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인생부도

천마리학 2013. 6. 22. 04:22

 

 

인생부도 * 權 千 鶴

 

  

 

부산스럽게 한해를 보내고 다시 기대에 찬 새해를 맞이했다.

누구는 그동안 이 세상을 떠난 이도 있고, 누구는 병으로 고통 받는 이도 있고 누구는 뜻밖의 사고를 당하여 다치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하던 일이 잘 되어 좋은 성과를 이루어 기쁨에 차기도 했지만 또 누군가는 사업을 실패하여 부도를 낸 사람도 있다. 누군가는 만났고 누군가는 헤어지기도 했다. 다사다난하게 겪어냈던 일 중에서 좋은 일이야 천천히 말해도 되고 덮어둬도 될 일이다. 그러나 좋지 않은 일은 한번쯤 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난 해 대응하기 곤란한 일을 두 번, 돈에 관한 일로 겪었다. 피해 없이 잘 넘기긴 했지만 다시 한 번 관계에 대하여 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다. 새해벽두부터 무슨 돈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돈 이야기만큼 현실적인 일도 없을듯하다. 그래서 다시 새해를 맞이한 이 시간엔, 내가 겪은 일을 이야기 삼아, 올해에는 우리 모두 충실하게 살아내기를 바란다.

 

지난 초여름 어느 날, 멀찌가니 알고 있던 한국의 한 후배가 3천만 원, 안되면 천만 원이라도 빌려달라고 했다. 자동차와 차고(車庫)의 잠금장치류()를 설치하고 판매하는 일을 자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전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이라서 영업이 잘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주문은 적고 사업투자는 필요하고. 이해가 간다. 기계나 부품들은 수시로 최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사업투자가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도난방지 시설은 더욱 그러하다. 내년에 갚겠다면서 애절하게 청해왔다.

 

 

더블클릭을 하시면 이미지를 수정할 수 있습니다

 

 

3여 년 전에 이곳에 와 사는 동안 어이없이 돈을 횡령당한 일로 속을 끓이다가 작년 봄에 뜻하지 않게 나의 시 <빈 도시의 가슴에 전화를 걸다>를 매개로 하여 모두를 상환 받았다. 반가움이랄까 개운함이랄까 그 기분이 채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전이다. 그 일을 계기로 앞으로는 누구에게든 어떤 일로든 다른 사람과 돈에 얽힌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또 했었다. 그런데 채 일 년도 되기 전에 엉뚱한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청을 받고 보니 한 마디로 난감하고 불쾌했다. 가까이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동년배도 아니다. 다만 자기사업을 하면서 소그룹의 문학단체를 이끌고 웹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가끔 나에게 작품청탁을 해온 일도 있고, 매회 정기적으로 띄우는 그룹의 단체소식을 보내오는 처지였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80년 대 어느 한 때 나에게 글쓰기에 대해서 배우기도 했던 사람으로 그것이 인연의 끈이었다. 마음속으로 안 된다는 결정이 섰지만 그 말을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더구나 아닌 줄 알면서도 차마 거절하지 못해서 알면서 당하는 우유부단하고 못난 내 성격으론 더더욱 그렇다. 그럴 때마다 매번 냉정하게 끊어야지 벼르고 벼르지만 막상 누가 손을 벌려오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아 곤욕을 치르곤 한다. 이제 이만큼 먹은 나이 핑계 삼아 독해지기로 작정을 거듭하였고, 스스로 많이 독해졌다고 생각하는 터이다. 여하간에,

용기를 내어 안 된다고. 그렇다고 인간관계를 망치진 말자고 힘들게 몇 줄의 답을 작성하여 보냈다. 그런데,

지난 12, 그것도 X-Mas, 또 다른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청을 받았다.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하는, 80년대 그가 고시원을 전전하던 때부터 알게 된 후배로 인격적으로는 어느 정도 신뢰하는 친구다. 명석한 두뇌와 냉철한, 다소 냉소적이기까지 한 그의 인식과 세상을 향한 객관적 사고(思考)를 좋아했다. 고시를 포기하고 뒤늦게 급수를 낮춰 고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여 공무원이 된 후 이번에 사무관으로 진급이 확정되어 수도권으로 발령이 날 것을 대비하여 이사를 해야 하는데, 3천만 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방에 있다가 비싼 서울로 옮기려니 그렇기도 할 것이다.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떻게 말해야 할지 또 난감했다. 고민을 하다가 용기를 내었다. 이런 저런 상황설명을 하고 줄여 살아라하는 충고까지 담아 답을 보냈다. 그동안의 우리 관계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만큼의 대화는 소화해낼 수 있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섭섭했던지, 아니면 그 역시 내가 삐지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답을 보내왔다.

 

충고는 잘 들었습니다.

누구나 사는 방식이 조금씩 다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다를 수 있지요.

그리고 능력과 의사가 없다, 요렇게 한 줄이면 될 것을 길게 쓰셨더군요.

건강하세요

 

그래서 나는 즉석에서 다시 답을 날렸다.

 

썩네!

더 요약하자면 '의사가 없다'가 되지.

세상 보는 눈이 다르듯, 문장 보는 법도 다르고.

때로는 요약보다 설명이 더 중요할 때도 있는 것이 세상 법이니까

 

빼지도 더하지도 않은 메일의 내용 그대로다.

이렇게 끝을 맺고도 지금 나의 기분은 들큰쌉쌀, 과히 나쁘지 않다. 하기 어려운 일을 마무리해서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중도 제 그름은 모른다, 제 잘못은 제쳐두고 서운함을 앞세워 단절되기 십상인 유리 같은 사람관계, 그 유리조각에 찔려 늘 상처받고 외롭지 않던가.

따지고 보면 잠금장치 설비영업을 하는 전자의 후배와 후자의 후배는 경우가 다르다. 입장도 다르고, 관계의 정황도 다르다. 앞의 후배는 나와 같은, 글 쓰는 사람의 범주에 들어있다. 그렇더라도, 이번의 청은 솔직히 말하면 무례하다. 불쾌했다. 그러나 후자의 후배는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내가 한 때 고시촌 근처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을 때 알게 되어 지금까지 온, 나름 의식이 있고 지적수준도 상당하다. 거친듯하지만 솔직하고 결이 고운 사람이다. 지금도 전자의 후배가 정기적으로 보내오는 소식을 받아보고는 있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일 뿐이다. 생각건대, 후자의 후배와의 관계는 앞으로도 옥신각신해가며 유지될 것이다. 그래서 내 기분이 들큰쌉쌀 한 것이다.

 

 

단언컨대, 나는 나 스스로 독립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액수가 크든 작든 단 한 번도 남에게 돈을 빌린 일이 없다.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자존심 때문이었다. 지난 시절의 가난을 이야기 하는 일이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이렇게 스스럼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도가 텄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크게 돈 걱정 하지 않고 사는 지금의 이 평범함을 이루기까지 부모로부터 독립한 후의 나의 생애 중 삼십년을 바쳤다. 매우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도 그 나이에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빗대면 비싼 수업료만은 아니다. 지금의 안락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그 이치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둘 다 오십대이다. 아직도 그 나이에 돈을 빌려야한다면 생각해볼 일이다. 들큰쌉쌀한 기분으로 끝은 났지만 사실 생략된 부분이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어 그 말을, 후배만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서 부도를 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앞으로 삶을 이끌어야하는 나 자신에게도 새해의 삶의 첫 메시지로 던진다. 인생은 부도내지 말자!

인간으로서 가장 큰 죄, 바로 인생을 낭비한 죄이다. 빠삐옹의 꿈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다.

계획이 크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크게 세워놓고 못 지키는 것보다는 작지만 알차게 꾸리는 것이 현명하다. 매 순간 노력하자. 잘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는 부도를 낼지언정, 인생은 부도내지 않도록 내실을 기하자.

 

 

 

'권천학의 수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저작권관련-지하철시   (0) 2013.06.24
어디로 가란 말인가?  (0) 2013.06.23
떠나라!  (0) 2013.06.20
좀 참지! 김종훈씨!  (0) 2013.06.18
순망치한(脣亡齒寒)  (0) 2013.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