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가족에게 편지 쓰기

천마리학 2013. 9. 3. 15:35

 

옮김

 

폭설설법 * 권 천 학

 

 

 

침묵도 너무 시끄러웠던 모양이다

앞마당 뒷마당 할 것 없이

몸속의 절 한 채까지 몽땅 흰 눈이 덮어버렸다

 

!

묵은 내장 속의 기왓장 들썩일라

발 없는 바람도 걸음을 죽인다

 

케케묵은 등골로 시간이 타고 내리던 지붕까지

몽땅 덮어 누른 흰 눈

봉래루 설선당의 돌계단 틈새로 스며

그나마 오래 고여 단단해진 침묵들도

화닥닥 입을 다물어버린다

 

희다 검다 내세우고

뜨겁다 차다 불평했던 일들이

다 가소롭다

 

비로소 절간이 된 풍경 앞에서

가슴 속 깊이 닻을 내리고 있던

티눈 박힌 생각 하나

움찔 목울대 너머로 삼켜 버리고

핏물이 배도록 입술을 깨문다

 

희디흰 설법 위에 찍힌 새 발자국

보일락 말락

언뜻 스치는 미소

 

 

 

 

 

 

 

가족에게 편지 쓰기 * 權 千 鶴

 

설이다.

해마다 맞이하는 설이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의미가 달라진다. 즐기는 방법도 세대(世代) 따라 입장 따라 다르다.

한국에서처럼 시끌벅적하지는 않지만 이곳에서도 마음만은 시끌벅적, 설맞이의 기분을 느낀다. 다양한 설맞이 행사도 있고 또 나름 설맞이를 가지는 가정들도 있을 것이다. 허나 그렇지 못한 가족들도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피치 못할 이유로 제대로 설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춥고 쓸쓸할 수밖에 없다. 때마침 이곳엔 근래에 드문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우리도 조촐하게나마 두 번의 신년하례를 했다.

매년 정초에 치르는 두 번의 신년하례. 내가 토론토에 정착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매년 두 번씩 갖게 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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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토론토 정착을 시작한 첫 새해였다. 딸 내외가 나의 생일을 대비해서 초대하고 싶은 친구가 있느냐고 물었다. 조촐하나마 생일잔치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다. 낯선 곳에서 맞는 생일에 행여 쓸쓸해하지나 않을까 하는 마음 씀이었다. 고마웠다.

나의 생일은 음력으로 치면 섣달이지만 양력으로 치면 1월 초순이다. 그래서 내 생일잔치를 하는 대신 가까이 지내는 한국인 가정을 초대해서 신년하례로 대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것이 고국 떠나 사는 사람들끼리 따뜻한 가슴 나누기가 아닌가 해서였다. 내가 고쳐 제안했다. 생일잔치 대신 몇몇 친구가정을 초대해서 함께 즐기자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약간의 걸리는 문제가 있었다. 우선 집이 협소했다. 바깥에서라면 모르지만 집안에서 하는 행사치고는 장소가 넉넉지 않았다. 가족 단위로 초대하다보니 대개들 자녀가 두세 명씩은 되었다. 손자와 손녀를 포함하여 다섯 식구인 우리 가족까지 합치면 장소가 협소할 수밖에.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가 초대하려고 하는 친구들이 서로 하는 일도 다르고 안면도 없는 터여서 모이면 잘 어울릴 수 있을지 하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번으로 나누어서 하기로 했다. 한 번은 세 가정, 한 번은 두 가정. 가정 수는 적어도 서너 명씩의 자녀가 있고, 또 우리집에도 손자와 손녀가 있다. 그래서 하는 일과 자녀 수를 고려해서 나누었다.

미리 연락하여 서로 부담 없는 적당한 날짜를 정하고 그 날짜에 맞춰서 딸과 사위는 음식을 장만했다. 그리고 모이면 즐겁게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시끌벅적하게 윷놀이를 벌려 딸 내외가 준비한 상품들을 돌린다. 언제나 아이들이 주역이다. 위아래 층을 뛰어다니며 왁자지껄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가곤 한다. 모임이 끝나고 돌아갈 때는 내가 마련한 향초를 각 가정에 선물로 주어 보낸다.

올해도 우리 모두 촛불처럼 나를 태워, 나도 밝고 주위도 밝히면서 살자!’는 말과 함께.

매년 향초 선물은 더도 덜도 아닌 말 그대로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올해 벌써 다섯 번 째의 신년하례식을 두 번에 걸쳐 무사히 치루었다.

 

우리 가족은 주변의 보살핌과 기도의 덕택으로 잘 보내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나 가족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안함이 든다. 누구나 다 같은 조건이나 상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에는 우리 가족외의 모든 이들에게, 나의 독자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지난번에 비비자!를 제안했던 것처럼.

가족에게 편지 쓰기

어떨까?

남편이 아내에게, 아내가 남편에게, 언니가 동생에게, 동생이 형에게, 할머니가 손자에게 등등. 특히 그 중에서도 나이 드신 어르신들에게 더 권하고 싶은 것은 자식에게 편지 쓰기. 그 동안 나이 들었다고, 부모라고 늘 자식에게 명령만 한다든지 바라기만 한다든지 시키기만 해왔기 쉽다. 그런 것들을 이런 기회에 고맙다는 속마음을 써 보내면 어떨까. 강력 추천한다.

 

가족 사이에도 다 만족할 수 없고 행복한 가정이라고 화나는 일이 없는 것이 아니다. 모자람이나 못마땅함이 왜 없겠는가. 꼭 미워해서가 아니라 살다보면 그렇게 된다. 한국에서도 자식을 만나러 역귀성이 시작된 지 오래고 제사도 여행지에서 지내기도 한다니 꼭 나 살던 방식으로만 고집할 수도 없다. 끊임없이 시대는 변해가고 수명이 늘어나면서 노인문제도 많아지고, 경제 불황으로 생활이 어려워지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나이 든 한 사람으로 젊은 세대들에게 미안함도 갖게 된다.

나이 들었다고 늘 받는 일에만 익숙해서는 안 된다. 줄줄도 알아야 하고 생각도 바꿔야 한다. 우리가 바꿔야하는 것은 외국에서 사는 탓만이 아니라 나이 탓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그것이 어른 노릇을 잘 하는 것이기도 하다.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다 고맙지 않은가. 애쓰며 사는 자식들의 모습도 고맙고, 곁에 있는 이웃도 고맙고, 자라는 어린 것들도 고맙다. 가장 고마운 것은 나 자신이 현재 이렇게 살아있는 존재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 힘만으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자식이 있어주고 이웃이 있어주고 사회가 있어주고 나라가 있어주어서다. 하물며 가족의 고마움을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이번 설맞이로는 덕담을 나누는 것만으로 끝내지 말고, 가족에게 속마음을 적은 편지 쓰기를 하면 좋겠다. 특히 자식들에게 편지를 쓴다면 그 자식들이 힘이 날 것이다.

때라도 맞춘 듯, 내려준 폭설. 그동안 있었던 궂은 일, 맺힌 일 다 눈 속에 파묻어 녹여버리자. 알고 보면 그 일이 모두 다 사랑하기 때문이었으니, 이제 감사의 편지를 쓸 시간이다.

편지 쓰는 일은 꼭 설날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이미 설날은 지나버렸으니 다소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그게 무슨 대순가. 지금이라도 자식들 보러 역귀성하는 심정으로 보내자.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너무 미루진 말자. 그리해서 자식들이, 젊은이들이, 가족들이 오는 새봄을 활기차게 맞이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