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지금 내가 선 자리가 우주의 복판이다 * 權 千 鶴

천마리학 2014. 1. 11. 12:42

 

 

 

지금 내가 선 자리가 우주의 복판이다 * 權 千 鶴

 

 

때는 마침 12, 한해의 막바지다. 어느 덧 일 년을 마감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연말휴가차 가족여행도 계획되어 있고, 아슬아슬 몇몇 청탁원고의 기한을 넘기지 않고 보냈고, 금년 마지막 고정칼럼의 원고도 써 보냈으니 홀가분하다. 그 홀가분함으로 잠시 차 한 잔 느긋하게 즐길 수 있으니 참 좋다.

 

이때쯤이면 먼 듯 가까운 듯, 습관처럼 지나와 버린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된다. 작년도 있었고 제작년도 있었고 그리고 그보다 더 먼 시간들도 들춰진다. 굳이 멀리 갈 것 없다. 거창할 필요도 없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거창하게 계획도 세우고 연말이 되면 실망하곤 하던 경험도 했다. 계획이 때로는 고단할 뿐이라는 것도 알았다. 그때그때의 작은 돌아봄이 거창한 계획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나이가 된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한 가까운 것들부터 점검하자. 나는 언제나 세상의 복판이니까. 한 해 한 해가 쌓여서 나를 이루어 나가고, 또한 역사의 한 마디가 될 테니까. 굳이 먼 시간까지 더듬는 수고가 필요 없다. 이미 화석이 되어버린 먼 시간 속의 일들은 추억으로 접어 두면 된다. 바로 어제의 실수, 가까운 시간 속의 실패는 돌아보기도 쉽고 만회하기도 쉽다.

돌아보면 심심해볼 겨를도 없이 바빴지만 별 탈 없이 여기까지 왔다. 가족들이 다 저마다 제자리에서 잘 지내고 있고, 건강도 그만그만하니 괜찮다. 내가 하는 일은 글을 쓰는 일, 가끔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나이를 실감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좋아서 하는 일이었고, 유익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사하다!

 

오십을 넘어서면서 시력이 떨어져서 돋보기 없으면 신문이나 책을 읽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돋보기를 일일이 챙겨야하는 일이 귀찮아 허둥대며 늙음을 실감했다. 서늘했다. 문득, 너무 많은 것을 보려고 하지 말라는 섭리(攝理)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만이 아니었다. 청력도 문제될 정도는 아니지만 약간 떨어졌다고 느껴질 때가 더러 있었다. 맞다. 귀도 이제 세상소리들을 다 들으려고 하지 말고 들려오는 것만 들으라는, 아니 들려오는 소리 중에서도 골라 들으라는 순리의 신호구나 생각했다. 너무 많이 보는 것도 너무 많이 듣는 것도 부담스럽다. 없는 시간을 축내고, 비좁은 머리를 복잡하게 할 뿐이다. 우리의 몸이 얼마나 신기한지. 신의 조화가 얼마나 오묘한지 경탄해마지 않았다. 공맹자(孔孟子)가 아니라도 살아가면서 저절로 체득되는 일이다.

 

 

지금 나는 분명 젊지 않은 시기이다. 봄여름가을겨울로 치면 늦가을이거나 초겨울, 어느 사이에 그렇게 됐을까 으아스럽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그러나 늙지 않았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순서가 어디 있는가. 시작과 끝으로가 아니라 돌고 도는 시간의 순환을 헤아리기 편하게 인간들이 가려놓았을 뿐이다. 그렇다면 나도 나에게 맞게 다시 가릴 권리가 있다. 순서를 바꿀 수는 없지만 역할은 규명할 수 있다. 말하자면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겨울은 겨울대로 다 의미가 있고 역할이 있다. 그 의미와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가을이라고 스산해지거나 겨울이라고 쓸쓸해할 필요가 없다. 찬란한 가을 단풍과 훌훌 벗고 서있는 나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얀 눈으로 혁명처럼 세상을 뒤덮는 겨울 또한 뜨거운 생명을 품고 있는 차가운 대지가 얼마나 열정적인가. 가을이면 어떻고 겨울이면 어떤가. 한해 한해를 더 새롭게 보내면서 차분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다. 좋다!

젊었을 때는 왜 그리 힘 든 고비도 많고 왜 그리 거슬리는 일도 많은지,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부터 시작해서 주변에 대한 불만, 가족에 대한 불만······

나는 왜 그리 좋은 배경을 가지지 못 했는가? 능력이 없는가? 불운한가? 이 나이 먹도록 뭘 했을까?······ 실망도 하고 좌절도 했다. 결국 나의 부족함이 문제였고, 불평불만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갉아먹는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나로부터 시작된 불만이건 세상으로부터 시작된 불만이건 언제나 최종종착점은 나 자신이다.

생각을 바꿨다. 불만은 희망의 다른 표현이었고, 나의 삶을 이끌어가는 주인은 나라는 것. 나의 주인이 나다. 나는 세상의 주인이기도 하고 우주의 주인이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소 느긋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었다.

가족, 이웃, 사회, 국가, 그리하여 세상으로 불만을 옮겨놓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자칫 핑계가 되고 불손한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된다. 그 잘못된 핑계나 변명들은 그릇된 사고(思考)를 만들고 자칫 그릇된 행동으로 변질되어 그야말로 사고(事故)를 일으킬 수 있다. 그래서 좋아질 리가 없다. 아무리 불리한 조건이라도 건실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나의 입지가 좋아지고 나의 삶이 발전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구덩이로 빠지게 된다. 세상은 여전히 변함없이 굴러가는 수레바퀴일 뿐인데, 그 수레바퀴를 굴려야지, 치여 버둥댈 수는 없다. 나 자신은 곧 현장(現場)이고 현실(現實)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살아있음의 증거이고 살아있는 존재이다. 쓰러지지 않고 여기까지 도착한 것도 좋다! 참 고맙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꿈을 꾸는 것이다. 꿈을 이루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이 곧 행복이다. 꿈은 멀고 큰 것이 아니다. 내 손안에 있다. 그동안 잘 되지 않았던 것은 너무 크게만 생각했던 탓일 수도 있다. 못 이룬 꿈을 내년으로 이월(移越)시키자. 모든 것이 다 약이 되었듯이 이 결심 또한 내년 연말에 약이 되도록 실천할 의지만 있다면, 지금까지 해내지 못한 그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다 핑계였다고 생각하고, 툭툭 털어버리자. 그 동안에 했던 좋지 않은 경험조차도 좋은 공부가 되었을 터이니 다시 전력투구할 전세(戰勢)만 가다듬으면 된다. 작은 일부터 충실히 해나가면 큰일도 풀린다. 작년, 재작년······이 있듯이, 내년, 내후년······도 있다. 그리고 여전히, 나의 주인은 나다. 따라서 나는 세상의 주인이며 내 자리가 세상의 복판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 그 중심에 꿈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지난 그을음은 툭툭 털어버리고 다시 새롭게 출발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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