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도박, 그 망쪼의 이름

천마리학 2013. 4. 3. 05:19

 

 

 

도박, 그 망쪼의 이름 * 권 천 학

  -나의 첫번째 필화사건

 

 

토론토에 카지노가 생긴다는 뉴스를 접했다.

 돈놓고 돈먹기’라는 말과 함께 거리에 성행하던 야바우꾼과 한때 우리집안을 시끄럽게 했던 도박에 관련된 오래된 추억이 들추어졌다.

 

오십년쯤 전,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아버지는 전라도에서 정미소를 운영하셨다. 정미소만이 아니라 양조장, 제재소, 양계장까지 동시에 운영하시는 사업가였으며 지방 유지였다. 내가 중학생일 때부터 부산에서 직장을 가지고 있던 막네삼촌이 우리집으로 와서 함께 살기 시작했다. 나보다 여섯 살 위니까 막네삼촌이 막 이십대가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는 고향이 안동이므로 아버지도 객지에서 사업을 일구어 자수성가한 사업가였고, 막네삼촌도 객지생활을 했던 셈이다. 전라도에서 성공했다는 큰형, 즉 우리아버지에게 기대를 걸고 온 것이다. 아버지는 정미소 관리를 막네삼촌에게 맡겼다. 물론 중요한 일은 아버지가 하시지만 정미소의 기계일이며 일꾼들 관리 등 일이 많았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는 탓에 우리집에는 늘 몇 십명씩의 일꾼들이 있었다.

 

당시의 정미소는 단순히 방아를 찧는 방앗간의 역할만이 아니라 인근 농민들의 금융기관 노릇까지 겸했다. 가을철에 방아를 찧은 농민들의 쌀을 다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당장 먹고 쓸 만큼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정미소에 맡겨놓고 보관증을 받아간다. 그런 후에 돈이 필요하거나 식량이 필요할 때 보관증을 가지고 와서 그때그때의 시세로 쌀값을 쳐서 받아가기도 하고 쌀을 가져가기도 한다. 우리집 창고에는 가을이면 항상 수백가마니가 들어찼다. 어떤 땐 창고가 부족하여 부대건물에 쌓이기까지 했다. 대개 다음 해 봄이면 보관미가 바닥이 났다.

 

막네삼촌이 맡은 이후 언제 부터인가 보관증의 오류가 자주 나타나고, 장부상의 기록과 창고의 쌀가마 수가 맞지 않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무렵 막네삼촌이 마을의 꾼들과 어울려 도박에 빠졌다는 정보를 입수한 어머니가 밝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네삼촌은 언제나 오리발이었다. 해마다 결손이 커지고, 급기야 정미소 손익계산서에 적자 표시가 심각할 정도가 되었다. 신용이 최고였던 아버지가 노랑수염 할아버지로부터 보관미 독촉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다. 아버지는 좋은 말로만 훈계했고, 해마다 막네 삼촌의 도박은 병처럼 도졌다. 어느 겨울 밤에는 한밤중에 어머니와 함께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는 초등학교 숙직실을 덮치기도 했고, 겨울만 되면 해가 진 후 바람처럼 사라지는 막네삼촌의 뒤를 탐문하는 것이 어머니의 일이었다. ‘오리발과 다시는 안하겠다는헛맹세를 거듭했지만 언제나 도로아미 타불이었다. 한 해에 몇 십가마의 손실로 시작된 것이 해가 지나면서 백여가마를 거쳐서 4백가마가 넘는 쌀을 한 해에 자포내기도 했다.

나는 그런 막네삼촌이 미웠고, 막네삼촌은 따지고 드는 내가 미워서 우리는 고양이와 쥐 사이였다. 그러는 중에 중신아비가 드나들며 막네삼촌의 결혼이야기가 오갔다. 결혼을 시키면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소리도 들었다. 결혼날짜가 잡혔다. 그런데 결혼식 이틀 전,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막네삼촌이 없었고 집안분위기가 뒤숭뒤숭했다. 읍내 경찰서에서 들이닥쳐 막네삼촌을 데리고 갔다는 것이다. 혼인날을 코앞에 두었으니 낭패였다. 집안이 벌컥 뒤집혔다. 아버지가 경찰서로 달려갔다. 알고 보니 도박혐의였다.

 

그때는 나라 전체가 도박이 성행하던 시절이기도 했다. 봄부터 가을까지 열심히 농사지어놓고, 겨울철 농한기가 되면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농민들이 많았다. 마을마다 시끌시끌 도박꾼들이 패를 지어 옮겨 다니며 순진한 농민들을 유혹하여 도박판으로 끌어들이곤 했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국가가 나서서 농한기 도박근절 계몽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으나 쉽게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아마 도박의 중독성 때문일 것이다. 도박근절 프랑카트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고, 도박근절의 포스터들도 담벼락에 붙어 있었다. 도박은 가난한 농민들을 더욱 가난하고 피폐하게 만드는 망국병이었다. 적발되면 형벌을 받았다.

 

막네삼촌이 경찰서에 잡혀간 다음 날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 들어서는 순간, 집안 분위기가 싸늘했다. 어머니가 다짜고짜로 내 손목을 나꾸어 제재소 한 켠으로 끌고 가더니 큰일 났다. 어떻게 할래? 아무리 밉다지만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느냐?’고 다그치셨다. 내가 막네삼촌을 경찰서에 고발했다는 것이다. 그런 일이 없다고 펄쩍 뛰었지만 믿지 않으셨다.

 

읍내 경찰서에서 주관한 일이라면 아버지의 영향력으로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때가 마침 전국적으로 도박근절특별단속기간으로 정해진 시기였고, 중앙정부의 담당부처로부터 특별히 파견된 조사반에 의해 적발된 일이라서 무마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당장 내일 아침이면 사모관대를 써야 할 신랑이 경찰서에 있으니 난감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숨죽이고 있는데 밤늦게 아버지와 함께 막네삼촌이 돌아왔다. 그때 막네삼촌의 나를 향해 시뻘겋게 부라리는 눈을 보았다. 나는 아버지의 부름으로 사무실방으로 들어간 문초를 당했다. 아버지는 크게 야단을 치지 않으셨으나 종이쪽지를 내밀며 이런 편지를 보낸 일이 있느냐고 확인하셨다.

그 한 해 전에 다른 학교로 전학 간 단짝 친구와 주고받은 편지의 한 부분이 아버지가 내미는 종이에 복사되어있었다. ‘막네삼촌이 얼마 전에도 쌀을 오십 가마나 날려서 집안이 편치 못하다. 그것 때문에 졸업여행 간다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는 불평이 쓰여 있었다. 그것이 화근이 되었다. 특별단속기간이라서 우편물까지 검열했던 것이다. 봉투를 뜯지 않고 투시해서 검열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아버지가 야단을 심하게 치지 않으신 것은 내가 고의로 고발한 게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셔서였다. 아슬아슬하게 처리되어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결혼식도 치루고 지나갔지만 그러잖아도 앙숙이던 막네삼촌과 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된 것이 뻔한 일이다. 그것이 나에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몇 번 겪은 필화(筆禍)사건 중의 첫 번째 사건인 셈이다.

 

 

우리나라의 사북탄광촌에 카지노가 들어선 것도 결국은 국가가 자행한 실패사업이 되고 말았다.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다고 시작은 했지만 결국은 내국인들의 패가망신장이 되어버렸다. 그곳에서 한때 잘나가던 중소기업의 사장들이나 중견직장인들이 쪽방신세를 지며 라면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도 한탕을 꿈꾸는 정신파탄자들이 되어가고, 골목마다 고급승용차들이 폐차로 버려지는 곳이 되어버렸다.

도박으로 망신당한 연예인들의 뒤를 이어 최근에 개그맨 출신 영화감독 심형래 역시 도박으로 몰락의 내리막을 치고 있다. 그는 이천 년대에 들어서면서 신인류 1의 칭호를 받았던 사람이다.

 

몬트리올에 살 때 연락만 취했던 지인과 처음 만나기로 했는데 장소가 카지노였다. 내 머릿속에는 도박은 망국병, 망신병이란 붉은 도장이 박혀있고, 카지노도 도박이라는 인식이 뚜렷한데 하필이면 그런 곳에서 만나자고 할까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카지노 문화가 우리와 다르다는 설명을 듣고 또 카지노에 딸린 카페였긴 하지만, 여전히 카지노를 국가에서 운영한다는 것부터가 이상했다. 잔챙이들의 주머니를 긁어내는 도박이니 더욱 치사하지 않은가.

 

하기야 라스베가스로 휴가여행 떠나는 친구에게 200불을 주면서 내 몫으로 스럿머신을 하라고 한 일도 있긴 하지만 그것도 이곳의 다르다는 문화를 경험해보기 위해 어울려본 것일 뿐, 여전히 나는 카지노는 카지노일 뿐이고 도박장일 뿐이다.

 

또 이웃에 사는 이태리출신 노인이 금요일만 되면 정장을 차려입고 카지노에 가는 것을 보았다. 거기서 간단히 게임도 즐기고 또래의 노인들도 사귀고 여자 친구도 만든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건물을 가지고 있었는데 관리인을 두지 않고 직접 관리하면서 쓸고 닦는 일부터 시작해서 고치는 일까지 스스로 해내는 부지런장이에 구두쇠였다. 손에서 비와 망치를 놓지 않는 그가 금요일만 되면 말끔해지는 것을 보면서 노인들을 위한 놀이터로서의 문화는 긍정할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더라도 께림칙하다. 출입연령을 65세 이상으로 제한한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여전히 카지노는 도박이고 도박은 달갑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토론토에 카지노가 생기는 것을 반대한다는 의견에 찬성 한 표 던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