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흔들어 주세요! * 權 千 鶴

천마리학 2013. 12. 11. 06:17

 

 

 

흔들어 주세요! * 權 千 鶴

 

 

설핏 가을인가 한 때가 바로 엊그제였는데 어느 새 겨울로 들어서고 첫눈도 내렸다. 몽땅 지우고 서있는 나무를 보며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데, 나의 블로그의 방명록에 한국의 한 친구가 글을 남겼다.

빙그레! 건강 하시겠지요-마주앉아 대포 한 잔 하고싶네요-이 해가 가기 전에---오늘도 즐겁고 행복하게----’

벌써 또 한 해가 이우는가보다.

가끔 만나서 뜨거운 국밥에 소주 한 잔 걸치며 헤실거리던 을지로 출판골목, 오래된 찻집 구석에 앉아 도란거리던 인사동, 모락모락 김 서린 유리창 안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시끌벅적 열을 올리던 종삼의 뒷길, 옹색한 방에 서캐처럼 박혀서 떠들어대던 피막거리,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도 창밖에 내리는 눈을 녹이며 한껏 부풀어 오르던 대학로, 그래도 막걸리라면서 족발 앞에 놓고 기어코 소주대신 대포잔 기울이던 장충동 족발집, 그 분위기에 젖어 오르던 남산길…… 등등. 그러잖아도 도지는 증상으로 마음이 스산해지고 스멀거리는데, 아마 그 친구도 그런 모양이다. ‘흔들지 마세요라고 답을 썼다.

 

벌써 연말이 코앞이다. 하루로 치면 해거름의 저녁 무렵인 이맘때쯤이면 찾아오는 병이 도진다. 그리움 병. 누구라 딱히 정해지진 않았어도 사람이 그립고, 지나간 시간들이 흑백필름처럼 스쳐가며 까닭 모르게 그냥 그리운 병이다. 흔들린다.

 

살면서, 모든 것은 흔들어줘야 좋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도 흔들어줘야 상하지 않는다. 흐르지 않는 물은 상하는 법이니까. 사람의 마음도 흔들린다. 고요하던 마음에 이랑이 생기고 뒤숭숭해진다. 흔들리는 것이 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한 번씩 흔들려도 나쁘지 않다. 호되게 흔들려 뒤집히는 것도 지나고 보면 필요한 일이다. 하긴 바다도 가끔 뒤집어져야 생산도 늘고 깨끗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한 번씩 몰아닥쳐 바닥까지 뒤집어대는 태풍이 약이 된다.

문학지에 바다 테마의 연작시를 연재하며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연일 계속되는 태풍피해의 뉴스속보에 걱정이 되어 바닷가에 사는 친구의 안부를 염려했더니 태풍이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바다도 가끔 속까지 뒤집어줘야 청소도 되고 활기도 넘친다고, 그럴 수 있는 것이 태풍밖에 더 있느냐고, 너무 걱정 말라고 했다. 그 말에 얼마나 감동했었던가.

 

바로 어제, 한 의학정보사이트에도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몸을 움직여보라는 내용의 기사가 떴다. ‘사이코노믹 정보와 검토(Psychonomic Bulletin&Review)’에 실린 일리노이대학의 알레한드로 레라스 교수팀이 두 그룹의 학생에게 실행한 실험결과를 인용하고 있다.

강의실 천정에 늘어뜨려 놓은 두 개의 밧줄을 중간에 20초의 휴식시간을 포함한 140초 안에 연결해보라는 과제와 함께 한쪽에 책, 아령, 스패너, 널빤지 등 소도구를 늘어놓았다. 밧줄을 한쪽만 움직여서는 연결이 안 되고 밧줄 끝에 아령 등 소도구를 매달아 흔들리게 하면 가운데 서서 잡을 수 있다. 주어진 20초의 휴식시간 동안 양팔을 앞뒤로 흔들어 몸 풀기를 하라는 지시를 내린 그룹의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다른 그룹에 비해 40% 높았다고 한다. 문제풀이와 전혀 상관없는 몸을 흔들게 한 그룹의 학생들 뇌가 활성화되어 문제를 더 빨리 푼 결과는 요즘 활발해진 뇌 연구에 있어서 신체를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생각이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라고. 그러므로 도저히 문제가 안 풀릴 때는 그 문제를 떠나 몸을 움직여보라고 권한다.

 

 

 

 

 

공감한다. 때로는 복잡한 문제로 마음이 얽혀 있을 때, 산책을 한다거나 격렬한 운동을 하고나면 몸도 마음도 개운해지면서 진정되고 대안이 떠오르는 것을 누구나 체험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길을 걷다가 혹은 일상적인 일을 하다가 골몰하던 일의 해답이 불쑥불쑥 떠오르는 경험을 자주 한다. 고민하던 문제의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상황에서 해결점이 떠오른다.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떠오르는 경험을 심심찮게 한다. 어떻게 보면 그 문제를 풀어내려고 애를 쓴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막상 그 문제에 얽혀있을 때엔 해답이 나오지 않다가 그 문제를 내려놓고 무심한 듯 다른 행동을 할 때, 어느 순간에 해결점이 떠오른다. 그래서 복잡한 문제가 생기거나 중요한 대답을 해야 할 경우가 생기면 일부러 그 문제를 잠시 덮어두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것이 그냥 쉽게 되는 일은 아니었다. 끌어안고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을 알면서도 잠시 미뤄놓은 일이 쉽지 않았다. 천천히 생각하자 작정하고 억지로 잊어버렸다. 엣다, 모르겠다! 하고 어깃장을 놓아보기까지 했다. 까짓, 배 째라 하지 뭐! 하고.

사실 그것은 나의 성격상 내가 가장 못하는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풀리는 것을 경험했다. 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해답이 아니더라도 그 상황에 대응하는 임시적인 방편이라도 떠오른다. 그렇게 하다 보니 어느 사이 문제를 잠시 미뤄놓는 일이 수월해졌다. 미뤄놓고는 태연히 손자들과 놀거나 산책을 하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실마리가 되는 뭔가가 떠올랐다. 마음의 평정을 이루는 결과가 아닌가한다. 신체적 움직임이 뇌를 활성화 시키는데 보탬이 되고 좋은 결과를 유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모든 일은 연습이 필요하다. 연습은 습관을 만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흔들리는 일이 어디 한두 가지랴. 더구나 연말이다. 풀지 못한 문제도 있고, 해결해야 할 일도 남아있어 흔들릴 것이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리라. 그것이 진리다. 난관이나 슬픔에 침몰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곧 흔들림이다. 흔들림이 격렬할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명료하게 새로워진다. 새로워지기 위해서도 우리는 흔들려야 한다. 기왕이면 세차게. 흔들림은 곧 살아있음이며, 흔들린 후에 반듯이 새로 태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흔들림을 두려워 마시라. 흔들려오는 마음 또한 축복이다. 아직은 살아있음이니. 행여 자신의 삶이 고여 있다고 생각되거든 한번 흔들어보시라! 힘차게 새로운 도전으로.

바다가 으르렁대며 한바탕 뒤집어놓으면 깨끗해지고 바다생명들이 훨씬 더 생생해지듯이, 이우는 한해의 끝에서 스산해지는 마음의 흔들림 뒤에 오는 내일이, 내년이 더욱 새로워질 것이다.

<20131129>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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