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십자가의 불은 가슴에 켜주십시오

천마리학 2013. 4. 1. 00:23

 

  

 

십자가의 불은 가슴에 켜주십시오. * 권 천 학

 

 

오늘 아침 뜻밖의 뉴스를 만났다.

십자가 불 끕니다. 일부교회 실험에 나서. 안양의 실험이라는 제목이다.

십자가 불 끕니다라는 말도 촉각을 곤두세우기에 충분한데 그 끝에 안양의 실험이라니.

기사를 읽어내기도 전에 궁금증이 먼저 내달렸다. 당연하다. 내가 지금 이곳에서 원격조정으로 관리하고 있는 지하 1층 지상 5층짜리 내 건물이 안양에 있고, 그 건물의 지하에 세든 교회의 첨탑이 옥상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이곳으로 떠나오기 직전까지 건물의 5층에서 살았고 아직도 그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는 나의 삶이 나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사 내용은 도시의 미관, 강풍이 불경우의 위험, 절전, 주민들의 불편, 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 예견과 민원 등의 문제를 들어 교회첨탑의 불을 끄자는 운동이 벌어지면서 아울러 철탑 제거시엔 200만원을 지원해주고 있으며, 철탑을 유지할 경우 높이를 3m이하로 제한하고, 11시부터 새벽 4시 사이엔 전기도 끄기로 했다는 것, 그 첫 실험지가 바로 안양시이며 벌써 100여개의 교회가 동참 실행중이라는 것. 딱 내 이야기이고 내 지역이다. 기특하다 안양시!

 

기사의 내용에 충분히 공감하지만 속마음을 털어놓자면 나는 내 건물에 세 들어있는 그 교회에 대해서,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교회의 목사에게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성직자는 고사하고 일반인으로서의 기본예의도 갖추지 못한 사람으로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경험한 일을 일일이  말할 순 없지만 나로선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렇다고 드러나게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목사를 존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교회의 신도들이 불쌍하다는 염려 비슷한 생각까지 하고 있다. 학생들이 좋은 스승을 만나야 미래를 기대할 수 있듯, 길 잃은 양들이 좋은 주인을 만나야 좋을 길을 갈 수 있다는 단순 평범한 논리에서다.

 

5층 옥상의 교회 첨탑이 달갑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봄만 되면 첨탑에 까치들이 나뭇가지나 철사토막들을 물어 날라 집을 짓느라고 부산한데, 그들이 떨어트린 건축자재 부스러기들과 분비물들로 첨탑아래가 늘 지저분하다. 여름이면 그 부스러기들이 물홈통을 막아서 옥상의 물을 넘치게도 하고,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면 낙뢰가 염려되기도 한다. 여러 모로 탐탁찮으나 이왕 세 들어 있는 상태이니 어쩔 수 없이 견뎌내기로 했다.

 

어쩌다 바로 위층의 세입자가 세탁기의 물을 넘치도록 틀어놓고 외출하는 바람에 물이 넘쳐 화장실을 물바다로 만드는 일이 벌어졌었다. 물이 아래층인 목사의 집 화장실 벽을 타고 스며 흘렀다. 그 일로 2층 세입자와도 입씨름을 하고, 주인인 나도 중재역할 겸 뒤 수습을 하느라고 잠시 분주했었다. 마무리 된 후에 그 일을 빌미로 목사는 벽에 얼룩이 졌으니 그 방을 새로 발라달라고 2층 세입자에게 요구했고, 나에게는 집 전체를 새로 도배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참고로, 월세 입주자는 주인이 도배를 해주게 돼있고 보증금 세입자는 세입자가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목사는 보증금세입자이다.

 

그보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목사의 비인격 내지는 몰인격이었다. 남의 말을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라서 더 이상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일 외에도 청소문제, 하수도문제, 주차문제... 등등 열거하자면 많다. 보수공사때 교회에서 아무렇게나 모퉁이에 쌓아놓은 폐기물들때문에 제대로 페인트 칠을 하지 못했는데도 박박 우기다가 먹히지 않으니까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뱉어내며 고함을 질러대었다. 할 수 없이 이미 다른 곳으로 전근한 전임 목사에게 확인해보라고 했더니 그러겠다고 큰소리치면서 만약 증명이 되면 자기 손가락에 장을 지지겠다고까지 하며 입에 게거품을 물더니 그 후로 찍소리도 없이 슬그머니 넘어갔다. 전임목사에게 교회에서 했다고 증언한 것이다. 사과는 커녕 일언반구 내색도 없었다. 

자기 용무가 있으면 자정 무렵이건 새벽이건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해대고, 자기 말대로 듣지않으면 비굴할 정도로 굽신대는 감언이설을 늘어놓다가 결국은 돌변하여 고래고래 고함치고, 은근히 협박하고, 마치 자기 신도에게 하듯 명령조의 언사, 웃음을 남실거려가며 내는 변성의 목소리... , 정말 나를 질색팔색하게 만들었다.

필요한 일은 알아서 시행하지만 무조건 목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감정적으로 이미 그에 대한 평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조근조근 들어주는 자세를 취하기는 하지만 그의 요구사항이나 주장을 들어주지는 않았다. 옳지 않거나 경우에 맞지않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고집도 있기 때문이다. 만만하게 보고있는 목사의 인식이 더 문제라는 것도 짐작하고 있다. 어떻든, 

성직자로서가 아니라 일반인으로서의 예의범절도 갖추지 못하고, 무심하게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신도들 앞에 군림하는 버릇이 몸에 밴 탓이라는 추정까지 하게 만들었다. 신도들 위에 군림하는 태도, 그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 참을 수 없게 하는 것은 그때마다 하나님을 들먹이거나 앞세우는 것이다. 하나님을 빌미로 생계를 유지해나가면서 대통령 행세하는 것이 어둠속에서도 보일만큼 환하다. 세상사 두루 관장하시느라 바쁘실 하나님께서 우리집까지 끌려 다니시다니, 하나님은 정말 수고로우시다.

 

가끔 까치들이 전선을 끊어서 첨탑의 전등이 꺼졌다느니, 까치 분비물 때문에 철탑이 삭아서 고쳐야한다느니 하면서 수시로 옥상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수리로 시작한 그 일이 점점 진행되어 더 이상 집을 짓지 못하게 아예 첨탑의 꼭대기 부분을 사방으로 철판으로 막더니, 급기야 무슨 전기장치를 한다고 했다. 닿기만 하면 감전되어 죽게 만드는 장치라고 했다.

그런 모습은 지켜보면서 나는 속으로만 빈정댔다. 정작 까치 때문에 피해보는 나는 괜찮은데 원수도 사랑하라는 하느님 추종자들이 왜 저럴까, 오른 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놓으라던데 아직 거기까지는 안 배웠나 하고.

 

첨탑과 까치를 견뎌내기로 마음을 바꾸니 그것들이 오히려 낭만적인 존재로 바뀌었다. 밤이면 야외용 간이침대에 누워 밤하늘의 하늘 길 더듬다보면 첨탑위의 빨간 불이 아름답게 보이기도 했다. 또 나를 교회로 이끄는 친구들에게 가끔 농담도 한다. 나는 하나님성전 위에서 살고, 내 머리 위엔 하늘길 가는 불빛이 밤마다 밝혀주니 염려 말라고.

까치집이야 첨탑이 있으니 당연히 생기는 것이니 까치 나무랄 수 없는 일이다. 이른 아침이면 치카!치카! 짖어대는 까치 소리에 잠을 깨고, 내가 만든 옥상 텃밭에 서리 나온 까치들과 토닥거리며 이야기도 나눌 수 있어 좋다. 까치는 매우 영민하고 양심이 있다. 문을 열고 나서거나 창문을 여는 기척만 있으면 재빨리 첨탑위로 날아가 숨어버린다. 내가 꾸며놓은 옥상의 텃밭도 침범한다. 남의 텃밭서리를 했으니 당연한 것 아닌가. 분명 양심이 있어 미안해서일 테이니까. 그때마다 내가 까치에게 이른다. 괜찮아. 나눠먹고 살자. 너의 집 한 채 더 있다고 일 가구 이 주택 세금 무는 것도 아니니까 미안해 할 것 없어. 그래도 까치는 나만 보면 얼른 날아가 버린다. 이른 아침에 텃밭으로 나가면 먼저 와서 뒤지던 까치가 잽싸게 첨탑 위로 올라가 캭캭거린다. 미안하다는 뜻이다. 그때도 난 괜찮아. 니가 벌레를 잡아먹는 것은 나를 돕는 일이기도 하니까. 미안해한다는 것, 양심이 있다는 것. 다시 말 하건데, 까치에게도 양심이 있다는 증거이다. 까치도 가진 그것들을 하나님의 심부름꾼은 왜 없을까? 생각한다.

 

 

‘...사님들께서 반대 없이 적극적으로 동참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시민들이 조금 더 행복한 그런 삶이 되지 않을까. 한다는 안양시장의 말에 모종의 헛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알게 모르게 작용하는 권력의 폭력과 거지같은 정치적 거래의 단초가 의식되지 않는가.

교회의 첨탑이 높아지는거만큼 교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졌고, 절대복음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제는 본질로 돌아가자는 그런 취지로한 교회단체장의 말에서도 역시 헛웃음. 그걸 지금까지 몰랐나? 까치도, 안 믿는 나도, 진즉부터 알고 있었는데. 이제라도 깨닫고 본질로 돌아간다 하니 그나마 축하할 일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건물주로서 내보내면 되지 않느냐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모르는 소리다. 그 건물에 세든 20세대 가까운 세입자들에게 공평하다면 공평하달까, 오래 동안 주변보다 싼 임대료를 받고 있는데, 유독 그 교회만 비싸게 올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그 교회는 가장 오래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올리지 않아서 정말 더 싼 값에 있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굳이 세를 올려 받거나 할 생각은 별로 없다. 내가 거기 있을 때도 그랬는데 지금은 여기와 있으니 더욱 그렇다. 내 성격이 못나고 무른 증거이다.

떨어져있는 사이 얼마나 달라졌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이 기회에 첨탑세우기로 높였던 십자가를 가슴 한 복판으로 옮기고, 그 가슴 한 복판에 뜨겁고 환한 불을 밝히기를, 우리 목사님 말고도 모든 비슷한 성직자들에게 기대해보는 마음이다.

 

<2012, 6, 14.>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