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뻔’의 운명 * 권 천 학

천마리학 2013. 11. 8. 04:31

 

 

 

의 운명   *   권 천 학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리는 동안 펼쳐 든 신문, 식탁에 기대어서 굵은 제목부터 훑어가며 페이지를 넘기는데 다이애나의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다 내린 커피 잔을 들고 창가 자리로 가면서 다이애나, 파예드 만나기 전 파키스탄 의사와 결혼할 뻔이란 제목의 기사를 읽는다.

1994, 찰스왕세자와 이혼한 다이애나는 19978월에 교재중인 남자친구 파예드와 함께 파파라치들의 추적을 피하다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한 비운의 영국왕비다. 신데렐라였다가 장화홍련이 되어버린 다이애나. 세계인의 이목과 사랑을 받았으면서도 평탄치 못한 가정생활로 연민의 대상이 되고, 끊이지 않는 뒷이야기들로 우리와는 무관한 영국왕실을 자주 입에 올리게 한 그가, 이달 말로 사망 16주기를 맞는 시점에서 오랜 친구이자 언론인이라는 제미마 칸에 의해서 또 과거가 들먹거려졌다. 가십거리를 제공하는 언론인 친구가 과연 친구일수 있는가, 관심거리 기사를 쓰기위해 우정도, 의리도, 사생활의 비밀도 저버리는 것을 직업근성이라고 수긍해야 하나 씁쓸하다. 하여튼,

다이애나가 해러즈 백화점 가문의 장남 도디 파예드와 교재를 시작하기 전, 파키스탄 출신 심장외과의사 하스나트 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계획이었고, 결혼해서 딸을 낳고 싶어 했지만 하스나트가 결혼을 주저하는 바람에 깨졌다는 것. 말하자면 결혼할 뻔 했다는 얘기다.

 

 

 

 

 

 

 

 

’,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면서 매우 극적인 단어다. 예기치 않게 상황이 바뀌어 일의 국면(局面)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할 뻔 하다가 안 하고, 될 뻔 하다가 안 되고, 갈 뻔 하다가 안 가고……. 우리가 살면서 이처럼 했다가 만 일이 얼마나 많은가. 행운을 잡을 뻔 하다가 놓치기도 하고, 불행해질 뻔 하다가 모면하기도 있다. 극적이다.

예측이나 단정의 의미도 있다. ‘뻔하다’. 이를테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 된다는 의미다. 자주꽃 핀 감자는 파보나마나 자주감자이다. 긍정적예측이다. 부정적 단정도 있다. 수없이 금주맹세를 하고도 어겨온 알콜중독자가 다시 금주맹세를 하면, 그 맹세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는 단정이다. 바람피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수없이 어기는 바람쟁이 남편이 다시는 바람피우지 않겠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양치기 소년이 되고 만다.

또 다른 이 있다. ‘앞길이 뻔하다.’ ‘가는 길이 평탄하다, 혹은 평탄치 못하다는 말이다. 건실한 청년의 장래가 발전적으로 펼쳐지거나, 혹은 제 버릇 개 못주는 사람의 장래가 좋을 리 없다는 예측과 단정이다. 이런 표현도 할 수 있다. 핵을 가지고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북한의 장래가 뻔하다.

 

'선택'의 다른 말인 동시에 일종의 멈춤’, 즉 빨간불이기도 하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선택해야 할 지점의 커브길이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뒤엎어지는 반전이기도 하다. 그 반전이 자의적인 의지에서라기보다는 타의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운명으로도 빗대어도 과히 틀리지 않다. 프로스트(Robert Frost)가지 않은 길과 통한다.

 

The reads diverged in a yellow wood,

And sorry I could not travel both

And be one traveler, long I stood

And looked down one as far as I could

To where it bent in the undergrowth;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나는 한 사람 나그네일 뿐인지라

안타깝지만 두 길을 갈 수 없어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을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한쪽 길을 가능한 한 멀리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동시에 두 길을 갈 수 없는 운명, 한 길만 택해야 하는 운명, 그 앞에서 가지 못하는 다른 길에 대한 호기심과 미련은 길게 남는다. 만약 다이애너가 하스나트와 결혼을 했더라면…… 한번 때문에 그 다음에 올 역사가 생기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삶이 전개된다. 그래서 은 멈춤이고, 멈춤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을 가슴에 품을 수밖에 없다.

좋은 일이 올 운명이라면 멈추지 말고, 나쁜 일이 닥칠 운명이라면 멈춤이었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것 역시 우리의 소관이 아니어서 여전히 은 아쉬움과 미련으로 존재한다.

달리는 기차 안의 닥터지바고, 기찻길과 나란히 뻗은 길로 걸어가는 라라를 발견한다. 반가움에 벌떡 일어서서 손짓하며 부르는 순간, 심장마비를 일으켜 쓰러진다. 그토록 만나기를 희망한 연인을 만날 뻔 했지만 헛손질 뿐, 영영 이별이다. 아슬아슬하게 비켜가는 영화 속의 연인들, 이루어질 뻔 하다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운명적인 순간 때문에 오래 남는다.

우리에게 그런 순간이 왜 없을까. 알게 모르게 우리들을 스쳐가는 한 순간들, 그래서 은 극적이고 운명이다. 프로스트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I shall be telling this with a sign

Somewhere ages and ages hence;

T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에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 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다른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차에 치일 뻔 하다가, 넘어질 뻔 하다가, 될 뻔 하다가,…… 마지막 숫자 하나가 틀려서 로또에 실패하고, 0,001초가 늦어서 1등을 놓치기도 한다. 하마터면 불행해질 뻔 했다가 안도(安堵)하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어떤 의 운명에 실려 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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