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된 꿈이라도 목소리를 내자 * 권 천 학 -여기 한국사람 있소, 그 후
토론토에 살면서, 캐나다를 배워가면서 나는 점점 캐나다인스럽게 변해가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할수록 내가 한국인이라는 의식이 솟아남과 동시에 주류사회에 분명한 한국인의 색깔을 내자는 생각을 한다. 아무 능력이 없는 나로선 계란으로 바위치기이지만. 일종의 영역차지의 본능일 것이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온갖 사람들이 다 모여들어 살면서도 삐걱거리지 않고 잘도 굴러가는 것이 신기한 이 나라. 생활관습, 먹을거리, 심지어 옷 입는 스타일도 구분이 되는 다문화가 묘하게 얽혀가면서 제 각각 색을 내는 세계 각국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각축장이다. 눈에 보이게 싸우거나 다투진 않지만 살아남기 위해서 치러내야 하는 온갖 어려움과 노력과 실패 또한 많을 것이다. 그런 속에서도 가끔 성공한 우리의 이민자들의 소식을 접하면 뿌듯하기 그지없다.
인종이 달라도, 가슴에 품은 뜻이 달라도 단 한 가지 같은 것이 있다면 다같이 36,5도의 체온과 붉은 피가 있다는 점. 그들이 살아 숨 쉬듯 나도 숨쉬고, 그들이 마시는 물과 공기를 나도 나누어 마시고 있다. 살아가면서 점점 공감대도 늘어났지만, 은근히 내 자리, 한국인의 자리는 어디지? 하고 주위를 살펴보게 된다. 그러나 없다. 그 어느 곳에도 한국인을 위한 문화지역이 없다. 있다면 어설프지만 한국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뿐이다. 주류사회에 끼어들어가 영역을 넓히는 일이 어디 꼭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갖추어진 형식이나 힘이 있어야만 이루어지는 것일까? 개개인의 작은 목소리로 이루어낼 수 있는 일도 있지 않을까? 아니 그것이 더 힘을 발할 수 도 있고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이곳으로 옮겨 앉은 초기, 벌써 4년 가까이 지난 일이지만 <여기 한국 사람 있소> 이후 나의 생각과 이곳 사회를 보는 시선이 많이 달라졌다. 그 때 나는 중국인들 99% 속에서 1%로 미운오리새끼처럼 다니던 ESL에서 알게 된 한국인의 위상이 어떤가를 알기 시작했다. 그때 메니저가 생색을 내듯 알려준 정보가 근처에 있는 한국사람들의 노래 모임이었다. 한국말로 해달라는 목소리를 수 차례 낸 댓가였다. 막상 가보니 노인들만의 모임이었다. 삼십 명 가까운 노인들이 소싯적에 부른 노래, 학교 다니던 시절에 배웠던 명곡들을 부르며 손뼉치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칸막이로 적당히 막은 교실의 옆 칸에서 중국인들이 요리실습을 하며 소란스러웠다. 그 장소가 중국인들이 쓰는 방을 잠시 빌려서 한 주에 한 번씩 오후시간만 사용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 결코 유쾌하지 않다. 그 건물 내에 중국인들이 차지하는 장소는 넓고, 매일 사용되었다. 그때 노래강사 이씨가 나에게 하는 말이 지금도 귓가에 맴돈다. “어떻게 그렇게 똑똑한 분이 있나싶어 한번 꼭 보고 싶었어요. 고마워서요.” 이게 어인 말인가? 내가 똑똑하다니? 고맙다니?
어느 날, 노래강사 이씨에게 메니저로 부터 온 전화, 한국 사람 한 명 소개하겠다고 하더라는 것. 그게 바로 나였다. 내가 ‘전달사항을 영어로 말해주고 만약 중국어로 한다면 한국어로도 해 달라’고 걸었던 딴지가 유일하게 내는 한국 사람의 목소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드물게 목소리를 낸 한국 사람이 되었다.
내가 보기엔 영어를 가르칠 만큼의 실력이 되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교사 자리에 앉아있더라고 이야기 했더니 맞다고 맞장구 치면서 그보다 실력이 좋은 한국교사가 몇 번 부임해온 일이 있긴 한데 오래 견디지를 못하고 떠나버렸다고 한다. 하다못해 그 건물의 청소부조차도 한국 사람은 발 붙일 수가 없다고 했다. 중국사람들이 꽉 끼고 있어서 받아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어쩌다 비집고 들어간다 해도 못 견딘다는 것이다. 수강생으로 오는 한국사람들도 나처럼 99%의 중국인들 속에 파묻혀 눈치만 보다가 슬며시 사라져버린다고 한다.
알고보니 그 건물이 내가 다니던 ESL에서 관리하는 건물로, 워낙 한국사람이 약세(弱勢)이다보니 본관의 방을 배정해주지 않고 중국인들이 쓰는 방 한 귀퉁이를 그것도 일주일에 하루, 오후의 시간을 내준 것. 그곳에서 한국이민노인들의 노래시간이 운영되고 있었던 것. 본관에도 ESL만이 아니라 노래나 춤을 배우는 청소년 그룹도 있고 기타 성인 강좌 교실이 여럿 있는 것을 보아 알고 있는 터였다. 이씨는 마침 그 무렵이 그 해에 곧 발표될 새해 예산과 새해 프로그램이 지금 심사 중이니 제발 한국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주면 본관의 방 하나를 차지할 수 있어 더부살이 신세를 면할 수 있다고 발을 동동. 한국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는 다 똑똑하고 거기 모이는 중국사람들보다 교육수준도 경제 환경도 좋은데 협력도 안 된다는 것. 거기 와서도 어쩌다 만나게 되는 한 두 명의 한국 사람끼리 서로 고누고 탐색만 하면서 뭉쳐지지 않고 물과 기름처럼 떠돌다가 둘 다 사라져버린다는 것. 듣기 싫지만 자주 듣는 비슷한 한국 사람들에 대한 평이다.
그 후로도 나는 그 ESL에 다니면서 일부러 가끔 메니저 방에도 가고, 사무실에도 들려 한국 사람들은 요가를 매우 좋아하는데 왜 한국 사람을 위한 요가프로그램이 없느냐고, 한국 사람들은 노래를 좋아해서 한국에선 가라오께가 번창하지만 이곳엔 그런 것이 없으니 한국 사람들을 위한 가요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고, 한국의 고전무용이 참 아름다운데 장소를 마련해주면 좋겠다는 등, 약발 안서는 줄 알면서 그냥 말했다. 익명으로 문의전화도 했다. 그리고 한국에 3개월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한국에 다녀왔을 때, 기다렸다는 듯이 이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드디어 본관의 조그만 방 한 개를 차지하여 매주 요가교실을 열기로 했으니 나오라는 것. 목소리 내주어서 고맙다고. 반가웠다. 하지만, 내 목소리로 그렇게 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도움은 된 것을 분명하다. 사실 나는 노래의 '노'자도 부르지 못한다. 그 작은 일이 도움이 될 정도라면 우리가 조금만 신경 써도 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을까?
그때부터 나는 한국 사람들이 어느 곳에 있든 있는 자리에서 분명한 자기 목소리를 내주는 것만으로도 이민사회에서 자리 잡는 것이 훨씬 수월하리라는 생각은 늘 하면서 작은 꿈을 꾸고 있다. 꼭 한국 사람들이 몰려 사는 지역의 수퍼마켓에 가야만 한국어 신문들을 볼 수 있는 현실을 보면서 토론토 시내에 있는 도서관들이나 커뮤니티 센터 중에서 최소한 몇 군데라도 한국 책과 한국 신문이 비치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도심의 다른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몇 군데 도서관에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을 기증할 테니 한국어 서가(書架) 한 개만이라도 만들어 줄 수 없느냐고 요청해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기증을 받아도 대개는 폐기처분한다는 것이다. 물론 사용자도 적고 목록작업을 하는 관리자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토론토 시내에서 유일하게 한국 책이 있다는 노쓰욕의 도서관에도 가봤다. 중국책이 줄줄이 가장 많았다. 그 틈에 한국어 책 서가는 고작 나의 키 높이 정도에 너비 1미터 정도 되는 한 개, 헐렁하게 꽂혀있는 책들도 그렇고 그런 것 들 뿐이었다. 내 책이라도 가져다 채워 넣고 싶다. 최소한 몇 군데라도 한국어 책이나 신문이 꽂혀있는 도서관이나 커뮤니티, 전철역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늘 꿈꾼다. 그래서 주간 ‘부동산 캐나다’에게도 토론토대학의 동아시아도서관 한국학 도서관에 보내라고 권하고 또 주요 지하철역의 좌대에 꽂으라고 성화를 대는 것이다.
물론 한국 사람들이 적어서 어려운 일이긴 하다. 비록 적은 숫자이더라도 그곳에 살거나 사용하는 한국인들이 목소리를 내면 최소한의 한국 책이나 한국 신문이 비치될 수 있지 않을까. 하다못해 주요 지하철역의 신문 좌판대에라도 한국 신문이 꽂혀있기를 늘 바란다. 문제는 숫자가 적은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의 의식이 문제다.
토론토 시내를 다니다보면 한국인들이 드나드는 곳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조용하다. 한국 사람들끼리만 트작타작 불협화음을 내지 말고, 토론토 사회 전체를 향해 목소리를 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것이 곧 주류사회를 향한 발걸음이니까.
아직도 이민 초자라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이민 선배들이 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꾼다. 나의 꿈은 과연 헛된 것일까?
|
'권천학의 수필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망(輕妄)이 송곳 -청정심보살님이야기 (0) | 2013.03.14 |
---|---|
여기 한국사람 있소! * 권 천 학 (0) | 2013.03.12 |
금 간 요강단지 조심해서 다루자 (0) | 2013.03.03 |
성대결-여성의 날에 즈음하여 (0) | 2013.02.28 |
나는 애주가다 * 權 千 鶴 (0) | 2013.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