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감(感)으로 하는 봄 사냥 * 權 千 鶴
3월! 말만 들어도 몸 어딘가에 새싹이 돋을 것 같다. 햇살 속에 초록의 향수가 들어있고, 공기는 산소로 부풀었다. 불어오는 바람결도 미네르바의 리듬이다. 에글링턴의 어느 주택가 앞을 지나다가 졸졸졸 시냇물 흐르는 소리에 귀가 번쩍 띄었다. 길가에 쌓여있는 눈들이 녹아 하수도로 흘러내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가 마치 봄이 오는 소리 같아서 잠간 멈춰 서서 들었다. 같은 토론토시내인데도 우리가 사는 도심과 다른 풍경이다. 어디 한산한 변두리로 나가면 겨울과 봄이 서로 밀고 당기는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토론토의 겨울은 길다. 긴 겨울의 끝자락을 밀쳐내며 조금씩 봄이 점령해오고 있는 중이다. 그라운드호그(Groundhog)도 올봄이 빨리 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금쯤 한국의 지리산 발치에선 고로쇠나무의 둥치에 바늘이 꽂혀 있을 것이고, 산동마을은 산수유들이 살을 트느라 불면의 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 계절의 나들목이다. 길목 특히 나들목은 항상 조심해야한다. 자객이 숨어있어 사고가 잦기 때문이다. 이순신장군은 남해바다 나들목에 숨어서 적을 처치했지만, 정몽주는 개성의 길목에 숨어있던 자객에게 목숨을 잃었다. 봄의 나들목 역시 자객을 숨겨놓았다. 느슨해진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철만난 개구리처럼 뛰어오르다간 곤욕을 치르기 쉽다. 무슨 일인가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충동에 안하던 운동을 시작해도 무리하면 문제가 생긴다. 여기저기 굳은 관절이 툭툭, 잠자던 근육들이 튕겨져 반란을 일으키기 전에 미리 몸을 달래가며 서서히 잠들어있던 겨울잠을 깨워야 한다.
‘약을 먹으면 일주일, 그냥 두면 칠일 걸린다’는 불청객 감기도 봄 길목의 자객이다. 일주일과 칠일, 어감(語感)이 다르다.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변덕을 경험하지 않을 사람 없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 다른 느낌, 그것이 바로 감(感)이다. 경험에 의하면 환절기 감기는 특히 까다롭다. 머리는 어질어질, 속은 니글니글, 마치 입덧 증상과 비슷하다. 하긴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봄, 머지않아 출산을 앞두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만도 하다.
어디 몸 뿐이랴. 특히 봄이면 마음이 산란한 걸음으로 앞서며 싱숭생숭. 어녹으며 부풀었던 땅이 녹으면서 푸석푸석 허방이 생기듯, 마음도 추위에서 벗어나 싹을 틔우는 나무들처럼 생살 트는 살앓이의 아픔을 느끼며 훨훨 날아보고 싶어진다. 칼을 품은 봄바람은 옷깃을 헤치고 품으로 파고든다. 그 사이를 헤집고 꽃샘추위도 다녀간다. 몸이 축 쳐진다. 아니 마음까지 쳐진다. 또 하나의 자객, 봄 우울증이다. 이 좋은 봄날, 희망편지를 쓰는 것만으로도 부족한데, 그깟 우울증으로 허비하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 새봄맞이 행동에 돌입해야한다. 최고의 방어는 공격! 쳐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봄의 불청객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선수(先手)를 치자. 자, 떠나자 봄 사냥!
가장 손쉬운 봄 사냥터는 슈퍼마켓이다. 좌판대 위에 기다렸다는 듯이 냉이가 언 땅이 채 다 녹기도 전에 뿌리내리느라 거므틱틱해진 얼굴을 내밀고 있다. 냉이를 보자마자 고국의 봄나물들이 떠오른다. 초록을 한 소쿠리 수북하게 담아내는 원추리 어린잎이, 겨울추위를 희롱하듯 감싸 안은 노란 속곳을 슬쩍 드러내어 입안의 침을 돌게 하는 봄동배추가, 안양천 어느 둔덕의 마른 풀섶을 들치며 뾰족뾰족, 조막손을 내미는 민들레며 망초며, 그 곁에서 쑥도 솜털 보송보송한 이마를 내밀고 있을 것이다. 관악산 골짜기 바위틈에서 모락모락 안개처럼 피워 오르고 있을 새 촉들, 새벽마다 드나들던 서울대학교 수목원의 맥문동 밭에선 자색의 움들이 소나무 아래 다져진 그늘을 밀어내며 봄 아지랑이처럼 아른아른 무리지어 올라올 것이고, 서양병꽃이며 산목련이 참을 수 없어 은장도의 칼끝을 내비칠 것이다. 아! 어지럽다. 유리진열장 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용케도 알고 물미역 무침과 다시마가 쌈 용으로 나왔다. 어떻게 그 먼 바다에서 여기까지 왔니? 나도 모르게 덥썩, 다가가서 손을 뻗는다. 그 손끝에 수많은 바다들이 이끌려나온다. 퀘백을 지나 북쪽으로, 고래를 보러 간 타두삭의 반짝이는 은물결, 그림 같은 써핑을 감상하며 탄성을 질러대던 하와이의 드림비치(Sunset Pipeline), 초록 바다거북이를 만나러 간 거북이바다(Laniakea Beach) 그리고 물빛 고와, 너무나 고와 눈물겹던 지중해, 잔잔한 왈츠의 선율로 다가오던 니스의 바다, 노래로 들려오는 카프리섬의……, 그 바다들을 훌쩍 뛰어넘으면 폭풍 몰아치는 동해바다를 만나러 달려간 새벽 방어진이며, 그 너머 노상 넘보는 눈길 때문에 잠 못 드는 독도……. 기억의 창고 곳곳에 널려있는 바다, 그 바다를 테마로 한 바다 연작시 <초록비타민의 서러움, 혹은>은 온통 바다에 절어 쓴 시집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지금 내가 뻗은 손끝에 이끌려오는 바다는 우리나라의 남해, 살 같은 햇볕을 받아 윤기 자르르하던 어느 이른 봄날, 남해바닷가마을의 텃밭에 무성하던 하늘초, 그 푸른 물결 위에 떠있는 섬 ‘사랑도’를 지나고, 이어 제주……, 어느 새 제주로 성큼 날아가고 만다.
식탁위에 오른 싱싱한 물미역, 마치 세상의 다른 것들은 일체 먹지도 않는 사람처럼 생물미역의 넙적넙적한 잎에 초고추장을 얹어 쌈으로 한 접시를 다 먹어치운다. 비우기 무섭게 어느 새 다음 접시가 또 올라온다. 아작아작, 어금니아래 봄을 몰아넣고 씹는다. 오래된 일이건만 여전히 봄만 되면 물미역이 생각나고, 비워내기 무섭게 물미역 접시를 연달아 올라오게 해놓고, 봄 바다를 맛있게 먹고 있는 나를 신기한 듯,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그가 생각나고, 그가 생각나면……, 가슴이 또 울컥해진다. 하수도로 눈 녹아내리는 물에서도 봄을 느끼고, 봄 사냥을 하러 대형 슈퍼마켓으로 나와야 하다니, 씀바귀 맛인 타국의 처량한 봄맞이로 헛헛한 가슴 고랑에 그 물미역이, 그 생 다시마가 지금 싱싱한 지느러미를 흔들며 헤엄쳐오고 있다. 냉이초무침과 물미역무침. 봄 사냥을 마친 저녁식탁, 봄 사냥의 수확물들로 풍성하다. 새콤함으로 출렁인다. 이토록 풍성한데도 왜 이렇게 허기지고 허전할까. 그 허기와 허전함을 무엇으로 메워야 할까. 떠나와 있음이 이런 것이던가. 참 지랄 같다.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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