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의 찬란함 * 권 천 학 시인 • 국제 PEN 한국본부 이사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최종결승전 실황중계를 보느라고 집안이 떠들썩하다. 사위는 사위대로, 손자녀석은 몰려온 친구들과 함께 관전을 하고 있는데, 딸바보인 사위는 딸과 함께, 손자녀석과 친구들은 그들대로, 경기 진행에 따라 함성이 터지고, 몰아가던 볼이 킥으로 성공될 때마다 소파위에서 날뛰며 난리가 아니다. 2018 국제축구연맹 러시아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고 있는 모스크바의 루즈니키 스타디움을 우리집 거실로 옮겨놓은 듯하다. 딸은 저녁준비를 하며 사이사이 곁가지로, 나는 나대로 슬쩍슬쩍 화면을 보아가며 신문을 읽고 있었다. 드디어, 프랑스가 크로아티아를 4:2의 전적으로 월드컵 최종 승자가 된 후, 시상식이 진행되고 있을 땐 나는 아예 신문에서 눈을 떼어 TV화면 앞으로 자리를 옮겨 앉았다. 푸틴과 마크롱이 선수 각각에게 메달을 걸어주며 일일이 포옹을 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푸틴은 그저 한 번의 의례적인 악수로 선수들을 맞이하는 것에 비해서 마크롱은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적게는 한번 많게는 세 번씩의 포옹과 뽀뽀와 귀엣말까지 하느라고 시간이 길었다. 더욱 굵어진 빗줄기에 흠씬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푸틴보다 훨씬 더 격정적이고 진정어린 고마움의 표현을 하는 마크롱의 모습이 프랑스에게 20년만의 우승을 안겨준 감격이 얼마나 큰가를 보여주었다. 아, 크로아티아!
드디어 시상식이 이어지면서 팡파르처럼 하늘에서 금빛 조각들이 쏟아졌다. 카메라가 클로즈 업(close up)과 롱 숏(long shot) 사이를 오가며 보여주는 화면은 마치 동화 속 세상을 연상케 했다. 하늘도 스테디엄도 노랗게 물들이며 선수들의 온몸에 묻어나는 황금빛, 시공(時空)을 물들이는 황금빛! 눈이 부셨다. 아니 마음까지 부셨다. 그 순간, 찬란한 황금빛으로 박힌 기억 속의 은행나무가 떠올랐다.
당태종 이세민이 1400년 전에 심었다는 그 은행나무를 처음 보았을 때, 온 몸에 전율이 지나갔다. 국가고수명목(國家古樹名木) 보호식물로 지정된 그 나무는 중국 산서성 장안구 종남산 아래의 관음사에 있다. 우람한 가지를 뻗어 짙은 그늘을 드리우는 여름 지나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든 잎을 떨구어 제 그늘 아래에 황금빛 양탄자를 깔고 후대의 사람들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시공을 물들이며 다시 한 번 자신의 구체적인 삶을 펴 보이던 모습이 찬란했다.
또 한 그루가 있다. 양평의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다. 옆으로 드리워진 이세민의 은행나무와는 달리 곧은 척추를 세워 하늘 높이 키를 높이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어느 핸가,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된 그 나무의 아름드리 밑둥을 안아보며 잠시 역사 속 시공을 넘나들며 사념에 젖었었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麻衣太子)가 망국의 서러움을 품고 금강산으로 가던 길에 손수 심었다는 전설과 신라의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은 것이 뿌리를 내려 자라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용문사 은행나무, 태초의 DNA 원형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은행나무를 생각하며 [즐문 토기-종이접기]라는 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용문사 은행나무를 보고 돌아오는 그날, 버스 안에서 한 외국인이 말을 걸어왔다. 더듬더듬 용문사에 다녀온다고, 거기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데 1100살이 넘는 나무인데... 등등, 어렵사리 영어로 설명하는 중에, 은행나무를 영어로 어떻게 말하는지를 몰랐다. 갑작스레 닥친 외국인과의 대화할 기회여서 설렘과 두려움으로 이는 흥분을 애써 감추며 토막토막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도대체 은행나무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몰라 가슴이 콩닥거렸다. 베리베리 빅 트리, 메이비 1,100 이얼스 투 1,500 이얼스 올드.... 닥치는 대로 이말 저말을 끌어대다가 불쑥, “드 유 노우 징코민?” 했다. TV에서 나오는 ‘손발 저림, 혈액순환장애에 은행나무 추출물로 만든 징코민,... 어쩌고’ 하던 약 광고 문안이 스쳐서였다. 그 순간 외국인이 오우, 징코트리! 했다. 아, 그 순간의 절묘함이라니! 그날 이후에 다시 [용문사 은행나무]라는 시를 쓰기도 했지만, 그때, 외국인과의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게 했던 임기응변의 짜릿함은 지금도 아슬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란색을 좋아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 특히 동양 사람들은 황금빛을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여기며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돈을 상징하는 금색깔이어서다. 자본주의 시대에서의 가장 확실한 증표는 돈이므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다. 생각해보면, 은행나무의 황금빛은 결코 단 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돈 벌기가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오랜 시간을 갈고, 닦고, 참고, 견뎌내는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란해야 한다. 월드컵의 시상식에서 휘날리는 황금빛 색종이가루를 보면서 은행나무를 떠올린 것이 다소 엉뚱하다고 할 수는 있지만, 오늘의 황금빛 역시 그들, 프랑스와 크로아티아의 축구팀들이 그동안 고진감래하며 일구어낸 결과일 터이다.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 없다. 우리의 삶 또한 그런 것이 아닐까? 은행나무 특유의 구린내는 땀 냄새라고 할 수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 * 권 천 학
수염 허옇게 날려 산신령 같은 할배 한 분이 계시는 용문사에 갔더니 울퉁불퉁 불거진 괴목들까지도 불경을 외우고 있었는데 다람쥐에게 수염 끄들리면서도 허허 웃고 계시는 할배께서는 수 천 수 만 개도 넘는 가지를 돌보고 계셨는데 가지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들까지도 일으켜 세우고 계셨는데,
봄이면 연두 빛 속잎에 낡은 꿈 닦아 틔우시고 가지마다 수없이 많은 사연들을 주렁주렁 걸어두고 계시는 할배께서는 하도 오래여서 아득한 나이는 챙기지 않으시면서 해마다 잎 지우기 전 한 번쯤 활활 타오르는 멋은 챙기고 계셨는데,
천년도 넘는 어느 아린 아침 지친 걸음마다 떨구던 태자(麻衣太子)의 눈물을 이슬로 꿰어 품어 안으시고 세상사 휘젓던 지팡이 꽂아두고 떠난 자리 가래 삭힌 대사(衣裳大師)의 헛기침 소리까지도 실바람에 엮어두고 계시면서 가뭄으로 타던 어느 해 불볕 여름 시들어버린 실뿌리도 골골 마다 물 붓던 장마에 패여 내려간 살점과 뜯겨진 옷자락까지도 여미고 계셨는데,
숲 속의 나무와 풀 냇가의 바위들 돌아오지 않는 새들의 이름까지도 낱낱히 기억하고 계셨는데,
세 치 혀 한 근도 못되는 심장 161cm의 짧은 키로 부대끼면서 애기똥풀 꽃대 부질러 받아낸 노란 즙으로 세상 때 지우는 나를 내려다보고 계셨는데 온통 풀꽃 중에서도 가장 못생긴 나까지 내려다보고 계셨는데 한 마디 말씀도 없이 다만 서 계셨는데 수 천 수 만 개도 넘는 가지들이 수 천 수 만 개도 넘는 회초리가 되어 나를 후려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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