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희비쌍곡선 봄소식-김종훈과 김연아

천마리학 2013. 4. 19. 06:09

 

 

 

희비쌍곡선 봄소식 * 權 千 鶴

-김종훈과 김연아

 

 

 

기분 좋았다. 좋을 뻔 했다.

217일에 날아온 이른 봄소식, 바람만 건 듯 불어도 날 것 같은 봄, 훈풍을 탄 기분이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장관후보로 벤처사업으로 성공한 벤처사업가인 재미동포 김종훈 씨가 지명되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정부가 시작된 후, 온 국민이 새로 펼쳐질 국정에 부풀었다. 수월한 발걸음은 아니라하더라도 일단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쉽게 이루어지는 일은 쉽게 망가지는 법, 어렵게 이루어내는 일이 값진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기대는 결코 무망(無妄)한 것이 아니다.

미래의 성장동력을 설계할 새 핵심부처, 성공의 여부와 관계없이 명칭만으로도 대통령의 포부와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 수장(首長)으로 재미동포가 지명되었다는 소식은 해외에 나와 사는 모든 동포들을 부풀게 했다. 지명되자마자 김종훈 그는 누구인가. 떠들썩했다.

 

38세에 미국의 400대 부자랭킹에 올랐고, 미 핵잠수함에서 7년간 근무했고, 노벨상 산실벨연구소 최연소 CEO라는 것 등등 그의 남다른 경력이 줄줄이 줄줄이.

 

중학교 2학년인 1975, 가난을 벗어날 목적으로 이민을 한 부모님 따라 첫 정착지인 메릴랜드의 빈민촌에서 신문배달로부터 시작하여 언어장벽, 인종차별 등의 사회적 차별과 싸우며 주방보조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비를 버느라고 잠이 부족하여 죽을고비의 교통사고도 당해가며, 존스홉킨스대학의 전자공학과에 진학하여 기술경영학 석사학위까지 따냈으며, 4~6년 걸리는 공학박사 학위 과정을 최단기인 2년에 해치웠고, 논문준비에 매달리느라고 새벽 2시를 오후 2시로 착각, 점심을 먹으려 했던 일까지 일화(逸話)로 들춰내며 피나는 노력이 줄줄이 줄줄이.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하고 큰딸 이름을 딴 유리시스템즈라는 벤처회사를 차려 “5년 안에 10억 달러 가치의 회사를 만들겠다는 꿈같은 목표를 세운 후, 해군 복무 경험과, 1991년 걸프전쟁 당시 미군 전투기들이 위성과 같은 다른 네트워크에서 오는 데이터를 제대로 수신하지 못해 적군의 전투기를 놓친다는데 착안, 서로 다른 통신 네트워크(무선 구리선 광케이블) 사이에서도 데이터가 제대로 전달되게 하는 신기술인 ATM이라는 군사 통신장비를 개발해서 상용화에 성공한 후, 세계적인 통신장비업체 루슨트테크놀로지(현재의 알카텔-루슨트)10억달러(1800억원)로 매각하여 38세의 나이에 미국 400대 부자가 되기까지의 뛰어난 사업수완이 줄줄이 줄줄이.

 

부와 명예를 거머쥔 후에도 루슨트로 스카우트된 그는 광네트워크 부문사장 등을 맡아 글로벌 경영인으로 변신했고 박사 학위를 땄던 메릴랜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면서 그의 도전정신에 대한 칭찬도 줄줄이 줄줄이.

칭찬여론이 들끓었다.

 

나는 이민 1.5세대인 그의 온갖 성공스토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아이덴티티는 한국인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34일 돌연 사퇴를 발표했다.

막상 후보지명이 되자 이번에는 그를 헤집는 온갖 반대의 여론도 들끓기 시작했다.

아직은 검증도 안 된 채 몰아붙이는 정치적 발언과 함께 사적인 의혹까지 설왕설래 제기되면서 그의 실망은 충격으로 변했고, 그런 난맥상에 좌절감을 느낀 그가 드디어 후보사퇴를 결정한 것이다.

미국에서 일군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국의 부름에 응했던 그가 '조국에 대한 헌신을 접겠다'고 하는 발표를 들으면서 바늘 끝에 찔리는 기분이었다. 조국에 헌신하려고 했던 꿈이 산산조각이 난 그의 심중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생각도 일었다.

미국에서의 오늘을 일구어낸 의지(意志)라면 고국을 위해서도 도전의지를 불태울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쉽게 좌절해버리다니 하는 아쉬움과, 수모를 받을 필요가 없이 돌아가자고 울며 매달리는 아내와 딸 생각도 했다는 그의 말에서 느끼는 달라진 시대적 가치관이다.

얼마 전까지도 우리의 일반적 가치관은 국가와 가정 중, 국가를 더 우선순위로 쳤다. 그런데 지금은 국가보다는 개인의 안위가 우선이라는, 가치관이 변화된 세태를 실감할 수 있었다.

 

 

어떻든 이제 훈풍에 실려 온 봄소식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우울해하지 말자. 그 자리를 메꾸는 또 다른 봄소식이 기분 좋게 도착하지 않았는가.

피겨여왕인 김연아가 온타리오주 런던 버드와이저 가든스에서 열린 201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시니어 싱글 쇼트프로그램에서 69.97점으로 1등을 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캐나다에서 이뤄낸 성과다. 그런데,

그 다음으로 관심이 가는 것은 2등이 누구냐?가 아니라 아사다 마오는 어떤가? 하는 것이었다. 꼭 나만의 생각일까? 그렇다고 해도 상관없는 일이다.

 

 

'동갑내기 라이벌' 아사다 마오, 결정적인 실수까지 범하고 6위에 머물렀다.

격이 다르다를 비롯하여 쏟아진 온갖 찬사 중에서, 가장 귀담아지는 것은 아사다 마오가 김연아를 이기는 것은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한 일본인들의 자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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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통쾌할까?

바로 이것, 김종훈씨나 김연아, 그리고 나의 한국인이라는 공통 아이덴티티다.

 

 

파도는 끊임없이 들이친다.

한 파도가 물러나면 다시 또 한 파도가 이어진다.

그래서 세상 살맛이 난다. 그러니까 들뜨지 말아야하고 가라앉을 필요도 없다.

미국으로 돌아간 김종훈 씨는 나중에 조국을 위해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열심히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믿자.

김연아는 정상의 자리는 언제가 내주어야 함으로 너무 기쁨에 오래 들떠있지도 말고 방심도 하지 말라고, 그 나이의 딸에게 속삭이듯, 주문하자.

 

지금 왔던 봄은 작년에도 왔었고, 내년에도 온다.

이 봄이 결코 끝이 아니다. , 그리고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