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참 좋은 아침

천마리학 2013. 7. 11. 01:26

 

 

참 좋은 아침 * 權 千 鶴

 

 

어머! 눈을 뜨자마자 시계부터 봤다. 6시 반. 샤워부터 하고, 거울 앞에서 잠시 알짱거리고, 어제 밤 자기 전에 대충 맞춰놓았던 코디대로 옷을 입고(코디라고 해봤자 별것 없지만, 그래도 신경 쓰이는 약속이기 때문에), 부지런히 서둘러 715분에 집을 나섰다.

참 오랜만의 아침약속이다. 아니 토론토에 온 후로 처음이다.

내일 아침 식사 함께 할까요? 좋은 데로 모시겠습니다.’

어제 받은 메일이다. 어제부터 빅토리아 데이라서 롱 위켄드. 우리가족도 모두 금요일에 몬트리올로 휴가여행 떠났다. 벌써 석 달째 눈이 침침해지도록 원고의 교정작업(한인사 교정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중이어서 휴가도 반납했다. 그런데 아침식사 초대를 받은 것이다.

 

 

 

 

사양하겠습니다. 너무 이른 시간이기도 하고, 지금 일도 바빠서. 거기다 두 분 만의 시간을 뺏는 것도……라고 답을 보냈다. 보내놓고도 마음 한켠에 아쉬움이 깃들었다.

아침식사를 친구들과 함께 한 것이 언제였던가. 공식적인 조찬모임 외에 개인적으로 친한 사람들끼리 아침식사를 함께 하는 일이 그리 흔치않다. 친구라고 해도, 마음속에 자유가 있는 친구들이어야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시절이 있었다. 어떤 땐 저녁 늦은 시간에도 나와, 만나자! 해서 분위기 좋은 곳에서 만나 와인도 마시면서 분위기를 즐기다가 새벽이면 헤어지기도 했다. 월식(月蝕)이 있는 날 밤, 자정 무렵에, 월식을 가장 잘 지켜볼 수 장소로 발표된 백운호숫가 카페에서 만나 월식을 기다리며 보냈던 일, 멀리 스위스의 친구가 생일축하로 보내온 로즈 와인을 마시자고 친구들을 한적한 교외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불어내었던 일, 마침 그 시간에 스위스친구가 전화를 걸어와 해피 버쓰데이!를 해주기에, 그 와인으로 친구들과 즐기고 있다고 했더니 그날 식사비도 그쪽에서 내겠다고 하면서 카드 결재를 해줘서 더욱 특별했던 새벽도 있었다. 모두가 한국에 있을 때 일이다.

이제 토론토에 살면서 낮 외출도 거의 없는 나에게 아침식사 초대라니. 설레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나를 초대한 부부는 나의 글을 통하여 친해진 분이다.(말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고맙게도 나의 글을 좋아한다는 토론토의 펜들 중에서 부부 팀이 서너 팀 더 있다.^*^) 가끔 소식을 주고받으며 지내지만 아침식사 초대는 처음이다. 예상도 못한 그 일을 사양하고 나서 아, 옛날이여, 하는 심정으로 잠시 추억의 끝자락을 들추다가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메일로 사양했더니 전화로 강권하는 것. 이런 일이 쉽게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대공감! 마치 그래주기를 바라기라도 한 듯 약속을 하고 말았다.

아침 840, 욕 밀(York Mills) 지하철 역 앞.

 

집 앞에서 스트릿 카를 타고 스파다이나 지하철로 갔다. 이른 시간이어서 한산했다. 전철을 타려고 급하게 계단을 내려갔다. 이게 웬일? 철문으로 막혀있다. 당황하며 두리번거리는데 계단 위에서 예수 같은 모습의 한 남자가 나인,……선데이.’하고 말했다. 이곳에 와서 살면서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머리가 어수선하게 길고, 깡마른 모습이 마치 그림으로만 본 예수님과 닮아보여서 이곳엔 예수님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사람이 뭔가 문장이 되도록 말을 했겠지만 영어가 서툰 나는 아홉시일요일이라는 단어만 건져내어 아하, 일요일엔 아홉시부터 다니는구나 하고 알아챘으니 나도 그리 멍청하진 않다는 것을 인정해줘야 한다.^*^.

지상으로 올라왔다. 지리도 말도 서툰 처지여서 난감했다. 비상용 핸폰도 가져오긴 했지만 친구의 전화번호 메모를 식탁위에 놓고 왔으니 쓸모가 없다. 길에 서있는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샬라샬라, 나처럼 혹은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도 알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동동거리는데 건너편에서 달려오는 택시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다! 용기를 내어 한국에서도 거의 타지 않던 택시를 탔다. 욕밀 서브웨이 스테이션! 의사표시는 분명하게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안절부절, 기사에게 속내를 눈치 채지 않도록 태연을 가장 했지만 내심 불안한 것을 어쩔 수 없었다.

한때 납치가 성행하던 때가 있었다. 남자는 납치해서 섬으로 보내어 고기잡이를 시키고, 여자는 마늘까기를 시킨다는 말이 흉흉하게 나돌았다. 딸에게도 택시조심을 시켰지만 나 자신도 타지 않았다. 어쩌다 택시를 타야할 상황이 되면 나처럼 예쁜 사람은 절대 택시 타면 안 되는데!’하고 능청을 떨면, 친구는 애고, 우린 마늘까기 감도 안 돼!’하고 받았다. 그런 내가 토론토에 와서 단 한 번도 타지 않았던 택시를 탄 것은 바로 약속 때문이다. 약속은 칼같이 지킨다는 평소의 소신. 나는 최소한 그 정도는 되는 사람이라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택시 안에서 표 나지 않게 스쳐가는 길의 이름을 살펴보며 시간을 재었다. 핸폰도 꺼내어 손에 쥐었다. 내가 걸 순 없지만 혹시 시간이 늦으면 그 친구가 먼저 전화를 해올지도 모르니까. 초조함과 우여곡절 끝에 약속장소에 도착했다. 83, 택시비 27. 30불 주었다.

 

 

거리는 한산했다. 마음도 한산해졌다.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그리고 초조함으로부터 벗어나낯 선 신선한 아침분위기를 감상했다. 이것이 토론토의 아침이렸다. 끼욱끼욱! 머리위로 청둥오리 한 쌍이 지나가더니 다시 돌아와 머리 위를 선회하더니 숲 쪽으로 사라졌다. 아마 그들도 나처럼 아침식사 초대를 받고 가다가 길을 헷갈린 듯 했다.

정확하게 시간을 지켜 친구의 차가 왔다. 남편은 남편차로 먼저 갔다는 것.

고마워!” 친구 차에 타면서 한 첫마디에 별말씀을!

친구는 아침식사 초대를 고맙다는 것으로 이해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하면서 자초지종을 펼쳤고, 주거니 받거니, 레스토랑까지 가는 동안 서로 맞아! 맞아! 하면서 웃음도 넘쳤다.

일요일엔 지하철이 9시부터 운행한다는 것을 이민 30년이 가까운 그 친구도 모르고 있었다. 경험처럼 좋은 게 없다. 만날 어린애모양 차에 실려 다니다가 택시타기도 해봤고, 아침 먹으러 가는 청둥오리 한 쌍도 봤다. 한국에선 못 볼 아침 풍경이다. 소득이 많다. 30불의 수업료가 아깝지 않다. 혼자 남아 일에 파묻혔던 일요일 아침, 나를 배려해준 친구내외가 고맙다. 좋은 추억을 만든 초대 그 자체도 고맙지만, 그런 경험을 하게 한 것까지도 그 친구부부의 덕이니까 곱으로 고맙다. 좋은 아침!

 

<201351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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