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죄를 모르는 죄-아베신조와 일본

천마리학 2013. 10. 4. 04:33

 

 

 

 

죄를 모르는 죄 * 권 천 학

 

 

아베신조(安倍晋三) 그 남자,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로서 최소한의 정치윤리나 국제윤리도 모르는 것 아닌가싶다. '731'이 적힌 전투기에 앉아서 731 숫자를 가리키며 엄지손가락을 세우고 히벌쭉 웃고 있는 모습이라니, 나머지 손가락이 자기가슴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기나 할까? 전사(戰史)에 남는 무공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숫자를 전투기에 새겼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잔혹한 근성을 자극시키며 진두지휘하는 것 같다. 같잖타!

 

731부대(部隊, ななさんいちぶたい)는 일본제국의 육군 관동군 소속으로 19321945년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하얼빈에 주둔하면서 비밀 생물학전 연구 및 개발명분으로, 히로히토의 칙령으로 설립한 유일한 부대이다. 첫 부임자가 '이시이 시로'라서 이시이 시로 부대(石井部隊)’라고도 한 이 부대의 실상은 중국과 한국, 러시아인 등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생체 실험한 세균전 부대다. 히로히토의 막내 동생이 장교(고등관)로 복무하였으며, 공식적으로는 헌병대 정치부 소속 전염병 예방 연구소’,'방역과 급수에 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처럼 가장 하고, 진짜 목적을 위장하기 위해 휴대용 야전 정수기를 개발하는 제스처를 쓰기도 했다.

 

 

 
731부대생체실험 유적지에 전시된 모형으로 부대원들이 실험실에 '마루타'를 발가벗겨 넣은 뒤 내부를 서서히 진공상태로 만들어 시간대에 따른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사람을 산 채로 배를 가르고, 다리를 자르고 세균을 몸속에 넣고, 속속들이 난도질 해가며 처참한 목숨의 몸부림을 계기판을 읽듯이 숫자로 표시하고, 임무수행의 성취감으로 증상을 기록해가는 그들은 분명 악마다. 상부에 보고하며 목적달성의 쾌감을 맛보는 그들은 지옥의 사자(使者)일 뿐 사람을 짐승으로 다루는 악랄한 짐승이었다. 희생자 대부분이 우리 한국인이다. 공개된 당시의 기록사진들을 보고도 제대로 잠을 잘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만약 미국이 원자폭탄을 터트리지 않았더라면 만행은 계속 더 확장되었을 것이다.

그 참혹한, 반인류적 상징 위에 서서 미소를 날리는 일, 일본의 총리로서도, 지식인으로서도, 그냥 사람으로서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다.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이 지켜보리라는 것을 모를까? 몰랐다면 바보다. 일본인들이 모두 그를 영웅으로 쳐 받들 거라고 믿고 있을까? 그렇다면 일본은 짐승의 왕국이나 다름없다.

아무리 인간 도륙의 주범이라는 사실을 덮으려고 해도, 우리가 알고, 일본 스스로가 알고, 역사가 알고, 그리고 하늘이 아는 일이다. 웃고 있는 그의 뺨을 후려치고 싶다. 그의 뇌 속을 해부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분노가 치민다.

 

유태인 학살 현장의 하나인 다카우(Dachau) 캠프를 돌아보고 인간기름을 짜내던 가스실이며, 인간이 동물과 진배없이 취급되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변기며 비좁은 나무 침상, 벽의 자국들 등, 핏물 밴 아우성이 들리는 듯, 당시의 흔적들 앞에서 붙어있는 설명문조차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읽어보기도 전에 바늘 끝처럼 찔러오는 인간으로서의 절망감과 모멸감으로 올라오는 토악질을 참을 수 없었다. 전시관 앞 정원에 추레한 모습으로 서있는 유대인 동상 앞에서도 저미는 아픔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과연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가? 동행한 친구 쟈닌은 질금질금 눈물을 흘렸다.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리며 겉돌듯 겨우 걸어 나올 수 있을 정도였고, 나 또한 돌아와서도 몇 날 동안을 몸살 앓듯 앓았다.

쟈닌이나 나는 피해당사자들의 국민도 아니고 후손도 아니다. 다만 같은 과()의 인간 종()에 속한다는 것만으로도 치가 떨렸다. 하물며 동족의 희생을 마루타로 희생시킨 과거의 역사 앞에서 흥분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슨 일로 우리는 흥분하고 절망해야할까.

 

2008년 여름, 독도의 명칭을 리안쿠르 바위로 바꾸려는 음모를 맨 처음 알아내어 그 일을 저지하고 나선 딸에게 나는 알면서 행동하지 않으면 매국노라라고 단호하게 말하며 저지할 것을 부추겼었다. 지금도 독도문제나 위안부 문제를 놓고도 망언을 일삼고 여봐란듯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는 일본을 보면 울화가 터진다. 일본을 직시하지 못하는 일부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중국이 731부대 생체해부의 잔악상을 고발하기 위해 1988년에 상영한 영화 ‘흑태양731’(黑太陽731)의 포스터. 출처=중국포털 바이두

 

 

 

독일은 이미 전 세계를 향하여 과거사를 사과하는 큰 정치를 실행했다. 피해가족들을 일일이 찾아서 사과문을 전달하고 피해보상금을 지급했다. 며칠 전에도 메르켈 총리가 다카우 수용소를 방문하고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사죄했다. 작년에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한 선배에 따르면 그 선배 이웃에 사는 노인이 독일정부의 끈질길 조사로 피해자의 후손이라는 것이 뒤늦게 밝혀져 새롭게 연금지급을 받게 됐다고 한다. 사과문을 들고 온 고위 정부인사가 용서를 빌며 피해자가족을 위로하고 연금지급을 받아달라고 하자 그 노인은 지난 일들은 이제 잊어야겠다고 반갑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저질러진 인간말살 사건, 그러나 독일과 일보, 메르켈과 아베신조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이제 일본은 우리로부터 용서를 받아야하는 처지다. 그런데 되레 망언과 망동을 심심찮게 저지르며 오히려 분노만 키우니 우리가 일본을 충분히 제압하는 강국이라면 일본이 과연 그럴까?

프란츠 카프카의 심판에 나오는 죄를 모르는 죄를 떠올리게 한다. 뻔뻔하고 무모하다. 가난과 무지는 죄가 아니라고들 하지만 나는 가난도 무지도 모두 죄라는 말을 가끔 사용한다. 무지는 무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쌍하다는 주석도 덧붙인다.

죄를 모르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까. 이럴 때 왜 우리는 침묵해야하는가. 걸핏하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민중들, 걸핏하면 대통령의 사과나 요구하는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외교안보를 담당하는 고위층들은 이럴 때 왜 서릿발 서는 단호한 한 마디를 내지르지 못하는가? 그저 유감스럽다거나 이런저런 비난의 소소한 물결로 지나치는 것이 안타깝고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우리의 위약함을 감추고 외교적 용어로 포장하는 것이 못내 속상하다.

위정자들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은 우리에게 간곡하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