 간간이 들렸다. 아마도 살기 힘든 살림살이, 추운 겨울 나기, 어려운 형편에서 막내 아들놈 대학 보내기, 곧 다가오는 설날에 고향 찾아가는 일, 부잣집 쓰레기 속에서 나온 은수저이야기, 일 마치고 가서 먹을 얼큰한 순대국 이야기, 순대국집 욕쟁이 할머니의 푸짐한 손, 며칠 째 아파서 못나오는 다리목 군밤장수의 병문안 가는 일..... 아마도 이런 이야기들이 아닐까?

쓰레기가 내뿜는 불기운에 인부들의 목소리들도 데워지고, 희망에 서려있던 살얼음도 녹아 내리고 있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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