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창작활동은 병(病)도 이긴다

천마리학 2013. 11. 1. 04:29

 

 

 

 

창작활동은 병()도 이긴다 * 權 千 鶴

 

 

나는 지금 루느와르의 누워있는 누드앞에 서 있다. 찬찬히 그녀의 몸매를 훑어내면서 루느와르와 속 이야기를 나눈다.

언제 부턴가 손가락의 중간 마디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오른 손의 셋째와 넷째 손가락의 중간마디가 쏘삭쏘삭 근지러운 듯한 통증이 일더니 전체로 이행되었다. 그렇게 삼사년쯤 지난 후에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다. 아파트 생활을 시작한 후 언제인지도 모르게 손가락의 통증이 사라진 것을 알았다. 정형외과병원장인 큰 남동생이 손가락 중간마디부터 시작되는 것이 일반적인 관절염 증상이라면서 아파트의 따뜻하고 건조한 실내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동안 춥고 습한 단독주택에서 살다가 난방 잘되는 아파트 생활의 덕은 본 것이다.

그 무렵, 컴퓨터가 등장하고 나의 필기도구가 되었다. 그렇게 컴퓨터와 친구하며 십년 넘게 살다보니 손가락 전체의 중간마디가 다 쏘삭쏘삭 근지러운 통증이 다시 일었다. 당연히 자판을 두드리느라 많이 사용해서 그런 걸로 알고 가끔은 의도적으로 쉬어주기도 하고 마사지도 해가면서 사용했다.

다시 십년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컴퓨터는 가장 소중한 필수품이 되었고, 가끔씩 손가락 마디가 아픈 것에 더 하여 무릎이 아픈 경험도 했다. 서너 시간 장거리 운전을 하다가 고속도로 상의 휴게실에서 정차하고 내리려고 하는데 껌뻑, 왼쪽 무릎이 아파서 주춤 했다. 액셀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으며 노동한 것은 오른 쪽 다리인데 아프기는 왼쪽 무릎이었다. 운전 내내 편히 쉬고 있던 왼쪽 무릎이 아프다니, 노는 것이 미안한 모양이지? 하며 잠시 진정하여 걸으면 괜찮았다. 그렇게 시작된 그 통증이 가끔 찾아왔다. 그럭저럭 몇 해를 보낸 그 사이, 토론토에서 살게 되었다.

그 즈음 스위스 친구에게 알프스 산을 함께 걸어서 넘자고 장담까지 했다. 스위스의 후리북에서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별장까지 자전거로 다니는 친구였다. 한 번 가는데 거의 하루가 걸린다고 했다. 더러는 산맥을 타고 걸어서 가기도 한다는 그 친구의 말에 의기투합하여, 함께 이탈리아의 별장까지의 행군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삼년 지나는 사이에 왼쪽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하면서 몸이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한때의 객기였음도 인정하며 슬며시 그 제안을 들추지 않은 채 서너 해를 넘겨 지금에 이르렀다.

 

 

 

 

컴퓨터작업은 계속됐다. 그런데 손가락은 오히려 더 강해졌는지 아픈 것이 사라졌다. 가끔 혹사하고 나면 뻐근할 때가 있긴 했지만 그 때마다 잠시 작업을 멈추고 쥐었다 폈다 한다든가 서너 번 모아잡고 꼭꼭 눌러주면 괜찮아지곤 했다. 많이 걷는 날엔 왼쪽 무릎도 아파왔다. 관절염이라고 스스로 진단하며 넘어갔다. 그러면서도 챙겨주는 딸 덕분에 병원에 가게 됐고, 퇴행성 관절염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칼슘 복용도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손자 손녀를 데이케어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지금까지 계속해왔다. 더러 아프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아프다 말다 하는 사이 무릎 통증도 거끔해졌다. 계단을 오르거나 걷다가 통증을 느끼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걷기를 멈출 수가 없다. 학교와 데이케어에 다니는 손자손녀를 쉬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매일 20분 남짓의 거리를 아침에 한번, 오후에 한번 씩 왕복 40분을 거르지 않고 있다.

이즈막엔 무릎 아픈 일도 사라졌다. 칼슘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규칙적인 일을 오래 하지 못하는, 그리고 운동을 가장 싫어하는 나로 하여금 매일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게하는 우리 손자손녀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누가 시킨들, 돈을 줘가며 권해도 하지 않을 일을 하게 하는 손자손녀는 참으로 효손(孝孫)들이다.^*^ 효손을 둔 나는 참 복이 많다.^*^

 

손가락도 마찬가지다. 매일 눈 뜨면 쓰고, 시간 나면 쓰고, 자다가도 쓰고…… 특히 얼마 전 글 폭포를 만난 후로는 더 많이, 끊임없이 쓴다. 비록 수필이 주류이긴 하지만 쓰지 않고는 못 배긴다. 하루에 두 편, 최소한 한 편 이상은 쓰니까. 그럼에도 손가락 아픈 일이 아직은 없다. 오로지 손자손녀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과 가족들의 퇴근시간에 맞춰 식사 준비하는 일 외에 주어지는 시간은 쓴다. 그런데도 안 아픈 손가락, 그래서 나는 손가락을 잊어버린다. 개도 짖는 개를 돌아보는 법인데 나의 손가락은 그걸 모르나보다. 대신 르누와르를 떠올린다.

 

그는 심한 관절염 환자였다.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 속에서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심정, 안다. 무슨 일이든 몰두하면 다른 일을 잊어버린다는 평범한 상식, 쓰는 일에 몰두하여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잊어버리는 나는 그 방면엔 이미 도사 급이다. 냄비도 여러 개 태웠다. 지금도 주방에선 뭔가가 나를 기다리다 못해 타고 있을지 모른다. , 커피. 에스프레소를 내리려고 예열 시켜놓은 채, 깜빡. 늘 이렇다. 자주 있는 일이라서…… 그러려니. 그 정도야 뭐. 으이구! 한 마디면 끝난다. 하여튼, 컴퓨터 앞에 앉기만 하면 다 잊어버린다. 시간마저 잊고 밤엔 불면증도 불러온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기 때문이다.’

관절염으로 지독하게 고생하면서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를 물은 친구 화가 마티스에게 그가 한 대답이다. 그리고 그는 죽는 날까지 뒤틀린 손목에 붓을 묶고 그림 그리기를 계속했다.

나는 가끔씩 그의 그림들, 특히 그림 속 나체의 여인들을 그윽하게 들여다보곤 한다. 죽기 직전까지, 온몸이 마비된 지 14년 만에 완성한 그림 목욕하는 여인들을 비롯해서 잠자는 나부’ ‘목욕하는 여인과 강아지. ‘엉덩이를 두드리듯 완성 시킨다는 그만의 특수기법으로 살아나는 그림 속 여인들의 몸, 그 어디에도 관절염의 흔적을 볼 수 없다. 관절염 자체를 상상할 수도 없다. 자신의 뒤틀린 뼈마디를 움직여 창조해내는 건강한 여인들의 육체로부터 치유 받지 않았을까. 그에게 창작의 몰두는 바로 힐링이었을 것이다. 공감, 대공감이다.

나 역시 설령 손가락에 통증이 심하게 찾아와도 쓸 것이다. 더 이상 몸의 어느 구석을 이용할 수 없게 될 때까지는, 뇌가 살아서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는 쓸 것이다. 나에게 왜 쓰느냐고 물으면, 그냥, 이다. 굳이 대답해야한다면 쓰지 않고는 못 배기니까, 하는 원론적인 답을 할 수밖에 없다.

글은 곧 나의 아름다운 창작활동이다. 그러므로 몰두할 것이다. 몰두는 노동으로 이어지고, 그 노동은 기꺼이 뼈를 강하게 만들어줄 테니까.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을 테니까. 아니,

나는 사라져도 내가 만들어낸 아름다움은 남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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