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요지경(瑤池鏡) 대신 만화경(萬華鏡)을

천마리학 2013. 8. 23. 02:39

 

요지경(瑤池鏡) 대신 만화경(萬華鏡)* 權 千 鶴

-2012 연말풍경을 다시 다듬어본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새 대통령도 뽑았으니 이제 정말 한 해를 정리하며 마감을 해야 하는 경계의 시점이다. 침착하기도 어렵고 들뜨기도 어려운 연말분위기에 싸여 하루하루 마디를 재듯, 구석구석 되돌아보며 한 해 마무리를 하고 있자니 정말 침착하기도 어렵고 들뜨기도 어렵다. 한 해가 간다는 의미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일을 치룬 허탈감이 채 가시기도 전에 코미디 같은 일들이 빚어져 입맛이 쓰다. 복잡미묘한 그런 시기에 빚어지는 연말풍경이 마치 요지경(瑤池鏡)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가장 먼저 안테나에 걸려든 것이 안철수의 출국모습이었다. 선거 당일인 19, 투표가 채 마감되기도 전에 공항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특유의 시니컬한 웃음을 띈 얼굴로 유유히 사라졌다. 이어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그에게 들이댄 기자의 질문에 동문서답, ‘이곳에 생각을 정리하러 왔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헛 참! 내 입에서 김새는 소리가 났다.

 

 

 

 

처음 멋모르고 좋아했던 천사표 안철수가 대선 출마 훨씬 이전에 철수야 놀자!’라는 칼럼을 썼다. 이제 고만 허상의 나무에서 내려오라고, 박수소리의 허무에서 깨어나라고. 그의 크기만큼의 그릇으로 존재하면 족하다고. 그의 실패가 눈에 보여서였다. 그를 아끼고 싶었다. 내 나이만큼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다 다 그 정도의 눈은 있다. 아무리 입달린 사람 다 떠들어 시끄러워도 세상은 결코 그렇게 허물렁하지 않다. 이후 실망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여하간에,

그의 입에서 나온 새 정치’ ‘세대간 갈등등은 허상(虛像)이고, ‘백의종군하겠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겠다는 말은 그 어원(語源)에 대해서조차 모독이다. 그런 건 제쳐두고라도, 본의든 타의든 잠시 어깨포옹을 하고 노란 목도리를 두른 사이라면, 당선 되면 축하를, 낙선되면(이미 예상한 품새였지만) 위로 한 마디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최소한의 예()가 아닐까? 얄팍한 꼼수가 보이는 행동의 연속선상에서 끝내 보여준 마지막 행동마저도 연말 분위기를 씁쓸하게 만드는 첫 번째 코미디였다. , ! 입맛이 쓰다.

 

25, ‘물의 일으켜 죄송하다고 울먹이는 노정연씨에게 징역 6개월이 구형되었다. 노정연, 자살한 전 노무현 대통령의 딸이면서 지금은 한 아기를 둔 37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노대통령의 자살 이후 미국의 고급아파트 매입과정에서 100만 달러(13억 원)를 밀반출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왔다. 죄명은 외국환거래법 위반이다. 내년 123일에 있을 선고공판에서 확정이 될 일이긴 하지만 역시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망명을 떠난 초대 이승만대통령을 비롯하여 암살, 감옥살이, 자살 등 우리의 전 대통령들은 불명예의 대명사다. 측근과 친인척, 자녀들까지 연루되어 있는 부정부패, 비리 등, 여전히 끊이지 않는 우리나라 대통령들의 말로(末路), 임기가 두 달 남짓 남아있는 현 대통령 MB 역시 불안하다. 왜 그럴까? 우리는 참 대통령 복()도 지긋지긋하게 없는 국민이다. , !

 

26

살다가 더러는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경우를 당한다. 이번에 또 당했다. 금고털이범이 금고를 터는 동안 망을 봐 준 경찰관 이야기다. 129, 여수우체국의 금고가 털렸다. 바로 옆에 있는 식당의 창문을 깨고 들어가 우체국 벽과 맞닿은 벽을 뚫고, 벽에 붙어있는 금고의 뒷면을 산소용접기로 절단하여 5,213만원을 빼간 범인은 44세의 박 모씨였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났으면 오죽이나 좋았을까.

26, 여수경찰서는 관할 삼일파출소의 김 모경사가 공모자라고 밝혔다. 역시 44세인 김 모경사는 박 모씨가 범행을 하는 동안 망을 봐준 고양이다. 망을 봐준 정도가 아니라 사전에 우체국 금고와 CCTV의 위치 등 내부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해서 제공했다니 완벽한 공모다. 생선은 반반으로 나눠먹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완벽하게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2005622, 미제사건으로 남은 여수시 미평동 기업은행의 365코너의 현금지급기에서 879만원이 털린 사건도 두 콤비의 작품이라는 것. DNA의 일치로 밝혀졌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이번에 잡히지 않았으면 꼬리가 더 얼마나 길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경찰관이 도둑의 망을 봐주다니! 참 황당하다. , !

 

27, 온몸이 무기인 특수부대원들이 술집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한밤중에 주인과 종업원들에게 얻어맞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는 소식이다.

특수부대. 특별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위험을 무릅쓴 고난도의 강훈련으로 길러진, 한마디로 뛰어난 무술실력과 총기다루는 솜씨에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자랑하는 특출 난 젊은이들이다. 뿐만 아니라 자긍심도 대단하다. 그런 그들이 모처럼 연말 외출을 나왔다. 거기까지는 좋다. 모처럼의 휴식일터이니 고된 훈련과 강도 높은 임무수행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달콤한 휴식이길 바라는 마음이 된다. 그런데, 그들이 성탄절과 연말의 분위기에 젖어버린 모양이다. 아무래도 과한 것 같아서 고만 마시라고 권하는 술집 종업원들과 시비가 붙었다. 옥신각신, 술판은 곧 싸움판으로 변했고, 그 싸움판에서 주인과 종업원들을 상대로 치고 박고 하다가 되레 얻어맞고 실려 갔다니,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웃어야할까? 울어야할까? , !

이유는 그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술 앞에는 장사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과음으로 맥을 못 춘 한바탕 소란은 그야말로 코미디다.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더니. 영낙없이 꼴뚜기다.

병원으로 실려 갔으니 상처는 적당히 치료가 되었을 것이고,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마땅한 조처가 이루어지겠지만, 부디 바라기는 조처대로 따르고 조용히 사라져주었으면 한다. 그 일을 계기로 해서 그 술집에 찾아가 복수극을 벌인다거나 구차하게 이러저러한 이유를 들어가며 해명하는 일 없이 그저 조용히,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꼴뚜기 특수대원들에게 하는 바람이다.

 

 

28, 이번엔 유사(類似) 장발잔이다. 지나가는 여성의 지갑을 가로채어 절도범으로 붙들린 사람 이야기다. 성탄절이 자신의 생일인데 가족들은 만나주지도 않고 배가 고파서 훔쳤다고 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딱 장발잔이다. 그런데 절도한 그 여성의 지갑엔 단돈 100원짜리 동전 한 개가 들어있었다. 여기까지 들으면 장발잔 스토리보다 더 기구한 생()의 단면이 나타날 것 같아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나 그 다음에 곧 맥 풀린다. 그는 이미 전과 6범의 절도범이었다. 이 대목에서 장발잔의 환상은 여지없이 깨져버린다.

성탄절이 생일이었는데도 만나주지 않는 가족들, 거기다 배가 고파서 절도행각을 벌였다고 하니, 그의 심경을 짐작 못할 바는 아니지만 전과 6범이라는 사실 때문에 동정조차 받을 수 없게 되었고 극적인 스토리 전개가 무산(霧散)되어버렸다. 예수님과 같은 생일이라는 것조차 정말인지 의심스러워진다. 진실이라 한들, 그게 무슨 이야기 꺼리가 될까. 오히려 단돈 100원짜리 동전 한 개밖에 지니고 있지 않았던 그 여성의 가난이 더 궁금해진다. 헛참!

 

2013년도 벌써 두 달째 접어들었다.

이제 해원(解寃)이라도 하듯, 정치도 사회도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밝은 한 해가 되기를! 쓴 맛 뒤의 더 달콤함을!

금년 연말쯤엔 어지러운 요지경 대신 만화경(萬華鏡)을 들여다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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