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신외무물 (身外無物)

천마리학 2013. 11. 15. 04:27

 

 

 

신외무물 (身外無物) * 權 千 鶴

 

 

어젯밤에 한국의 어머님 아버님께 전화를 드렸다.

이곳의 날씨도 연일 무덥고, 엊그제 물폭탄으로 쏟아진 비 때문에 토론토 도심에서도 피해가 속출한 상황이었지만, 먼저 한국에 장마가 든다고 들으며 연일 염려가 되던 차였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모두 9십을 넘기신 연령이시니 해드리는 것 없어도 늘 걱정이 되었다. 누구에게 내색할 수도 없는 일, 행여 안 좋은 소식이라도 들려올까 싶어 그저 마음속으로만 조마조마, 죄인노릇을 하고 있다. 밤늦은 시간이나 이른 시간에 전화벨소리만 울려도 가슴이 덜컥, 이층의 내 방에 있으면서도 아래층 거실에서 가족 중 누군가가 수화기를 들고 통화하는 내용을 잠시 귀담아 듣는다. 헬로우~ 하는 말이 들리는 순간, 바짝 긴장이 된다. 이어서 Oh, How are you? 하고 영어로 이어지면 그제야 휴우~ 하고 마음은 놓곤 한다. 어쩌다 One moment! 하면 다시 바짝 간장이 졸아드는 기분이다. 퉁퉁퉁퉁 이층 계단을 오르는 소리가 들리고, 내방의 문이 열리고, 수화기를 내미는 사위의 얼굴표정부터 겁먹은 얼굴로 살핀다. 그 순간을 못 견뎌서 나도 모르게 Who? 하고 조그맣게 묻는다. 어깨를 으쓱, 나도 모른다는 몸짓으로 답는 사위의 표정을 살피며 수화기를 건네받아 조심스럽게 여보세요 하면 언니!’ 하는 한국말이 들리는 순간, ? 너구나! 하고 활짝 갠다.

 

 

 

 

 

며칠 전 한국에 무더위가 계속된다는 뉴스에 걱정이 돼서 전화를 드렸을 때도, 서울은 아직 괜찮다 하시던 아버지께 그래도 더우면 에어컨도 좀 켜시고, 절대로 덥게 지내지 마세요, 견뎌내려 하지마시고 시원하게…… 하는데, 대뜸 에어컨을 켜면 안 된다 절전해야하지. 모두들 온도조절을 철저히 하는 중이다 하셨다. 그건 관공서나 공공기관에서 하는 일이고, 가정에서야 형편대로 해야지요. 어머니 아버지께선 노인이시잖아요, 했더니, 우리걱정은 하지마라. 네 건강은 어떠냐?…… 계속 안부와 소식을 잇는데 아버지께서 말허리를 툭 자르시더니, 예부터 신외무물이라 했다 네 몸을 네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하시면서 지금 네 엄마도 너더러 제발 몸 생각 좀 하라고 야단이구나 하고 수화기 사이로 비집고 들려오는 어머니의 외치는 소리까지 통역해주신다. 결국 부모님 걱정되어 한 전화에서 또 다시 내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당부를 들어야 했고, 명심해라, 알았지? 언제 올래?……로 이어져 가슴이 먹먹, 다시 찔끔 젖고 말았다.

어머니 아버지의 염려가 얼마나 애틋한지 말로 다 담아낼 수 없지만 나 또한 어머니 아버지의 건강이 여간 걱정 되는 게 아니다. 그러면서도 곁에서 돌봐드리지 못하는 현실이 그저 무거운 쇳덩이가 되어 짓누를 뿐이다.

 

신외무물 (身外無物).

몸 외에 다른 것이 없다 즉 다른 어떤 것보다도 몸이 가장 귀하다는 말이다. 몸이 귀하다는 것은, 먼저 태어남이 귀하고, 태어난 몸을 귀히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받아 태어나서 나의 존재가 있어졌으니, 그 존재를 소중하게 지켜나가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는 한때 젊은 객기로 혹은 미처 몸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미숙함으로 몸을 정신의 하위(下位) 개념에 놓고, 허술히 하며 보내기도 했다.

내가 몸을 정신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상위(上位)의 개념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은 중년을 넘기고부터였다. 우리의 삶을 정신적인 삶과 육체적인 삶으로 양분하면서 다소 육체적인 삶을 망가트려가면서라도 정신적인 삶을 추구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형이상학적이니 형이하학적이니 하는 용어까지 써가면서 형이상학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가끔 형이하학적인 부분을 허리하학적이란 농담으로 빗대기도 했다. 말하자면 몸을 너무 푸대접했다. 그런데 중년을 넘긴 어느 무렵에 문득, 몸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럴만한 계기가 되어준 일도 있긴 했지만 어떻튼 몸의 소중함과 몸의 자랑스러움을 느끼면서 몸은 정신의 문이다.’라는 말을 스스로 만들어내었다.

 

 

 

 

몸은 정신의 문’, 그것이 대단한 발견이라도 된 듯, 그때까지의 나의 몸에 대한 견해가 확 달라졌다. 몸에 대한 성찰인 셈이었다. 그 개념을 시 창작으로 풀어내기도 했다.

몸은 곧 정신으로 통하는 문이며, 통로이며, 정신을 존재 가능케 하는 그릇임을 깨달은 것은 그만큼 사고의 확장을 의미하기도 한다. 몸과 정신은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고 어느 것 한 가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소유물이다. 육체가 없으면 정신이 깃들 둥지가 없기 때문에 정신이 살아있지 않으면 말 그대로 육체는 똥자루에 불과하다. 그러니 결국 정신도 육체도 모두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얼핏 보기엔 누구나 다 아는 것 같은 이 단순한 논리에 깊이 도달하는 일이 쉬운 일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여러 삶들을 보면서 느낄 수 있다.

지금은 몸의 건강을 신경 써야 할 나이가 되었다. 건강해야 지니고 있는 정신도 발전시켜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이 쇠약해지면 제아무리 근사한 정신을 지니고 있다한들 무슨 소용인가. ‘재산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고, 명예를 잃으면 많이 잃은 것이고, 건강을 잃으면 다 잃은 것이다.’라는 말을 절실하게 실감한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늙는 일도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보다 나이가 많이 든 분들은 어떻게 그 나이를 견디셨을까? 참 대단하시다는 싶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하물며 구순을 지나신 나의 어머니 아버지께서 어떻게 그 연세까지 이르셨는지, 아직도 그만그만하게 지내고 계시니 이거야말로 대단한 축복이 아닌가, 그저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이다.

오늘도 다시 한 번 건강한 몸의 소중함과 부모님의 사려 깊은 애정을 새김 받았다. 천하를 얻어도 건강하지 않으면 소용없고, 천하를 딛고 설만큼 성공을 이루어도 부모님의 사랑에 보답할 수 없다.

, , , !

늘 기둥이신 어머니 아버지로부터 받은 깨우침을 다지듯 외워보며, 감사와 존경으로 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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