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말뚝나무의 슬픔

천마리학 2013. 12. 18. 11:50

 

 

 

말뚝나무의 슬픔 * 권 천 학

 

 

오늘 아침, 미국 팰리세이즈파크에 있는 우리의 일본군 위안부 추모비가 말뚝테러를 당하였다. 추모비 옆의 꽃무더기 사이에 꽂혀있는 흰색 말뚝에는 일본어로 독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적혀있었다. 뉴스는 지난 6, 서울에 있는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 소녀상이 일본 극우파로부터 말뚝테러를 당한 것에 이어 두 번째 말뚝테러라고 전하고 있지만 사실상 세 번째 테러이다. 일본대사관 앞의 위안부소녀상에 자행됐던 테러 이후, 지난 822일에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가 운영하는 서울의 전쟁과 여성 인권박물관앞에서도 다케시마(竹島, 한국명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쓴 말뚝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만이 아니라 독도, 역사왜곡, 문화재 침탈 등 일본의 끊임없는 도발에 핏대가 오른다. 문제는 국력(國力)이다.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국력을 생각하면 현실적으로 허탈해진다. 우리의 강토에 박힌 말뚝들은 뽑아냈다고 해도 우리들 가슴에 박힌 말뚝은 아직 뽑히지 않고 있으니……. 끓어오르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발코니에 서서 멀리 시선을 돌린다. 잎 다 떨어트리고 비에 젖어 말뚝이 되어가고 있는 나무가 보인다. 얼마나 추울까. 따끈한 차 한 잔이 생각난다.

 

말뚝!

각시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도 절한다.’는 옛말이 있다. 부인이 얼마나 예쁘고 흡족하면 처갓집 말뚝에다 대고 절을 할까, 가히 짐작이 간다. ‘아쉬워 엄나무 말뚝이란 말도 있다. 무당이 귀신을 쫓을 때 귀신아, 썩 물러가라. 안 물러가면 무쇠두멍을 씌우고 엄나무 말뚝을 둘러 박겠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최후의 수단이다. ‘장마논에다 물길 막고, 애호박에다 말뚝 박고…… 흥보가중 놀부의 심술을 묘사하는 대목이다.

고 박완서의 소설 엄마의 말뚝에선 이북에서 내려와 자리 잡은 인왕산 기슭의 달동네에서 삯바느질로 어렵게 살림을 꾸리며 장만한 작고 낡은 집. 서울에서 마련한 최초의 소유(所有), 그 집은 곧 엄마의 말뚝이 된다. 건물 신축공사를 할 때 건축부지에 말뚝을 박는 것, 내 집과 이웃집의 경계에 울타리를 세우는 것은 곧 소유권리와 경계의 표시다. 맹수들이 자신의 영역표시를 위해서 자기 구역의 경계에 오줌을 누는 것도 마찬가지로 말뚝을 꽂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서부개척시대의 서양역사에서도 드넓은 황야에 말을 달려 먼저 도착한 사람이 말뚝부터 박고 그 말뚝에 깃발을 꽂아 땅을 차지하는 것과 같다. 무법천지 시대의 이야기다.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발을 디딘 알피니스트는 자신의 나라 국기를 꽂는다. 내가 드디어 여기에 왔노라! 하는 증거의 표시다. 우스개소리로 곧잘 하는 말, ‘말뚝 먼저 박는 놈이 주인이라는 말도 있다. 경계와 소유의 표시다. 함부로 내 허락 없이 범접하지 말라는 경고의 뜻도 되고, 증거도 된다.

 

 

 

 

 

쇠말뚝은 깊게 박고, 모는 얕게 심는다는 농사속담은 소를 맬 말뚝은 깊게 든든히 박아서 소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해야 하며, 모는 얕게 심어야 뿌리의 활착이 쉽게 이루어져 잘 자라게 되므로 얕게 심어야한다는 의미이다. ‘뜬 모가 장원 한다’ ‘뜬 모가 잘 심은 모다도 같은 뜻이다. 무슨 일이든 한 가지 방식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마다 사안(事案)에 맞게 처리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애호박에 말뚝 박기는 놀부가 잘 하는 짓으로 한바탕 웃자고 하는 것이다. 남의 잘되는 일에 배가 아파 재를 뿌리기, 잘 진행되는 남의 혼사를 방해하기 위하여 악성 루머를 퍼트리며 트레바리 치기 등, 우리 주변에도 더러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 정도는 쉽게 이해하고 양보하며 타넘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잿독에 말뚝 박기또는 무른 땅에 말뚝 박기도 있다. 재나 모래에 말뚝 박기는 얼마나 손쉬운가. 우리말의 누워 떡 먹기이거나 영어식으로는 ‘a piece of cake’ 쯤 되어 쉽게 생각되지만 살펴보면 상대를 함부로 얕잡아보지 말라는 주의도 스며있다.

씁쓸하지만 경찰의 과잉데모진압에 사용되었던 각목도 말뚝이다.

 

교활하고 뻔뻔한 일본의 말뚝행위는 어디에 속할까. 한두 번 당하는 일이 아니지만 여전히 속이 뒤집힌다. ‘말뚝 테러는 국가와 국가 간의 문제이다. 우리로서는 민감 사항일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런 꼴을 보고 있어야 할까. ‘귀신아, 썩 물러가라. 안 물러가면 무쇠두멍을 씌우고 엄나무 말뚝을 둘러 박겠다하고 단칼에 쳐버리는 최후의 수단은 없을까.

 

나무로부터 태어난 말뚝. 멀리 내려다보이는 나무가 나의 궁시렁거림에 대화를 이으며 저물어가는 도시의 저녁나절 속으로 하염없이 빨려 들어간다. 내 마음도 실려간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도 멎지 않는다. 나무가 속내를 들려준다.

바라건대 자기 자신은 물론 자식들이 비록 멋진 가구로 몸을 바꾸지 못하게 되어 장작이나 불쏘시개가 되어 추위를 녹여주는 군불거리 땔감이 될지언정 경찰의 과잉진압 말뚝이나 일본의 테러도구 말뚝처럼, 폭력의 다른 이름으로 쓰이는 말뚝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고. 자식의 겉을 낳지 속까지 낳는 건 아니더라고 탄식한다. 자식 걱정하는 어머니 마음 다 한가지다. 그 마음 알겠다. 나도 어미이니……. 늙어터진 주름 사이로 추위에 노출된 나무의 속살이 보인다. 애잔하다. 내리는 가을비 탓만이 아닐 것이다. 저무는 노을 탓만도 아닐 것이다.

나무야 너도 지금 몹시 아프구나. 너의 마음 내가 알고, 내 마음 너도 아는구나.

 

땅에 박으면 표식(標識)이 되지만 뽑아들면 흉기가 되기도 하는 말뚝. 폭력의 앞잡이가 되어서는 안 되듯이 어떤 이유로든 말뚝이 과오와 만행을 저지르는 무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폭력이나 무기 앞에 무너져서도 안 된다. 하물며 나라와 민족의 권익 앞에서야.

끓는 속을 달래고 나무의 마음을 달래주기로는 차 한 잔이 아니라 더 화끈한 도수의 술 한 잔이 제격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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