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을 통한 사유의 여행 * 權 千 鶴
뱀해다. 뱀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다. 모습때문일까? 두려움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두렵고 싫다. 체험, 학교에서 배운 지식, 상식, 신화 혹은 전설 등등 잠재된 근원이 작용했을 것이다. 아니면 생래적으로 갖는 혐오감인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 큰 홍수가 났었다. 김제평야가 온통 물에 잠겼다. 수업이 끝나고 들녘 건너 마을에 사는 친구들이 물에 잠긴 들녘을 건너가야 할 판이었다. 친구들을 도와준다고 동행해주었다. 신발을 벗어 보자기에 둘둘 싸서 어깨에 매고 통치마를 둥둥 걷어 허리에 묶고 길이 사라진 물바다를 건넜다. 날마다 오가던 친구들도 사라진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해 비틀거렸다. 사라져버린 길을 더듬더듬, 더러 헛짚어 더 깊은 웅덩이에 빠지기도 하면서 들녘 중간 쯤 갔을 때였다. 코앞에서 물에 둥둥, 떠있는 뭉치를 발견했다. 한 소쿠리는 됨직한 크기였다. 새끼뭉치? 짚으로 꼰 새끼뭉치가 아니라 얼기설기 뒤엉켜 꾸불텅 꾸불텅 움직이던 뱀 뭉치였다. 으악! 텀벙텀벙, 발걸음이 방향만 잃은 것이 아니라 정신마저 잃었다. 더듬거리던 발이 헛짚어지고 이리저리 허둥대다가 물에 빠지고 딩굴면서 혼비백산, 어떻게 수습했는지 지금도 앗질하다.
홍수가 나면 뱀들도 살기 위하여 한 덩어리로 뭉쳐 물난리를 피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황에선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것을 그 후에 알았다.
마을 앞 버스정류장 앞, 나지막한 둔덕모양의 경계를 사이로 지서(支署)와 이웃하고 있는 집이 있었는데 동네가운데 있는 그 집을 뱀집이라고 불렀다. 그 집엔 뱀들이 들끓다는 소문은 귀 달린 뱀도 있다는 둥, 머리가 두 개 달린 뱀이 들랑거리는 걸 봤다는 둥 무서움만 키웠다. 때문에 그 집 접근을 두려워했다. 대로변(大路邊)이고 동네 가운데인데도 그리고 사람이 사는 집인데도 뱀이 서식한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집 사람들은 어떻게 살까? 그래선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당시에도 확실히 본 일이 없고 지금도 생각되지 않는다. 어느 날 그 앞을 지나다가 장난치던 친구의 공이 그 집 대문 안으로 넘어갔다. 겁은 났지만 살며시 대문을 밀고 들어가는 친구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지서와의 경계인 낮은 둔덕에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친구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발걸음을 늦추고 있었는데, 풀포기 사이에서 쉬잇!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더니 오색(五色) 무늬가 잠간 스치듯 떠오르더니 풀숲 사이에 S자를 그리며 곧 사라졌다. 방울소리가 여리게 들렸다. 알록달록 무늬 위에 안개처럼 털이 부스스 덮여있던 것도 같았다. 자지러져 도망쳤다. 후에 어른들로부터 몸뚱이에 털이 난 뱀도 있다고 들었는데 사실여부는 지금도 모른다. 그 꽃뱀이 독뱀이라고도 했다. 독(毒)이 있는 것은 아름다운 법.
우리 반에 갑순이란 아이가 있었다. 피부가 하얗고 너부죽하고 복스러운 얼굴, 예뻤다. 공부는 늘 꼴찌를 해서 아이들의 조롱상대가 되곤 했다. 어느 날 골목이 소란스러웠다. 갑순이네 집 마루 밑에서 구렁이가 나왔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술렁대는 가운데 손에 요령을 든 점쟁이 아주머니가 마당 한 켠에 떡이며 과일이며 음식이 차려진 젯상 앞에서 주문을 외우며 이상한 몸짓을 했고, 갑순이의 할머니도 점쟁이를 따라 절을 하며 두 손을 비벼대었다. 점쟁이의 지시대로 갑순이의 할머니가 마루 끝 처마 안쪽, 시커멓게 그을은 천정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왔다. 모아 둔 머리카락 뭉치였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피워 올렸다.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그 사이 구렁이는 느릿느릿 마당을 가로질러 마당 옆 모퉁이에 있는 감나무 쪽으로 갔다. 밑둥치쯤 도착했을 때 엄마에게 뒷덜미를 잡혀 끌려왔기 때문에 그것으로 갑순이네 구렁이 구경은 끝이 났지만 내 머릿속엔 더 많은 궁금증들이 남았다. 정말 집지킴이 있을까? 구렁이가 사라진 것이 머리카락 연기의 효력이었을까? 감나무 위에서 어디로 사라졌을까? 뱀이 감을 좋아할까? 등등. 한편으론 갑순이 할머니를 통하여 어른들은 평소에 방바닥 여기저기 떨어진 머리카락을 모아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것과 그것을 뱀을 쫓는 방편으로 삼는 이중(二重)의 지혜라는 것도 알았다. 갑순이네 뱀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후 어느 날 도시락 반찬으로 싸온 생선 토막이 뱀고기라고 들추어내면서 놀리던 짓궂은 남자아이들 성화에 울며 돌아갔던 갑순이, 그날 갑순이의 모습이 학교에서 본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오, 가엾은 갑순이. 그때도 지금도 안쓰럽다.
중학생 때부터 천경자의 그림을 좋아했다. 신문연재 소설의 삽화로 그려지는 천경자의 그림을 보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 국어선생님에게 천경자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국어선생님의 반응이 가슴에 꽂혔다. 넌 참 별스런 그림을 좋아하는구나, 핀잔처럼 하던 한마디가 마치 종북이니 친북이니 하는 요즘 빨갱이를 좋아한다고 한 말과 같은 취급을 받았다. 공부 잘 한다고 선생님으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했었는데 그날부터 국어선생님을 무시하는 불량학생이 되었다. 점점 더 천경자의 그림에 빠져 들어갔다. 천경자의 그림에 나타나는 곡선, 그 곡선은 머리에 꽃을 꽂은 여자를 그려냈다. 그 곡선을 흉내 내어 연습장에 모딜리아니와 같은 목이 긴 여자를 그려내곤 했다. 언젠가 천경자의 그림에 뱀이 등장했다. 또아리를 튼 뱀이 여자의 머리위에 혹은 목에 걸려있기도 했다. 이미 중학생시절은 벗어났지만 그제야 국어선생님이 왜 이상한 눈으로 봤는지, 맞는 추측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어쩌면 국어선생님도 나처럼 뱀을 싫어했고, 또 예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그랬을 거라는 제법 혜량을 베푸는 이해심이었다. 천경자의 그림에 나오는 뱀은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았으나 흉내 내어 그리지 않았다.
천경자의 그림에 등장한 뱀이 깊은 절망과 고독의 예술혼이라는 것, 질곡의 삶에서 얻은 통찰력과 남다른 사유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시를 쓰기 시작하고도 한참 지나서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크든 작든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쏟아지는 고뇌와 절망, 밤을 새워 글을 써야하는 이유,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유, 바로 그것이 창작을 위한 정신적 번제물이며 예술가들의 사유세계라는 것을 실감했다. 그 무렵, 나의 작품들이 비로소 사유의 깊은 면을 건드리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때 얻었다. 허물벗기의 고통을. 뱀만이 아니라 긴 세월을 땅속에서 지내야하는 매미의 생애, 껍질을 벗어내고 날아오르기 위해서 4~5회의 탈피를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90%가 천적인 새들에게 잡혀 먹히고 겨우 2% 정도가 살아남는, 전 생애의 4분의 3을 어둠에 바치는 나비 등, 목숨을 살아내는 그 노고야말로 인간이든 예술이든 큰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그때부터 나의 시(詩)든 삶이든 그런 사유의 확장선상에 놓였다. 시든 소설이든 하다못해 이렇게 쓰는 짤막한 에세이 한편에서도 그 글을 쓴 사람이 갖고 있는 사유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최근의 어느 자리에서 요즘 발표되는 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시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특별함도 없고, 자기혼자만의 지식을 드러내거나 흔히 널려있는 문구를 옮겨놓은 것들이 많다고 하면서 ‘너나 잘 하세요’하고 만다는 말을 듣고 같은 시인으로서 난감하고 당혹스러웠다. 프리다의 그림을 처음 만났을 때 매우 강렬한 인상과 함께 천경자를 떠올렸다. 자화상에 나오는 뱀 장식의 목거리와, 꽃 때문이었다. 동시에 글을 쓰면서 건너왔던 나의 사유, 한편의 시가 되기까지, 뱀이 화가의 머리 위에 올라앉기까지, 목걸이로 걸리기까지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고단한 사유의 여행임을 깨달았다. 뱀의 해에 잠시 더듬어 본 사유의 여행이다. <2013년 1월 3일> <20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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