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토론토거리의 농심라면

천마리학 2013. 9. 27. 07:27

 

 

토론토거리의 농심라면 * 권 천 학

 

 

스파다이나 에비뉴를 걷는데 달리는 스트리트 카(시내버스)에서 뭔가를 봤다. ? 멀어져가는 스트리트 카를 다시 눈 여겨 보았다. 엔 오 엔 지 에스 아이 엠 아 에이 엠 이 유 엔, 농심라면이잖아! 여백이 많은 가운데에 ‘Nongsim Rameun’ ‘農心이란 글자가 선명하다. 우리나라의 농심라면 광고였다. 서양사람 남녀가 라면그릇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아 호호 불어가며 그 매콤한 맛을 음미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왜 지금까지 이 거리를 수없이 지나다니면서 무심했을까. 저 광고를 몇 번 본 것 같은데 이제야 눈여겨보다니. 코너를 돌아 킹 스트리트 쪽으로 몸을 트는 스트리트 카를 더 유심히 시력을 있는 대로 모아 쏘아보았다.

스트리카들의 옆면을 가득 채운 광고들을 익숙하게 보아온지라 눈에 띄면 보고 안 띄면 말고 하는 게 광고다. 시선을 사로잡는 울긋불긋한 색체의 그림이나 사진들로 스트리트 카를 치장해주는 광고는 관심이 있든 없든 눈에 익어져 기억 속에 박히기도 한다. 그게 광고다. 그런데 토론토의 도심을 달리는 스트리트카에 농심광고가 있다니. 스트리트 카가 시야에서 사라진 후에도 가슴이 뻑적지근했다. 마치 신라면 한 그릇을 먹은 후의 포만감 같기도 하고 그 알큰한 매운 맛에 알딸딸 후련하고 상쾌해진 그런 기분이었다. 아니 거기에다 더하여 뿌듯하기까지 했다.

 

딸과 나는 농심 신()라면을 즐겨 먹는다.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비가 오는 날이거나, 또는 그냥 어정쩡한 날에도 먹는다. 특히 딸은 실컷 저녁식사를 한 후에도 뭔가 허전한 듯, 농심 라면 한 개를 더 먹어야 직성이 풀려서 사위의 눈을 커지게 만든다. 딸이 먹는 것을 보고 나도 덩달아 먹고 싶어져 두어 젓가락 얻어먹는다. 그러다보니 라면을 끓일 때마다 엄마도? 하고 묻는 것이 순서가 되었다. 엄마 핑계대고 두 개를 끓인다. 그때마다 늘 살찌는 것을 염려하면서도 아니 대신 응, 당근이지 하고 대답하고 만다. , 이 중독성! 이건 분명 라면 사랑이기도 하고, 나아가 나라사랑이기도 하다! 김치 한 가닥씩 척척 얹어먹으면서 우리 모녀는 하하호호 즐겁다. 우린 틀림없는 한국사람이다! 맞장구까지 친다.

 

 

 

 

 

 

우리 집 라면은 따로라면이다. 먹는 사람 따로, 끓이는 사람 따로다. 딸이 아, 라면 먹고 싶어! 하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오우, 라멘? 하고 끓일 준비를 하는 사람은 바로 스위스사람인 사위다. 아들이 아니고 사위니 다행이지흐흐흐. 우리 모녀가 라면을 즐겨 먹는 것이야 한국사람이니까 당연한 일이라고 치고, 주로 끓여대는 사람은 사위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어 엄마도? 하고 묻기까지 한다. 당근이지! 제 마누라 몫만이 아니라 장모 몫까지 알아서 챙기니 괘씸할 리가 없다. 냄비에 물을 붓고 스토브 위에 올리고 젓가락까지 챙기는 사위의 동작이 자연스럽다.

사위가 없을 때는 엄마인 내가 끓이지만 사위가 있을 땐 주로 사위 차지다. 이거야 뭐 장모가 무섭거나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사위가 애처가이기 때문이므로 장모인 나는 전혀 개의치도 않고 미안하지도 않다. 그래도 처음 함께 살기 시작하던 몇 해 전만해도 한국식 엄마인 나는 미안해서 사양하기도 하고, 내가 끓여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사람이란 환경에 쉽게 적응하는 법, 시간이 흐르면서 나의 미안한 생각은 사라졌고, 오히려 제 마누라 먹는데다 젓가락 하나 더 놓는 건데 뭐 하는 뻔뻔함까지 생겨서 지금은 당당하다.

가끔 사위도 라면 먹기에 동참한다. 처음엔 뜨겁고 매운맛에 눈물을 찔끔거리기까지 했다. 먹고 나서 똥구멍에 불나는 것 같다고 표현했다. 아무렴, 사위사랑은 장모 아니던가. 매운 스프를 반만 넣기도 하고 다른 야채들을 추가로 넣어 끓이기도 해서 권해봤다. 오케이! 이것으로 장모의 역할은 끝!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집에서 먼 한국슈퍼마켓까지 라면을 꼭 사온다. 그래서 우리집 찬장의 한 칸엔 농심의 라면들이 골고루 있다. 그 중에 신라면이 가장 많다. 한국에서 살 땐 별로 즐기지 않았는데 정작 이곳 캐나다에 와서 살면서 라면을 더 즐기게 되었다. 이것을 향수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음식엔 영혼이 있다고들 한다. 공감한다. 삶이 고단할 때 생각나는 음식,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지고 그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그 때문일 것이다. 외국여행 중 어느 순간엔가 갑자기 집에서 먹던 된장찌개나 두부김치가 먹고 싶어지는 것을 누구나 경험했을 것이다. 비교적 외국음식을 잘 먹고 적응도 잘하는 나도 그런 일이 있다.

 

 

십여 년 전 유럽의 최고봉이라는 융프라우에 갔을 때다. 얼음동굴을 더트고, 꼭대기의 전망대에서 눈 아래 펼쳐진 눈의 파노라마를 둘러보다가 문득, 라면이 먹고 싶어지면서 느닷없이 남원의 광한루가 떠올랐다. 매섭게 추운 어느 겨울, 문학세미나 참석차 남원에 갔다가 광한루를 둘러보게 되었다. 펑펑 쏟아지는 눈발을 맞으며 자판기에서 컵라면을 뽑아 호호 김을 날리며 먹던 추억과 함께 라면생각이 간절해졌다. 전망대 휴게소 매점에 우리나라의 컵라면이 있을까 살펴보았다. 애석하게도 없었다. 필리핀 라면인지 말레시아 라면인지가 있어 아쉬웠다. 닭 대신 꿩이라고, , 우리나라 라면은 여기까지 못 올라온 거야! 투덜대면서 비싼 돈 주고 타국의 컵라면을 사먹었다. 분명 맛은 우리나라 라면보다 못하고, 값은 더 비쌌다. 국력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딸은 신상품이 나왔다는 정보만 얻으면 즉시 사다가 시식부터 했다. 김치라면, 둥지냉면, 너구리, 각종컵라면, . 그러나 가장 즐기는 것이 신라면과 안성탕면이다. 지금은 손주들까지 라면을 즐긴다. 짜파게티는 스넥으로도 많이 이용한다. 매운 것을 못 먹던 여섯 살배기도 스파이시 누들! 하면서 신라면을 끓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그런 라면 광고를 이곳 토론토의 거리에서 보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라면회사에서 나에게 라면 한 개 공짜로 준 일 없지만, 또 라면 많이 먹는다고 표창 받은 일도 없지만 우리나라 라면이 외국의 거리에서 버젓이 광고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흐뭇한지 모르겠다. 삼성, LG와는 또 다른 기분이다. 이젠 한국의 맛, 맛의 승부다.

융프라우 꼭대기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떠올랐다. 내친김에 융프라우까지 쳐들어갔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의 농심라면이 세계의 대표라면이 되면 좋겠다. 라면 먹을 때 호호 불어가며 먹는 바람처럼 오늘따라 스파다이나 에비뉴에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