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나는 애주가다 * 權 千 鶴

천마리학 2013. 2. 23. 14:35

 

 

나는 애주가다 * 權 千 鶴

 

 

헬스데이 뉴스가 소아 청소년의학회보에서 발표한 내용을 보도한 기사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일찍 술맛을 보이지 말라는 것. 미국의 비영리연구기관인 RTI에서 초등학교 3학년, 이곳 캐나다의 그레이드 3에 해당하는 아이들 어머니들의 생각을 조사했는데, 26%가 어릴 때 술의 냄새나 맛을 보게 하면 커서 싫어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고, 40%가 술에 대한 호기심만 커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에 대하여 연구책임자인 사회생태학자 크리스틴 잭슨은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하며 오히려 어린 시절 술 맛을 일찍 본 아이들이 청소년기에 잘못된 음주습관을 갖게 된다고 했다.

 

 

 

 

 

 

나는 주당도 아니고, -그러나 애주가다.- 애주가일 뿐, 술에 대한 전문가는 아니므로 그 이상의 전문적인 이야기는 덮어두고 나와 관련된 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추어보려고 한다.

가끔 모임의 자리에서 서로들 주력(酒歷)을 과시하는 경우가 있다. 마치 남자들이 군대갔다온 경력을 자랑삼아 내놓는 거나 학번을 들이대며 선후를 따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청소년기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둥, 두주불사한다는 둥, 청탁(淸濁)를 가리지 않는다는 둥, 폭탄주를 수도 없이 마셨다는 둥

 

언젠가 글쟁이들끼리 모인 자리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한 친구가 사춘기 때 친구들과 소주병으로 나팔을 불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누군가는 열한 살 때 아버지의 술심부름을 다녀오던 중 홀짝홀짝 마신 것이 표가 날 정도여서 물을 채웠다가 된통 야단맞은 이야기도 했다. 또 누군가는 외갓집에 갖다 주라는 콩 두말을 도중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돈 받고 팔아서 그 돈으로 술을 마시고는 몇 년 동안 외갓집 출입을 못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런 저런 술과 관계된 이야기들이 술상보다 더 걸게 차려지는 자리에서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이유식이 술이었어!”

모두들 박장대소로 이야기 끈을 당기면서도 허풍쯤으로 여겼다. 여자인데다 도도한 새침때기로 통하면서 한입담 하던 터라 농담으로 각색한 이야기쯤으로 치부했다.

우리 할아버지께선 끼니때마다 젖도 안 뗀 나를 무릎위에 앉혀놓고 막걸리에 밥 말아 먹이셨으니까 주력으로 말하자면 한 살도 채 안 돼서 부터지. 더 빠른 사람 있어? 거기다 난 양조장집 딸이라는 거 다 알잖아.”

이유식이 술이었다는 데는 더 말해 무엇 할까. 이쯤에선 모두 두 손 들고 만다. 나는 부모님 품에 안겨 고향인 안동을 떠나 김제로 이주했고 그 후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할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이야기만은 사실이다. 부모님과 고모와 삼촌들이 그 증인들이다.

 

 

 

 

 

7형제 중의 7째셨던 할아버지께서는 가장 장수하셨고, 가장 칼칼한 성품에 특별한 식습관을 갖고 계셨다 한다. 그것이 바로 술에 밥 말아 자시는 것이다. 우리 집에는 전통적으로 만들어먹던 가용주(家用酒)가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그 가용주에 밥을 말아 드시기 때문에 일 년 내내 떨어지지 않았다는데, 할머니가 직접 누룩을 디뎌 빚었다는 제조과정을 들어보면 지금의 막걸리 비슷하면서 약간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것인 듯하다. 할아버지께서는 하늘 아래 첫 손녀인 나를 무릎에 앉혀놓으시고 당신께서 자시는 술에 만 밥을 떠먹이면 오물오물 잘도 받아먹었다니 어쩌면 그때부터 나의 술 체질이 가꾸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세월이 지나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아버지는 익산시에서 양조장을 경영하셨으니 양조장집 딸이기도 하다. 술밥 찌는 커다란 통이며, 우리들이 숨바꼭질 하다가 잘못 숨어들어가 빠지는 날이면 나올 수 없을 만큼 큰 독들이 수십 개 늘어서 있던 창고하며, 이삼십 명의 술 배달꾼 아저씨들, 술지게미를 받으려고 줄을 서던 동네사람들등등 추억이 많다. 그러나 내가 명실 공히 애주가가 된 것은 훨씬 뒤, 그러니까 삼십대를 넘어서면서다. 시를 먼저 쓰기 시작했는지, 삶에 대한 사색을 먼저 시작했는지 구별할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발효에 대해서, ‘소리에 대해서, ‘냄새에 대해서 화두 삼고 사고를 깊여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소리 모으기’ ‘향기 모으기컬렉션이 시작되었다. 소리, 냄새, 모두가 만져지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으니 추상적일 수밖에 없다. 실체 없는 그것들을 상징하기 위해서 ’ ‘’ ‘커피와 향수모으기가 나의 특별취미가 되었다. 그 시절의 나의 그런 행위는 언제나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실현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런 나는 으레 별난 아이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시절의 잔재들이 조금 남아있기도 하고, 기억 속에 간직된 추억들도 오롯하다. 어떻튼,

 

[죽어 소 되리, 소 되어 장고 되리, 장고 되어 소리로 남으리]

 

그 시절, ‘한 냄비의 찌개꺼리도 못되는 시를 쓰면서 나는 소를 생각한다.’는 설명을 곁들여가며 내 사유(思惟)의 일면을 나타낸 첫 시집 발문의 한 부분이다. 그러니 시 쓰기와 사색은 닭과 달걀 같은 인식의 고리로 존재하며 나의 의식세계를 발효시켜나갔다.

발효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을 빠트릴 순 없었다. 고운 빛깔, 향기로움이 되려면 고통을 견뎌내는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숙성되어야하고 발효되어야 한다는 것. 삶이든 문학이든, 그리고 사람이든. 사고의 영역은 곧 무색무취의 경지가 최고라는 것. 그 경지에 이르려면 끝없는 숙련과 숙성,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많은 밤의 어둠을 살라먹어야 했다. 그래서,

 

술을 좋아했다. 아니 존경했다. 술 선물을 받으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선물 받은 술병들을 진열해놓고 눈으로만 즐기다가 나중에 모두 휘발해버려 친구 앞에 빈병을 따랐던 일도 있다. 단지 술이 좋아서, 취할 수 있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술의 탄생과정에 대한 경이(驚異) 때문이다. 삭히고 삭혀서 잡티도 잡냄새도 날려버리고 말갛게 톡 쏘는 향만을 간직하게 된 술, 어찌 경이롭지 않을까.

 

[쉰 서너 살 쯤엔

서리에도 지지 않는 시 한 편 갖고 싶어요

그리고나서

또 다시 긴 꿈을 꾸며

당신의 꽃밭에서 목숨 곱게 용수 내리고 싶어요]

 

 

나의 시 꽃의 자서전마지막 연이다. 처음엔 마지막 줄이 당신의 꽃밭에서 곱게 곱게 목숨 내리고 싶어요였다. 그런데 많은 독자들이 이 대목을 죽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목숨을 내리다는 바로 술의 제조과정에서 발췌한 셈인데, 나의 의도와는 반대로 죽음으로 연상 되는 모양이었다. ‘곱게곱게가 받쳐주듯 목숨을 더욱 곱게 빚어 내리고 싶다는 의도를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목숨 곱게 용수 내리고 싶어요로 바꿨다. 어떻튼,

 

 

한 잔의 술, 한 모금의 술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지대했다. 마시기 전에 색깔부터 감상하고, 천천히 음미하며 아껴아껴 마셨다. 물론 친구들과 어울릴 때는 비비자! 하면서 체온을 높여가며 수다도 떨고 마음 나눌 수 있어 좋지만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애주가인 나에게는 차선(次善)의 경우이다.

 

나의 최선(最善)의 끽주(喫酒)는 혼자 마시는 술이다. 소주회사의 조사에 따르면 셋째 번 째 잔의 술맛이 가장 좋다고 하지만 나는 첫잔 첫 모금이 가장 좋다. 우선 첫잔을 따를 때 술병에서 나는 퐁퐁퐁, 그 맑고 경쾌한 소리가 좋다. 이름하여 술새. 그 술새 소리를 들으며 시냇물 줄기가 내 몸으로 흘러들어온다. 그리고 잔을 들었을 때 훅~ 코끝을 스치는 향기, 그야말로 따봉! 드디어 한 모금 들이킬 때 삼분의 이쯤 들이키게 되는데, 짜르르, 그 알싸한 맛이라니. 도수 있는 바닷물이 위장으로 들어가 파도치는 것과 같다.

 

첫잔 첫 모금, 죽인다! 나는 그렇게 혼자 술을 즐겼다. 그러나 이제 친구들도 멀어졌고, 술과 멀어질 나이도 되었다. 주로 포도주를 즐기게 되었다. 그래도 여전히 술을 선물로 받으면 기분이 좋다. 역시 나는 여전히 애주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