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허물벗기 * 權 千 鶴

천마리학 2013. 2. 15. 10:13

 

 

 

허물벗기 * 權 千 鶴

 

 

계사(癸巳), 뱀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뱀의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다 기분 좋게 받아들이지만은 않을 것 같다. 나도 가장 싫어하는 동물이 뱀이다. 두렵고 징그러워서다. 모양 때문인지 아니면 정신세계 속에 잠재되어있는 관념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끔찍하게 싫다.

 

오래전 이불 호청을 꿰매고 있었는데 이웃집 꼬마가 이불 위로 뱀을 던져 혼절한 일이 있다. 사람들이 달려오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무로 만든 장난감이었다. 장난감인줄 알면서도 다시 한 번 소스라쳤다.

 

육이오 무렵, 우리동네 부잣집 동렬이네 집에 수시로 뱀이 나타난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새벽녘 부엌어멈이 밥을 지우러 나와 솥뚜껑 위에 엎어놓은 바가지를 들추면 그 안에 뱀이 똬리 틀고 있고, 물항아리 바닥에도 사리고 있다는 것, 동렬이네는 그렇게 망해갔고, 결국 동네를 떠나 종무소식(終無消息)이 되었다.

 

 

토론토에 와 살게 되면서 이곳엔 뱀이 없다는 것이 참 좋았다. 넓은 공원, 보기만 해도 딩굴고 싶어지는 잔디, 무성한 풀밭과 자연…… 그러나 맘 놓고 뛰어들지 못했다. 행여 뱀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뱀이 있다면 그림의 떡일 뿐이니까. 그만큼 뱀이 무섭다. 캐네디언 친구로부터 캐나다에는 뱀이 없다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 비로소 천국이 되었다. 캐다나는 정말 살기 좋아! 하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그런데 작년 1023, Green Bricks Park에 갔다가 숲길에서 뜻밖의 뱀을 보았다. 대가리는 풀숲에 박고 몸뚱이와 꼬리가 길의 폭을 반 너머 가로 질러 있는 늘어진 형상이었는데, 움직이지 않고 있으나 죽지는 않은 상태였다. 등허리에 길게 잿빛 몸둥이에 노란 색 줄 무늬가 선명했다. 기함하다시피 물러섰다. 지나는 사람들이 들여다보기도 하고 집적대는 것 같았는데 소름을 돋운 채 그 자리를 도망치고 말았다. 도망치면서도 어쩌면 동면(冬眠)시기를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되었다. 그날 이후 캐나다의 공원은 나에게 다시 그림의 떡이 되어버렸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원죄(原罪)의 상징으로 등장한 것을 비롯하여 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이미지로 전설이나 신화, 소설, 동화 등 곳곳에 등장한다. 사악함, 간교, 유혹, 배신, 부정적 의미가 있는가하면 그 단계를 높여 지혜, 불사(不死), 재생(再生) 등 긍정적 상징으로 풀이하고 있다. 어찌됐건 뱀은 유난히 호불호(好不好)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특이한 동물이다. 거기다 일 억 육 천 만 년 전에 지구상에 출현했으니 십이지에 등장한 열 두 동물 중에서 가장 오래 된 동물이기도 하다호불호를 떠나서 십이지(十二支)6번째 동물로 등장시킨 것을 보면 뱀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의미가 분명 있을 것이다. 뱀의 해로 치는 올해의 10(十干)의 마지막을 차지하는 계()는 수()의 성질로 검은 색을 뜻하므로 '검은 뱀' 또는 물뱀의 해라고 한다. 물뱀은 독이 없는 뱀이다.

 

 

 

검은 뱀하니 작년여름 여행 중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지대인 세인트 베르나르드 산악지대에서 나를 질겁시켰던 사주(蛇酒)가 떠오른다. 그 지방 사람들이 보여준 투명한 액체의 술병 바닥엔 검은 뱀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 동양권에서만 뱀술을 담가먹는 줄 알았는데, 어느 곳이든 사람은 다 같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기도 했다.

 

 

역사나 전설,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제쳐두고 개인적인 사례만을 들어 이야기하는 것은 좋건 싫건 뱀의 해인데다 우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뱀의 존재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해보려는 의도이다.

 

()도 필요하고 부정(否定)도 의미가 있음이 우리의 삶이다. 우리에게 뱀이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허물벗기라고 생각한다치열하게 작품생활에 몰두하면서 그 고통과 함께 뱀의 생애를 빗대는 사유를 하기도 했었다. 발이나 날개가 달린 짐승과 달리 어둡고 음습한 곳을 온몸으로 기며 목숨을 이끌어야하는 것이 뱀의 숙명, 그것을 천형(天刑)이라고 비유했. 글쓰기작업에서만이 아니라 인간 본래의 본성 중에 도사리고 있는 악마성, 굳이 성선설과 성악설을 끌어다 대지 않아도 우리는 쉽게 우리들 속에 자리잡고 있는 악마성에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런 인간 속에 내재되어 있는 한 성향과 가장 흡사한 동물이 아닌가 한다. 아니 이것도 인간의 생각일 뿐이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롬(Gollum)과 같은 존재. 반지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에서 인간 속 내재된 악마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래서 가장 인간다운 등장인물이 골룸이다. 끝없는 욕망에 휘둘리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 늘 위태로운 스탭을 밟아야 하는.  

 

옛 어른들이 십간 십이지의 열 두 동물 속에 뱀을 포함 시킨 것이 바로 그런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선인들의 혜안에 놀라며 감사할 뿐이다. 어떻튼,

 

선과 악의 동행, 욕망과 자선의 공존, 성취의 실패의 동기 등. 그리하여 가장 인간적인 모습.

허물벗기는 죄에 대한 벌()인 동시에 회개(悔改)의 의미를 동시에 포함한다. 어느 한쪽을 완전히 선택하고 실행하기엔 인간의 두뇌구조가 허락하지 않는다. 그 경지를 초월하면 성인(聖人)이거나, 현자(賢者)이거나, 신()의 경지다. 그제야 불사신, 수호신으로서의 상징이 성립된다.

이무기! 용이 되기 직전의 뱀. 

천년을 살아야, 살면서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허물을 벗어야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하여 뱀은 허물을 벗고 또 벗는다. 

바로 그것이다. 수평의 삶을 수직의 삶으로, 음지의 삶을 양지의 삶으로, 얽매임을 자유로, 낮은 곳에서 높은곳으로. 그것이 뱀의 생애이고 우리에게 주는 절대적 교훈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늘 갈라진 혀와 굳어진 사고(思考)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승천하기 위해서 천년을 음습한 굴속에서 살아야하는 하듯,  끝없이 탈바꿈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독사이거나 이무기에 불과하다. 어제보다 내일이 달라질 수 있도록 허물벗기를 끝없이 시도해야 한다. 그것이 계사년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