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시 한 수 • 차 한 잔】 --2021년 2월호 ‘실버타임즈’용
복은 짓고 나이는 한 살 먹어 없애자! * 權 千 鶴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여러분, 복 많이 지으세요! “한 살 더 드는 나이를, 먹어서 없애버립시다!” 저의 신축년(辛丑年) 새해 인사입니다. 저의 이런 인사말을 이미 개인적으로 카톡이나 온라인상으로 들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복많이 받으세요!” 하는 말과 더불어서 정초에 많이 듣는 말이 떡국 먹었어? 하는 말이 새해에 가장 자주 듣는 말입니다. 한 살 더 먹었다는 뜻입니다. 어린 아이들에게도 떡국을 차려내면서 이제 한 살 더 먹게 되는구나! 하는 덕담도 줍니다. 이제 한 살 더 먹었으니 좀 더 커라, 몸만 크라는 것이 아니라 생각도 크고 행동도 커지라는 뜻임을 아이들도 알아듣습니다. 누구나 다 익숙한 새해의 자연스러운 풍경입니다. 새해 아침의 기도
또 새롭게 하소서
지금까지 입던 옷 그대로 입고 지금까지 살던 집 그대로 살고 지금까지 쓰던 물건 그대로 쓰고 지금까지 만나던 사람 그대로 만나며 다만 정갈하게 그 모든 것이 축복이며, 감사함을 알게 하소서
세상 어디 시작 없이 끝이 있었던가, 태어나지 않은 죽음 없듯이 젊음을 건너뛰어 늙을 수 없음을,
젊은이는 푸르되 들뜨지 않게, 젊지 않은 이는 나이에 순종하며 늙되, 낡아지지 않게, 있던 그 자리가 새로운 시작임을, 눈 뜨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 모든 것이 기적임을 알게 하소서! 새해맞이의 예(禮)이고, 정(情)입니다. 어른에게 예를 갖추고 가르침을 이어받으며, 친지와 친구들에게 따뜻한 정이 흐르는 마음을 나누어 관계를 돈독하게 만드는 절차로 굳어졌습니다. 언제부턴가 저는 그 말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오래 전, 한국에 있을 때부터입니다. 복(福)을 그냥 받는 일보다는 내가 스스로 짓는 사람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는 생각, 복은 절대로 저절로 오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복 많이 받으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복 많이 지으라!로 바꾸었습니다. 좀 엉뚱했던지, 복지어서 뭐하게? 하고 비꼬듯 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거침없이 대답합니다. 복 지어서 남 주자! 초하룻날부터 이삼일간은 가족과 가까운 동네어른, 친지들을 방문하여 인사를 나누며 분주하게 보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주변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합니다. 평소에 신세를 진 사람을 비롯해서 중요한 일로 연결되어 있거나 특별히 친한 사람들을 만나 밀렸던 감사의 마음도 전하고 안부도 나누고 새해 기원도 해줍니다.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주로 문인 친구나 후배들인데, 자주 듣는 말이 ‘젊어졌네’ 또는 ‘젊어 지셨습니다’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때마다 대답했습니다. “한 살을 먹어치웠지!” 처음엔 무슨 말인가 하고 다소 으아스럽게 생각하기에, 떡국 먹으면서 나이도 먹어 없앴다니까. 하는 부연설명을 하면 모두 웃음을 터트리곤 했습니다. 한 살 더 먹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신나는 일이지만 나이든 노인들에게는 한숨 짓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야기를 계속하기 전에 먼저 저의 새해맞이 시 <새해 아침의 기도>를 선물하겠습니다. 새해를 기원하는 저의 마음을 담은 시입니다. 금년 설날은 COVID-19으로 더욱 착잡한 마음일 것입니다. 문안비(問安婢) 대신 보내드리는 이 시로 착잡한 마음을 달래시고 차분히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문안비가 무엇이냐고요? 그 설명은 다음 호에 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시(詩)로 전하는 저의 마음부터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복 짓자! 나이 한 살 먹어 없애자! 이 말을 새해아침의 시 <새롭게 하소서!>와 함께 얹어 드립니다.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수월하면 수월한대로 우리는 살아갑니다. 추우면 추운대로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우리는 이 겨울을 납니다. 해가 바뀐 지금,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고, 살아있으니 새로운 삶을 시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숨은 소중합니다. 목숨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삶도 소중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방해꾼을 만나 흔들리고 위태로운 건 사실입니다만, 조금 흔들렸다고 해서 아주 흔들려서는 안 될 일입니다. 조금 힘들었다고 해서 우리의 삶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물러서서도 안 되고 무너져서도 안 됩니다. 그럴수록 바로 서야합니다. 더욱 힘찬 발걸음을 내딛어야 합니다. 봄이 코앞에 왔습니다. 새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새로워진다는 의미입니다.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단순히 해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것. 어제 보다 내일이, 작년보다 내년이, 과거보다 미래가... 어제와 내일 사이의 오늘, 작년과 내일 사이의 올해, 과거와 미래 사이의 현재, 그 변화의 중간 지점인 오늘, 현재에 우리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돌처럼 굳어있는 고집과 편견, 오만함과 고정관념, 자만심,.. 그 필요 없는 암 덩어리들을 털어내야 합니다. 시샘과 미움... 원망과 절망... 자신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는 그 암 덩어리들을 털어내야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 안에 자리 잡은 묵은 생각, 잘못된 편견, 쓸모없는 관념들이 굳어 있더라구요. 나의 생각이 정의롭고, 나의 편견은 정당하며, 나의 관념은 공정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더라구요. 그것이 소위 ‘내로남불’이더라구요. 새로워져야, 어제의 내가 아니고, 작년과 다른 올해를 보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여생(餘生)의 삶이 아름다워질 수 있습니다. 복을 받을 생각 대신 복을 지을 생각, 그것이 복입니다. 복을 지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그것이 복된 세상 아니겠습니까? 꼭 큰 일 만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일부터 고쳐나가고 실행해나가는 것이 곧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살 더 먹게 되었다고 한숨 짓지 마세요. 아이들에겐 성장의 의미가 되듯이 어른들에게는 지혜의 곳간을 채우는 계기가 됩니다. 떡국을 맛있게 먹어서 소화를 잘 시켜 몸을 건강하게 하듯이, 나이 한 살을 먹어 없애버리면 그만큼 활기가 넘칩니다. 비록 생태적으로 몸이 늙는 것이야 막을 수 없지만, 마음이 새로워져서 삶의 의미가 좋아진다면 생태적 늙음조차도 더디게 할 수 있고, 마음은 보람과 넉넉함으로 채워져서 지혜로운 노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노인의 의무이며 진정한 아름다움입니다. 복 많이 지으세요! 한 살 먹어 없애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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