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독자가 나를 깨운다

천마리학 2014. 1. 20. 20:16

 

 

독자가 나를 깨운다 * 權 千 鶴

 

 

나는 이곳 교민사회에서 캐나다한국일보부동산 캐나다에 시와 칼럼형식의 수필을 번갈아가며 발표하고 있다. 발표하기 시작한 지 5, 시로 시작하여 지금은 두 곳 다 내 이름을 단 고정란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읽는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했다. 글을 쓰는 일이 혼자만의 작업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세상과의 소통이다.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독자는 물론 팬클럽도 가져봤고, 몇몇 대학의 교재나 시를 강의하는 단체의 교재로 나의 시가 강의되기도 하는 등, 문학하는 맛과 의미를 가질 수 있었지만, 낯선 이곳에서는 다르다. 새로 시작된 타국생활에 교민사회라는 한정된 곳이고 보니 소통의 의미가 크다. 이제는 글이 나갈 때마다 몇몇 독자들로부터 팬레터를 받기도 하고, 밖에 나가면 꼭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어느 정도 소통의 목적은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팬레터는 일회용으로 끝나기도 하고, 주거니 받거니 계속하기도 하고, 몇몇 독자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쇼핑 길에서, 레스토랑에서 혹은 낯선 모임에서조차 꼭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다. 반갑게 다가와 인사를 할 때마다 나도 반갑다. 그러나 한편으론 부담이 되기도 한다. 모르는 사이에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매무새며 행동거지를 조심해야하고, 글을 절대로 허투루 써서는 안 된다는 각성 때문이다.

 

이제 새해가 되었으니 그동안 성원을 보내준 독자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 기억에 남는 독자이야기를 한다.

독자들의 반응은 대개 감동적이었다.’ ‘공감 한다이고, 안부를 물어오기도 한다. 뒤늦은 안부를 물어오는 독자도 있다. 이를테면 사고다발의 아침이 나간 후 즉시 다치지 않았느냐고 염려해오는 독자도 있었지만, 몇 주가 지난 후에야 정말 괜찮으세요?’하고 안부를 물어오는 귀여운 독자도 있었다. 쇼핑길이나 레스토랑 같은 공공장소에서 먼빛으로 마주치게 되면 눈빛으로 인사 하는 독자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하는, 은근히 겁나는 독자도 있다. 쪽지의 추억에서 도둑에게 써 붙인 쪽지의 내용을 영어로 번역해서 보내준 우정어린 독자도 있다. 신외무물을 읽고 부모를 모시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며 공감한다는 독자도 있었고, 또 나처럼 한국에 부모님이 계셔서 전화벨소리에도 늘 불안해하는 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독자도 있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다. 아침식사 초대를 해주어서 그 부부와의 함께한 이야기를 참 좋은 아침으로 쓰기도 했다. 비혼과 여성대통령에 오기된 일부종사의 한자를 바로잡아준 독자도 있다. 이민 1세인 그분은 자서전을 쓰고 싶은데, 한글 문법조차도 잊혀서 쓸 수 없다고 한탄을 하시기도 했다.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조금씩 써보시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요즘 소식이 뜸해져서, 지금쯤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되셨는지 내가 궁금하다.

우연한 기회에 나의 글을 늦게야 읽게 됐는데, 두어 편 읽다보니 그동안 보물을 놓친 것 아닌가 해서 아쉽다고 하는 독자도 있었고, 어느 자리에선가 절대로 아프지 마세요.……하던 독자, 일부러 찾아오셔서 아무리 손자손녀가 귀여워도 시간 너무 뺏기지 하세요. 건강도 생각하셔야지요.……하던 독자. 거기까지 들으면 그냥 의례적인 인사에 불과할 수 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한다고 했던가. 앞문장의 ……로 되어있는 끝말은 모두 다. ‘그렇게 되면 선생님 글을 읽을 수 없잖아요.’였다. 그냥 하는 소리로 들었는데, 찬찬히 새겨보니 결론은 나의 글이 아닌가. 참 따뜻했다.

비비자!이후 어느 자리에서 내가 제안한 건배 비비자!’를 깜빡 잊고 있는데 오히려 독자가 비비자!’를 한번 해야지요, 해서 나를 무안하게 한 독자. ‘소설 쓰신다고 하셨는데, 지금 어디까지 쓰고 계십니까?’하고. 소설의 진척상황을 묻는 독자. 그 질문엔 뜨끔했다.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독자의 채근은 나 자신과의 약속을 꼭 지킬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일상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어주는 채찍과 같다.

 

 

 

 

그보다 더 강력한 채찍이 있다. 어느 독자의 국민시인이 되어 달라는 요청으로 나를 화들짝 깨어나게 한 독자는 청소년들이 줄줄이 랩으로 노래할 수 있도록, 온 국민들이, 온 교민들이 삶의 고비에서 혹은 일상에서 외우며 위로받을 수 있는 시를 써달라는 것, 시가 소수(少數)의 고급문화로 남아있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향유(享有)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능력부족의 나에겐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채찍이었다.

 

빠트릴 수 없는 독자한 분이 계시다. 각별히 어르신이라고 불러드리는 독자다. 9순이 되신 독자이시다. 젊은 층들도 글을 읽고 독후감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표현의 용기가 필요하고 마음도 열려있어야 한다. 거기다 설령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좋았다는 칭찬 같은 말이 하기 싫은 심사, 그런 행위에 자존심을 거는 사람도 있다는 것도 안다. 알기 때문에 단순하고 짤막한 반응이라도 보내주는 순수한 독자들이 나에겐 고맙고 소중하다. 그런데, 9순의 독자로부터 펜레터를 받다니, 내가 감동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나의 칼럼 흔들어주세요를 읽으신 후 당신의 추억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일부러 감추었던 말 한 마디를 무심결에 짚어내시기도 했다. 흔들어주세요중에 ……옹기종기 모여서 시끌벅적 열을 올리던 종로의 뒷길, 옹색한 방에 서캐처럼 박혀서 떠들어대던 피막거리,…… 라고 쓴 부분에서 종로의 뒷길은 사실 원래의 원고에서는 종삼의 뒷길이다. 물론 수필집을 출판할 때는 원래대로 종삼의 뒷길로 할 것이다. 아는 사람들은 알 테지만, 종로의 뒷골목엔 창녀촌이 있었다. 그래서 종삼은 단순히 종로 3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창녀촌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종로의 뒷길로 바꾼 것은 혹시나 그 거리의 내력을 아시는 분들은 쓸데없는 오해로 말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바꿨다. 교민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어르신께서 종삼에서 재미보고, 영등포로 가서……라고 독후감을 보내주셨다. 말하자면 내가 바꿔 쓴 속내를 짚어낸 셈이다. 단어 하나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또 당신께서 직접 부른 노래를 담아 제작한 CD를 보내주셔서 옛 정취를 즐길 수 있었는데, 이번엔 나의 호를 지어놓으셨다니. 그 내용은 만나서 설명을 듣기로 했다.

독자가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비호감의 독자도 있을 수 있지만 그것조차도 약이 된다. 손수 빚은 포도주를 보내주신 J, 손자손녀에게 체면 유지해야 된다고 선물을 주신 D, 상추씨 비트씨를 보내주신 O, 출판기념회에 꼭 초대해달라는 C, 등등, 그 외에도 거론하지 못한 많은 독자들

……. 관심을 가져준 독자들 모두모두 감사하다!

말갈기 푸르게 휘날리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권천학의 수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홍보석  (0) 2014.02.07
똥도 먼저 나온 놈이  (0) 2014.01.28
지금 내가 선 자리가 우주의 복판이다 * 權 千 鶴  (0) 2014.01.11
말뚝나무의 슬픔  (0) 2013.12.18
흔들어 주세요! * 權 千 鶴  (0) 2013.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