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우울증, 계절의 길목에 숨은 복병 * 權 千 鶴

천마리학 2013. 6. 30. 17:02

 

 

우울증, 계절의 길목에 숨은 복병 * 權 千 鶴

 

 

떠나는 봄이 또 대형 사고를 쳤다.

오늘 아침에 접한 50대 시어머니가 임신 9개월 된 며느리를 목 졸라 숨지게 했다는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을 듣는 순간 둔기로 세게 얻어맞은 듯, 머리가 띵해지고 수렁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그 광경을 5살 된 손자가 보고 있었다고 하니…… 시어머니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 외엔 그 사건의 전말이 아직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어찌하여 젊은 며느리가 그 손길을 벗어나지 못했을까? 그 나이에 어떻게 그런 힘이 있었을까? 나는 두 손주 녀석 돌보기만으로도 힘에 부쳐 쩔쩔매는데. 제 정신이 들면 도저히 제정신으로는 살아갈 수 없을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 시어머니의 인생, 할머니의 손에 죽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망막과 뇌리에 새겨졌을 철모르는 다섯 살짜리 손자의 인생을 어찌 할까? 미처 태어나기도 전에 영혼으로 떠돌아야 하는 뱃속의 아기는 또 어찌할까? 뱃속에 새끼를 품은 채 생죽음을 당한 에미의 영혼은 어찌할까? 어찌할까? 어찌할까?

도대체 우울증이 뭐길래 과학자들은 유행처럼 번지는 우울증 하나를 콱 잡지 못 할까?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울증을 주셨을까?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있는 수천수만의 미묘한 갈래를 어찌 감당해야할까. 어지러운 생각들만 드글드글, 전이(轉移)라도 된 듯, 두근거림을 재우지 못한 채로 이 글을 쓴다.

 

 

 

 

 

최근의 보고는 남성(66.9%)보다 여성(82.6%)이 더 많이, 직장인 10명 중 7명이 앓는다고 한다. 부족한 활동량, 누적된 심신의 피로 등으로 일으키는 심리적 변화, 짜증과 무력감, 소화불량, 불면, 두통, 피부 트러블, 탈모 등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마음에 드는 감기’. 가벼운 운동이나 레저, 영양보충이나 식생활습관개선, 하루에 15분 정도의 햇볕 쬐기와 숙면이 최고의 보약이라니 극히 상식적인 처방이다. 극히 상식적인 선을 넘지 못하여 사고치는 우울증! 거기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이유가 된다니 계절도 유죄다. 계절이 무슨 죄가 있다고. 하긴 흘러가는 것이 죄긴 죄다. 멈춰라 세월!

유럽 사람들이 많이 앓는다는 겨울우울증(Winter Blues), 겨울의 부족한 일조량이 주요인이라니 멜랑꼬리한 낭만이었던 흐린 날씨의 멜랑꼬리가 문제다. 새삼 우리의 사계절을 갖춘 기후와 따가운 햇빛화살을 가진 여름이 고마워진다.

여름의 햇볕? , 사춘기적() 사고(思考)를 여물게 했던 이방인(異邦人)’의 주인공 뫼르소!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따가운 햇볕 때문에 나른해져 조름을 참지 못하고, 전 직장의 동료 마리와 데이트를 즐기는 해변에서도 쏟아지는 햇빛을 못견뎌한다. 우연히 어울리게 된 레몽 때문에 살인사건에 연루되고, 왜 총을 쏘았느냐는 질문에도 햇볕 때문이었다고 알 듯 말 듯 한 답을 한다. 일급살인죄가 적용되어도 변명이나 정당한 해명을 하지 않은 채 이질감으로 가득 찬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물론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일반적인 관습을 용납할 수 없고 철저히 자신의 실존에 충실하고자하는 주인공의 사고(思考)를 통해서 현실과 실존 사이의 괴리감을 표현한 작가 까뮈의 의도나 작품의 이면(裏面)에 배어있는 철학적 의식세계와 인간의 다양한 사고(思考)를 짐작 못하는 건 아니지만,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의 배경이 되고 원인으로 작용한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이다.

그는 매 상황에서 적응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나날이 변화되어가고 새로운 사회적 규칙이나 도덕성 따위의 사람을 얽매게 하는 경향에도 적응하기 어렵다. 적응할 생각도 없다. 불편할 뿐이다. 특별한 의도는 없다. 특별한 의도가 없기 때문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도 의도되지 않은 일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과는 살인이고 살인의 원흉은 햇빛이었다.

그도 여름우울증을 앓았구나! 봄날의 나른함이 시어머니로 하여금 며느리의 목을 졸랐듯이.

모든 사물의 양면 또는 다면의 의미와 작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뫼르소일 수 있음도 거부할 수 없다.

 

나 역시 숲을 좋아하여 선배로부터 여림(如林)’이라는 호를 선물 받아 가끔 사용하지만 여름 숲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름 숲은 푸름이 지나쳐서 오히려 부담스럽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친다. 열정이 지나쳐서 간혹 사랑도 무너지게 하듯. 그래서 신록이 좋고, 지는 가을 숲이 차라리 좋다.

뫼르소가 여름우울증 환자였다는 뒤늦은 진단과 함께 그의 마음을, 시어머니의 마음을 알 듯 모를 듯하다. 이해한다고 해도 사고치는 것만은 받아들일 수는 없다.

 

더 이상 사고치지 않도록, 극히 상식적이긴 하지만 자가진단을 해 볼 수 있는 항목이 있다.

?요즘 들어 결정하는 일이 어렵다./?집중력, 기억력, 판단력이 현저히 떨어졌다./?생활의 즐거움이 없고 해오던 일도 포기하려 한다./?소외감을 느낀다./?지난 일을 후회하고 서운해 한다./?자신의 앞날에 좋은 일이 없을 것 같다./?식욕감퇴, 답답함, 두통, 체중감소의 신체적 변화가 일어난다./?자신이 한심하고 하찮은 존재로 여겨진다./?불안, 긴장, 장래에 대한 초조감 등으로 불면증에 시달린다./?세수, 식사 등 간단한 자기관리도 소홀히 한다./

 

 

이 가운데 7개 이상의 증상이 2주 이상 계속되면 우울증이 의심된다고 한다. 혹시 지금 심리적으로 불편한 사람이 있다면, 다 아는 일이라고 무심히 넘기지 말고 참고하면 좋겠다. 그리고 빠르게 흐르는 시간 탓을 하며 무심해져가는 마음을 추슬러서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사람들을 깊이 들여다 볼 일이다. 그것이 사랑이고 사랑은 모든 병을 치료한다.

 

살다보면 전혀 우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누구나 가끔 우울하고 가끔 슬프다. 적당하게 감정의 기복을 타는 사람이 더 심오하고 살 맛 나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적당한 스트레스가 성공의 지름길이 되는 것과 같다. 다만 오래 가지 않도록, 굳어져 병이 되지 않도록, 사고치지 않도록 몸과 마음을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의 상식을 못 지켜서 삶 자체를 망치는 일은 절대로 없기를, 계절의 길목에 숨어있는 복병을 만나지 않기를,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을 접하며 다시 한 번 짚는다.

<2013319>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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