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9월, 가을의 문설주에 기대어서

천마리학 2018. 10. 16. 09:06






9월, 가을의 문설주에 기대어


  • 캐나다 한국일보 (public@koreatimes.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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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 Sep 2018



권천학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이사, 시인



9월도 중반을 넘어섰다. 이때쯤 되면 왠지 모르게 스산해진다. 아침저녁으로 옷자락을 여미게 하는 서늘한 기운이 그렇고, 누런빛이 도는 호박잎이 그렇다. 맹위를 떨치던 여름이 슬며시 꼬리를 내리고 있음이 확연한 가을의 입구, 그렇다고 완연한 가을은 아니다. 환절기, 계절과 계절이 바뀌는 경계이다. 경계는 늘 불안정하다. 환절기 감기처럼 누구나 조금씩 흔들린다. 흔들림은 변화와 변화 사이에서 겪는 몸살기 같은 것. 가을의 문설주에 기대어 사색이 시작된다. 다가올 가을의 희망과 지난 여름의 반추로부터 시작하는 사색, 떠나보낸 것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 찾아올 것에 대한 기대감이 교차하면서 설레기도 한다. 설렘은 경계에서 느끼는 불안함과 모호함을 동반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영어 ‘September’를 ‘10월’로 착각했다. 영화 ‘Come September’의 OST로 삽입되었던 Billy Vaughn 악단의 연주를 흠뻑 취하여 듣던 시절 부터였으니까 착각의 시작은 사춘기 무렵쯤 된다. 영어시간에 틀렸다고 지적받지 않으려고, 혹은 실수하지 않으려고 ‘September’가 나오면 ‘어거스트, 셉템버, 옥토버, 8월, 9월, 10월’ 하고 마음속으로 확인한 다음에야 아, 9월이지 하고 안심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이상한 착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September’를 만나면 어느 새 입속으로 ‘어거스트, 셉템버, 옥토버, 8월, 9월, 10월’ 하고나서 9월이지 하는 확신을 갖곤 한다.




나의 그 착각은 단지 영어단어에 대한 무지 때문만은 아니다. 그냥이다. 굳이 분석해보자면, 9월보다는 10월이 더 가을스럽고 더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9월보다 10월이 더 찬양되어야 한다는 나만의 생각. 그것이 나로 하여금 ‘September’를 10월로 착각하게 만들었음을 스스로 짚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9월은 끊임없이 노래로, 시로 불리어지고 있다. 바로 그 경계에서 느끼는 흔들림 때문이 아닌가 한다. 아직 여름 더위도 남아있고, 가을이 완연하려면 더 기다려야하는 그 어정쩡함이 못내 달갑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그 경계가 불안하고 불편하다. 마치 매단 호박을 채 익히기도 전에 잎부터 노래져야하는 호박넝쿨의 심정. 따지고 보면 나의 ‘September’를 10월로 생각하는 착각은 계절의 경계에서 가졌던 불안과 모호함이었고, 그것은 경계인에 대한 사고((思考)로 확장된다.
9월은 8월과 10월 사이에 끼어있다. 낀 세대. 낀 달. 끼어있음은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소속될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양다리의 모양새는 결핍을 의미한다. 이도저도 아닌 존재의식의 위기감, 그 흔들림이 경계인이 갖는 맨탈의 불안정과 고독이다.


나를 포함한 이민자들은 모두 한국과 캐나다 사이에 끼어있는 경계인이다. 굳이 디아스포라(diaspora)적일 필요는 없다. 가끔 ‘디아스포라’로 표현한 글을 보게 되는데 그것은 맞지 않는 표현이다. 떠나와 살기 때문에 디아스포라? 그건 아니다. 설익은 낭만이거나, 지적수준이 낮은 사람이 문학을 빌미삼아 부리는 감성의 허영이라고 생각한다. 어떻든, 이민자들 중에는 이곳을 고향, 제2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당연히 자연스럽다. 나도 이민햇수가 길지는 않지만 이곳이 고향이라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곳을 고향이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고국을 잊어버리거나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고국은 고국대로 존재한다. 이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산다는 뜻은 삶의 터전을 옮겨왔다는 뜻이다. 그러면 고향이다. 언젠가 이곳을 떠날 것이라는 생각을 염두에두고 산다면 고향일 수 없다. 정처 없는 삶이 되고 만다.


얼마 전 설문조사에서 역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는 걸로 나타났다.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자. 한국 떠나와 이곳에 산지 몇 십 년, 한국으로 돌아간다 해도 그곳이 다시 낯선 곳이 된다. 환경도 바뀌고 그곳에 사는 사람도 바뀌었다. 비록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해도 인식이나 생활 패턴이 바뀌어서 서로가 낯설고 불편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오히려 고국이 타향이다. 오래된 고향은 오래된 추억 속에 있을 뿐, 지금 있는 이곳이 삶의 현장이고 현실이다. 정 들면 이웃이고 정 들어 사는 곳이 고향이다. 혹여 아직도 정처 없다면 지금 이 9월이 더욱 싱숭생숭할지도 모른다. 

불어오는 초가을 바람에 마음을 다잡아가며 익혀야하는 호박의 심정을 생각하며 익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