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층간소음, 한생각만 바꾸면

천마리학 2013. 10. 18. 04:36

 

 

 

 

한 생각만 바꾸면 * 權 千 鶴

-이웃, 이웃사촌

 

 

드디어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사건이 났다. 참 안타깝다. 딸깍! 한 생각이면 되는데.

 

건영아파트에 살 때였다. 갑자기 귀를 찢는 굉음이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원고를 쓰려고 막 책상에 앉아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워서 오른쪽 벽인지 왼쪽 벽인지 들려오는 방향조차 구별이 안 되는 날카로운 굉음의 진동은 바짝 신경의 날을 세웠다. 아스팔트 바닥을 파내려가는 전기 드릴소리와도 같고, 영화 속 악한이 휘두르는 전기톱 소리와도 비슷했다. 귀청을 있는 대로 자극하며 속까지 긁어대었다.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메스꺼워지다가 욱! 드디어 토악질이 나왔다.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가동 2층에서 지금 공사하는 세대에서는 즉시 공사를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소음 때문에 이웃에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그 소음은 계속되었다. 견딜 수 없어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양 옆의 어느 집에선가 공사를 하는 모양이었다. 오른 쪽 집은 아닌 것 같고, 왼쪽인 것 같은데 바로 옆집인지 한 집 건너에선지 정확하게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복도의 난간에 기대어서서 바깥공기를 쏘이며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고 큰 숨을 쉬고 있노라니 그 소리가 멎었다. ! 살았다. 겨우 진정하고 집안으로 들어와 다시 책상에 앉았다. 소리도 청력 이상의 양이 되면 속이 뒤집힌다는 것을 그때 체험했다.

 

 

 

 

앙코르왓트의 압살라 부조

 

 

다시 책상에 앉았지만 정신이 쉬 모아지지 않았다. 어느 집에서 공사를 하는 걸까? 짐작컨대, 바로 왼쪽으로 옆집인 213? 아니면 한 집 건너 212? 213호라면 개인택시 운전을 하시는 할아버지 내외분이 사시는 집이고, 212호라면 우리 아이와 비슷한 여덟 살과 아래 터울의 남매가 있는 지영이네 집인데, 무슨 공사를 하는 걸까. 그건 그렇고. 누가 신고했을까?

생각이 거기에 머무는 순간 끼어드는 걱정. 그것은 혹시 내가 신고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하지? , 이런. 조금 전의 속 뒤집히던 일은 잊어버리고 신고자로 오해받을 걱정을 하다니. 소심함이여. 소심함을 넘어서서 비굴함이여.

정말 세상 살 맛 안 난다. 나는 왜 이렇게 매사에 비굴한 거야. 왜 이렇게 세상을 비굴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야. 이번엔 나 자신에 대한 반감이 더욱 치받쳤다. 난 언제나 그래왔잖아. 할 말 다 안하고, 못하고. , 못난 나의 인생!

 

콩콩콩콩콩……

바로 윗 층에서 자주 들리는 소음이다. 가끔 쿵, , 쿵 하는 더 둔탁하고 육중한 소음과 섞이기도 하지만 콩콩콩 하는 작은 소음은 거의 매일 수시로 들렸다. 쿵쿵쿵 하는 소리는 어른의 발자국소리이고 콩콩콩은 아이의 발자국 소리. 아마 그 집에 아기가 있는 모양이다. 아기가 있는 것은 좋은데 그리고 늘 콩콩거리는 것까지도 좋은데, 제발 늦은 밤과 이른 새벽녘에만 콩콩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시간이면 내가 가장 못 견디는 시간이기도 해서다. 불면증 때문이다. 애를 써서 막 잠이 들려고 하는 그 순간에 콩콩콩. 이건 벼락이다. 그 아기는 잠도 없나? 선잠 또는 토막잠으로 겨우 버티다가 책상 앞에 앉아 정신을 모으는 새벽녘 그 시간에 또 콩콩콩. 이건 천둥이다. 정말 그 아기는 잠도 없나? ! 그렇게 살면서도 단 한 번도 항의해보지 못했으니.

처음엔 견디기 어려워서 짜증을 내며 실내를 서성거렸다. 올라가서 제발 조용히 좀 해달라고 말을 할까도 여러 번 생각했지만 한 번도 그래보지 못한 채 그냥 견뎌냈다. 그게 나다. 소심하고, 비굴하고, !

그 집 아기도 나처럼 잠이 없나? 하는 생각이 미치는 어느 순간, 시도 때도 없이 콩콩거리는 아기와 그 엄마, 얼마나 힘들까. 누구보다도 잘 아는 잠 못 자는 고통. 아기도 힘들지만 엄마는 미안함까지 있을 텐데.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신기하게도 씻은 듯이 문제가 사라졌다. 콩콩콩 소리가 안 들리는 저녁이면 아기가 일찍 잠이 들었나. 새벽녘에 콩콩거리지 않으면 혹시 아기가 아픈가 하는 염려가 되었다. 아기 엄마가 걱정이겠구나 하고 아기 엄마까지 걱정이 되었다.

 

추석 이틀 전이었다. 추석을 쇠려고 부모님 댁으로 온 사촌들과 조카들이 가까이 사는 우리집에 놀러왔다. 부모님 댁과는 걸어서 10분정도 걸리는 거리에 살고 있는 터여서 명절 때면 모이는 형제들이나 친지들이 우리집에 들리곤 했다. 그날도 모처럼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고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에 맞춰 두 올케들은 부모님 댁으로 가고 어린 조카들이 고모집에서 자겠다고 해서 남았다.

그날 밤 늦게 까지 우리 아이와 조카들 세 녀석이 어울려 윷놀이, 카드놀이에 숨바꼭질까지 하며 놀았다. 노는 모습이 좋긴 했지만 수시로 너무 쿵쾅거리지 않도록 주의를 주어야 했다.

 

 

불칸(Magnolia Vulcan)-1990년 뉴질랜드의 Mark Jury 농장에서 접목묘로 수입

 

 

다음날, 이른 아침이었다. 모두 아침 먹으러 오라는 큰올케의 전화가 오자마자 세수도 안한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 뛰쳐나갔다. 악동들을 모두 보내놓고 뒤따라 갈 요량으로 대충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띵똥!

문을 여는 순간 낯선 노인이 굳은 표정으로 서 계셨다. 인사말을 주고받은 사이도 없이 현관 안으로 고개를 디밀고 안을 살폈다. 그 기세에 눌려 옆으로 비켜서며 누, , , ? 했더니, 아래층에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간밤에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집안이 조용하니까 이상한 모양이었다. 시끄러워서 원! 냉랭한 얼굴로 혀를 차며 돌아서가버렸다. 미안하다는 말이나 여차저차해서 그렇게 됐다는 변명조차도 할 겨를이 없었다.

하이고! 할 말 없다. 우리 아이들이 쿵쾅거렸으니. 그런데 그 한 번에 화를 내며 쫒아오다니. 내참! 휭하니 찬바람을 일으키고 사라져가는 그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기분이 미안하기보다는 떨떠름했다. 나도 못됐지.

그러면서 또 한 생각. 이웃사촌? 으이구 살벌해. 풀 한포기도 안 나겠네.

그러면서 또 한 생각. 나는 날마다 시달려도 한 마디도 못하는데.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또 한 생각은 집안정리를 다 마치고 부모님 댁으로 아침 먹으러 떠나면서 딸깍, 현관문을 잠글 때였다. 딸깍 마음 한 번 바꿔먹으면 될 텐데!

 

층간 소음 때문에 싸우고, 살인까지 저지르다니. 참 안타깝다. 그 사람들에겐 마음을 바꾸는 딸깍! 하는 그 한 순간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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