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똥물 반전

천마리학 2013. 7. 2. 10:29

 

 

똥물 반전 * 權 千 鶴

 

 

지난 514BC(벤쿠버 콜럼비아)주 총선에서 박빙의 승리를 거둔 것으로 발표되었던 스티브 김(41, 김형동) 후보의 당선이 번복되었다고 한다. 자유당 후보로 코퀴틀람-말라드빌 선거구에서 출마했던 김 씨는 선거 직후 1차 집계에서 105표를 앞서서 당선이라고 발표했는데, 29BC선거관리위원회가 경쟁 상대였던 신민당(NDP)의 셀리나 로빈슨 후보에게 35표 뒤진 것으로 공식 발표했다. 경쟁상대자와의 득표차이가 투표자의 0.2% 이내일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재검표를 실시하도록 되어있는 BC선거법 규정에 따라 실행한 재검표에서 달라진 결과다. 아쉽지만 반전이다. 당사자 스티브 김에게만이 아니라 한인동포들에게도 아쉬운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생각을 뒤집어본다. 1차에서 차점이었다가 재검표에서 당선이 된, 반대의 반전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반전!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뜻하지 않은 반전을 당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전을 기대하기도 한다. 가령 일이 잘 되어가고 있어서 당연히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고 믿었던 일이 뜻하지 않은 변수가 나타나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는 반전.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일이 좋은 쪽으로만 풀려가도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다. 파도가 치기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오듯, 일이 잘못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외로 꼬여 엎친 데 덮치듯 힘들어지면 느닷없이 상황이 뒤바뀌는 기막힌 반전을 기대하게 되기도 한다.

 

얼마 전, 한 여교사가 겪은 일에 혀를 찬 일이 있다. 수업시간이 되어 강의를 하다보면 목이 마르기 쉽다. 그래서 5학년 담임을 맡은 그 선생님은 학기 초부터 종종 수업시간에 마실 물을 떠오도록 당부 했다. 그러다가 한 학생을 지적하여 계속 수업 중에 마실 물을 떠다 달라고 했다. 그 학생은 평소에 표정도 밝고, 학업도 충실하고, 예의도 바른 얌전한 학생이었다. 2학기가 절반가량 지나간 어느 날 한 학부모로부터 그 학생이 떠다주는 물을 마시지 말라는 전화를 받았다. 까닭을 캐물었다. 망설이던 학부모가 털어놓은 말에 선생님은 경악하고 말았다. 그 물이 정수기 물이 아니라 화장실 양변기의 물이었다는 것. 얌전한 학생은 물을 떠온 뒤, 친구들에게 양변기 물이라는 사실을 알리고 물을 마시는 선생님을 보며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참으로 기막힌 반전이다.

믿고 떠오게 했던 물이 양변기 물이었다니. 예의바르고 얌전한 학생이었다니. 마른 목을 축이느라 시원하게 들이키는 모습을 보며 킥킥거리며 즐거워했다니. 5학년학생들이었다니.

내가 이토록 기막혀하는데 당사자인 그 선생님의 심정이 어땠을까?

충격으로 일 년 간 휴직을 신청하고 마음의 안정을 위해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

이제 휴직기간이 끝나 교단으로 돌아갈 날을 앞두었는데, 막상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 아이들을 대할 일이 생각하니 여전히 두렵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선생님의 심정이 백번 이해된다. 이해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서운 생각까지 든다. 어린 제자들 앞에서 우롱당한 그 상처가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스승이 없다고 개탄들 하지만 과연 제자는 있는가. 진정한 의미에서의 스승만 없는 것이 아니라 학부형도 없고 제자도 없는 것이 요즘 세태라는 생각에 등덜미가 서늘해진다.

 

내가 5학년 때, 우리들은 얼마나 어리숙했던가. 선생님께서 이름 한번만 불러주셔도 특별한 사랑을 받은 듯 신이 났고, 심부름 한 번만 시킴을 받아도 간택된 기쁨에 들떠 발바닥에 바퀴를 단 듯 내달려서 심부름을 했고, 잘 한다는 한 마디만 들어도 그것이 지상 최고의 칭찬으로 생각되어 방방 하늘을 나는 기분이 아니었던가. 그 칭찬 한 마디가 일생을 좌지우지하는 버팀목이 되어준 사례도 많다. 그것이 내가 5학년 무렵의 우리 시대 아이들이었다. 그런데,

마실 물을 양변기 물을 떠오다니, 이것이야말로 똥물반전이 아닌가. 재래식 화장실에서도 똥을 갈아 앉혀 삭히면 말간 물이 된다. 소리하는 사람들은 성대를 트기 위해서 그 물을 마셔가며 목청을 다듬어갔다. 그러나 토일렛이니 그런 물은 애시당초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토일렛 물을 컵에 떠 담았다는 것은 똥물을 먹이겠다는 것 아닌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을 책망하기 전에 쉽게 물을 떠 담을 수 있는 양변기의 등장을 원망해야 할까.

그것을 모르고 물을 마시고 시원해 하는 모습을 보고 히죽거리며 즐거워하다니. 선생님이 원효대사이기만을 바라야 할까. 내참!

 

각박해진 시대라는 것을 어린이들로부터 실감해야하는 일이 결코 달갑지 않다. 달갑기는커녕 무섭다. 흔히 천사로 표현되는 어린이들 속에 어찌 그런 흉측한 생각이 들어있을까. 내 주위에 있는 착한 아이들 중에도, 혹은 내가 돌보고 있는 손주들의 마음속에도 어른으로서 짐작할 수 없는 끔찍한 생각들이 도사리고 있을까. 생각만 해도 섬칫하다. 하긴 아이는 어른의 축소판이라고 했다. 일찍이 아이들 속에 내재해 있는 악마성을 탐지한 말이기도 하다. 어린이도 인간의 종()에 속하는 동물임에 분명하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느니 교육부재라느니 하는 개탄의 말들이 등장한 지 오래다. 나 역시 아이를 기를 때 선생님에게 모두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라고 해서 교단이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치맛바람도 일고, 촌지(寸志)가 뇌물도 되었고, 선생님의 자질(資質)에 대한 논란도 많았다. 하지만 일단 선생님을 믿고 맡기자는 기본의식은 변함이 없었다. 그래서 치맛바람에도 끼지 않으려고 바지만 입었고(^*^), 촌지를 줄 능력도 없는 가난이 감사했고, 선생님의 자질을 논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생님의 수고를 마음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또 생각을 뒤집어본다.

수업시간에 물을 떠오라고 당부하는 선생님께 수고하시는 선생님의 목마름만이 아니라 건강을 생각하여 새콤한 비타민이라도 타서 가져오는 물이었다면, 아니면 맛이 나지 않는 영양제라도 섞어 떠다드렸다면 얼마나 감동적인 반전일까.

이제는 기대하기 어려운 반전을 글 속에서나 그려낼까. 그래서 문학이, 문학적 감성이 꼭 필요하다. 인간탐구가 곧 문학이다. 각박한 세상을 바꿔놓는 반전을 문학이 이루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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