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사고다발의 아침

천마리학 2013. 8. 26. 12:54

 

 

사고다발, 살얼음의 아침 * 權 千 鶴

 

 

오늘 아침은 사고가 많은 아침이다.

P·A Day(Professional Activity Day)라서 학교가 쉬기 때문에 스쿨버스도 오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걸어서 아리(6)와 도리(2) 두 녀석을 각각 데려다줘야 한다. 바람이 칼끝 같다. 바람을 덜 맞는 소비즈 앞쪽의 길을 택하여 도리의 스트롤러를 밀고 브렘너 블러버드의 교차로에서 신호등을 기다렸다가 막 건너왔던 참이다.

“Which one?"

시티 플레이스 앞뜰로 가는 길과 로저스 센터 쪽으로 가는 길이 Y형으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도리에게 물었다. 늘 하는 식이다. 아리가 잽싸게 시티 플레이스 앞뜰로 뻗은 길을 택하자 도리도 따라서 택한다. 요즘 늘 다니는 길을 바꿔 도리와 함께 그 길을 통과하면서 나무 위의 새들과 이야기를 거느라고 멈춰 서곤 하는 지점이다.

“Say choolbal(출발)!” 이것도 늘 하는 식이다. 아리가 어렸을 적에도 했던 방식이다.

출발!”

도리의 호령에 따라 살짝 오르막인 그 길을 막 출발하려던 참이었다. 미끈!

길바닥에 쿵, 두 무릎을 찧으며 주저앉는 순간 도리의 스트롤러는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오른 손에 힘을 주어 밀어 올렸는데, 스트롤러가 내 쪽으로 기울었다. 두 무릎을 꿇은 채 왼손은 땅을 짚고 오른 손은 넘어진 스트롤러의 손잡이를 붙든 채였다. 수평으로 누워버린 스트롤러 위에서 도리도 하늘을 향해 누운 모습이었다. 바닥에 온통 살얼음이 덮여있어 쉽게 일어설 수가 없다.

“Are you OK?”

뒤따라 걷던 사람들이 쫒아와 도와주었다. 아리도 나름 앞쪽에서 스트롤러를 당기고 있었다.

“Thank you, thank you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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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출발하여 도란도란 도리 데이케어에 도착, 도리를 데려다주고 아리와 함께 아리의 데이케어를 향해 가는 길 역시, 아리가 늘 다니는 스파다이너 에비뉴 길을 버리고 리치몬드 스트리트로 방향을 잡았다. 아리에게 새로운 분위기를 선사하고 싶어서였다. 아리가 이 길로도 자기 학교를 찾아갈 수 있다고 하며 도란도란 걷고 있는데 뒤에서 덥썩 누군가가 끼어들어 깜짝 놀랐다. 엄마(나의 딸)였다. 우리보다 약간 늦게 집을 나와 출근하던 엄마가 스파다이나 에비뉴와 리치몬드 스트리트의 사거리 근처를 지나다가 우리 뒷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짤막한 동행. 아리의 데이케어까지 10분이면 충분한 거리. 아리는 제 엄마에게 조금 전에 할머니가 넘어진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할머니()의 부추 밑바닥이 닳아서 미끄럼 방지가 안되는 것 같다면서, 위험하니까 얼마 전에 새로 산 검은 색 부추를 신는 게 좋겠다고 한다. 그래야겠지 하며 아리의 학교 앞에서 엄마와 헤어졌다.

토론토에 온 첫해 겨울에 사서 신기 시작했으니 벌써 여섯 번의 겨울을 난다.

 

아리를 룸 5에 데려다 주고 앞 운동장으로 나섰다. 쌓인 눈을 양 옆으로 쓸어 가운데로 낸 운동장 길을 지나서 걸어 스파다이너 에비뉴 쪽으로 향했다. 미끄덩!

스파다이너 에비뉴와 접한 길 모퉁이에 있는 OKO 호텔 앞에서 두 발이 몽땅 하늘로 향할 정도로 넉장거리를 했다. 넘어지는 순간 등에 맨 백팩의 부피감이 느껴졌다. 덕분에 정수리부분만 살짝 땅에 박았다. 백팩이 나를 보호해 주었구나! 그리고 다음 순간 하늘이 시선안에 들어온다. 쨍 하는 칼끝 추위, 아주 청명하지는 않지만 하늘도 쨍 하게 닮아있다. 시원했다. 퍼뜩 임레 케르테스의 소설 운명, 운명속의 주인공이 떠올랐다. , 그가 모진 고통 속에서 깨달은 자유로움이 이런 것이었겠구나! 그 모진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행복할 수 있는 기회가고 하는가에 대한 불만을 늦게야 터득하게 됐지만, 그 터득하게 된 지점에서의 후련함, 자유의 맛이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했다. , 못 말리는 나의 상상력.

처음엔 넘어지는 충격으로 눈을 감았지만 떠오른 그 기분을 음미하고 싶어 다시 눈을 감은 채 얼음 바닥 위에 상쾌하게 누워 있었다.

 

“Are you OK? Are you OK?”

다가온 두 남자가 머리 쪽과 발 쪽에서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시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냥 누워있는 내가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물론 머리는 약간 띵했지만 이 사람들이 나의 기분을 이해할 순 없지. 괜찮으냐고 반복하며 내 손을 잡고 조심조심 나를 다루려고 하는 기색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조금 전의 그 하늘이 들어왔다.

두 남자가 나를 떼매려고 했다. 내가 눈을 뜨고 꿈지럭거리자 머리 쪽 남자가 발치 쪽 남자를 제지하는 손짓을 하고 내 옆의 길옆 눈밭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더니 두 손을 내밀어 내 손과 옆구리를 잡으며 자기가 있는 눈밭으로 천천히 몸을 굴리며 일어나라고 조언한다. 그의 손을 잡고 천천히 일어나 눈밭에 서는 동안 그 남자는 나의 기색을 살피며 계속 괜찮으냐고, 중국인이냐고, 캔토니즈(Cantonese, 廣東語)냐고, 만다린(Mandarin, 북경(北京語)이냐고 하더니 캔토니즈인지 만다린인지 모를 중국어로 계속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천천히 중심을 잡고 서서 코리언이라고 하자 오, 쏘리, 하더니 금새 안녕하세요, 하며 웃는다. 그 사이 발치에 섰던 남자는 어느 새 손에 염화칼슘 바켓을 들고와서 내가 넘어진 자리에 뿌리면서 하는 말. 벌써 오늘 아침에 그 자리에서 두 명이나 다른 사람이 쓰러졌다고, 염화칼슘을 미쳐 못 뿌려서 죄송하다고 했다.

 

나를 일으켜 세운 남자는 계속 나의 기색을 살피며 안에서든 밖에서든 내가 원하는 곳에서 잠시 쉬어가도록 하라고 권했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몇 발자국 옮겨서 눈밭의 벤치에 앉았다. 그 벤치는 지난봄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 아리를 픽업하면서 아리와 함께 앉아서 이야기도 하고 책도 읽어주며 쉬어갔던 호텔 앞 벤치다.

 

 

“Thank you, thank you very much!”

큰문제가 없음을 스스로 자각하며 약간 띵 한 머리를 만지는 나에게 정말 괜찮으냐는 남자에게 걱정 말라고 하며 걸으려고 하는데, 그가 컬러 이즈 베리 임포턴트!’ 했다. 시멘트 길바닥의 젖은 곳을 딛지 말고 마른 곳을 디디라고 일러주며 군데군데 초록의 인조잔디가 드러나는 눈밭을 벗어나 큰길로 나올 때까지 나를 부축해주었다. 다시 고맙다고 인사하며 돌아서는 내 등 뒤에 대고 그는 색이 매우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고, 나는 돌아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의 마지막 말, 색이 중요하다고 이르는 말에 쿡쿡 웃었다. 또 엉뚱한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떻튼,

 

‘Are you OK?’‘Thank you, thank you very much!’

똑같은 그 말을 사용하는 두 번의 사고가 있었던 아침이었지만 몸은 어디 한 군데 상한데 없이 가뿐했고, 기분도 겨울하늘 닮아 쨍하게 상쾌했다. 이곳 사람들의 친절과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나의 못 말리는 상상력을 머릿속으로 굴리며 걷는 걸음이 바빠졌다. 얼른 가서 이 이야기도 써야지 하고.

 

*P·A DayProfessional Activity Day):일 년에 몇 차례씩 학교선생님들이 모여 학교의 문제점들을 상의하고 새 학기의 계획을 세우는 날로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