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여성대통령과 비혼(非婚) * 權 千 鶴

천마리학 2013. 2. 12. 08:10

 

 

 

 

여성대통령과 비혼(非婚) * 權 千 鶴

 

 

한국의 한 문학단체로부터 올 8월에 있을 ‘2013년 만해축전에 참여할 수 있는 캐나다의 문인을 추천해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문학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발표할 수 있는 시인, 소설가, 평론가를 추천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여성대통령 당선의 의미를 새긴다는 요지가 취지 속에 들어있었다. 여성대통령의 당선이 우리에게 주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회 분위기를 다방면, 다각도로 환기시키고 있음을 실감하며 지금 그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오늘은 마침 박근혜 당선자의 결혼청첩장이 눈길을 끌었다. 신랑은 대한민국’, 15년 열애 끝에 225일에 결혼한다는 내용이다. 기대와 희망을 갖는 국민의 마음을 위트 있게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8대 대통령으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여러 가지 기록성 화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다투표(75%이상), 최다득표(51.6%), 세계 최초의 부녀대통령, 독재자의 딸, 세계 최초의 비혼 여성대통령, 등등.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여성 대통령이라는 부각이 아닌가 싶다.

이번 선거에서는 남녀 유권자들이 많이 참여를 하기도 했지만 특히 여성들, 여성들 중에서도 산전수전 겪으며 삶의 질곡을 거쳐 이제는 안정을 추구하는 5, 60대 여성들의 참여도가 높았던 점을 단순히 국가안보차원으로만 보지 않는다. 선거전의 이슈가 다각적인 흥미를 유발시켰고 어느 면에서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세상으로부터 위로받지 못하던 여성이 이젠 세상을 바꾸어나갈 힘을 보여주었다고도 할 수 있다. 충분히 대한민국의 여성들이 흥분할 만 하다. 문학계에서도 여성대통령 당선에 의미를 둔 발제를 하는 것을 보면 굳이 여성사회에서만 각오를 다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새롭게 환기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 와중에 ‘72세 비혼 애순씨라는 글이 클릭은 유도했다. 비서관, 공무원, 잡지사 등등을 거쳐 비혼, 미혼여성을 위한 모임을 만들어 이끌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애순씨의 이야기 였다.

비혼이란 말이 이렇게 당당하게 사용되다니,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선거운동 당시에 화제가 된 생식기발언도 여성에 대한 편견일 수 있다. 당선 후 비혼(非婚)대통령이란 말이 부각되면서 그 바람의 여파로 비혼이란 말도 당당해진 셈이다. 미혼(未婚)이든 비혼이든 그동안 혼자 사는 여성들이 단지 혼자 산다는 그 이유하나 만으로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차별받았으므로 한 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미혼과 비혼은 분명 다르다. 미혼은 장차 결혼 할 것을 전제로 하면서 현재 결혼하지 않은 상태이고, 비혼은 결혼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다 같이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같지만 미혼은 언젠가 결혼할 사람이고, 비혼은 끝까지 결혼 안하는 사람이다.

비혼에 속하는 사람들 중에는 처음부터 독신주의자도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결혼을 못한 경우도 있다. 이유야 어떻튼 그런 여성들이 홀로 사회인으로서의 정당한 대우를 받고 살기엔 사회분위기가 너무 인색하고 편파적이었다. 남편이 먼저 죽어 혼자된 여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미망인(未亡人)’이라고, ‘따라죽지 못한 죄인이라는 뜻으로 부르는 사회였으니까.

미망인, 남편 따라 생목숨 끊으라는 권유가 담겼다. 부인이 먼저 죽은 남편에겐 사용하지 않는다. 일부종사(一夫從事), 칠거지악(七去之惡)이니 하는 말들과 같은 계열의 표현으로 지나친 남녀차별의식이다. 열녀(烈女)라는 말 또한 마찬가지다. 열남(烈男) 혹은 열부(烈夫)라는 말은 없다. 열녀문(烈女門)은 칭찬이 아니라 강요이고 압박이다.

서양의 정조대(貞操帶)도 마찬가지다. 남성용 정조대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다. 돈 주앙(Don Juan)이나 카사노바 그리고 플레이 보이는 오히려 떳떳하다. 여성용 코르셋도 결국 그런 사회적 악습 내지는 편견에 세뇌당한 구시대의 비정한 여성문화의 하나인 셈이다.

내가 사회활동은 하던 한 때 미망인이란 말을 사용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인 일도 있었으므로 감회가 깊을 수밖에 없다.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마을에 처음으로 시내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어른들의 장보기가 편리해진 것이 먼저였겠지만, 기차통학으로 학교에 다니던 우리들에게도 편리했다. 기차보다 왕래 횟수가 더 많고 첫 버스가 첫 기차보다 일렀다. 오후 6시가 마지막 기차여서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역으로 가야했는데 밤 11시까지 매시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다니니 여간 편리한 게 아니었다.

 

그 시절의 어느 날 새벽이었다. 시험기간 동안이라서 첫 버스를 탔다. 버스가 학교앞 정류장에서 출발하여 마을의 끝자락 느슨한 구비의 100m 쯤 되는 전방에 땅개아줌마네 집이 보였다. 이른 새벽, 요강단지를 든 채 마당을 가로지른 땅개아줌마가 멀리 오는 버스를 보고 머뭇거리는 듯 하더니 급히 길을 건너 맞은편 텃밭으로 가는 것이 버스의 앞 유리를 통해서 보였다. 그때였다.

, , , 쌍, 개같은 년, 씨팔년, 재수 옴 붙었네……

버스 기사가 빵빵대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퍼붓는 것이었다. 크락션 소리에 힐끗, 무안한 몸짓으로 텃밭고랑에 파묻혀버린 땅개아줌마를 향해서 분을 못이긴 버스기사는 창문을 열고 고래고래 욕을 퍼부으며 삿대질까지 해대었다. 땅개아줌마보다 버스 안에 있던 우리가 더 으아해 하며 구경 반 놀라움 반이었다. 여자가 처음으로 버스 앞을 가로 질러갔으니 그날 재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첫 번째로 지나가는 행인이 왜 남자이면 괜찮고 여자이면 안 될까. 그렇게 욕 폭격을 맞을 만큼 잘못된 일인가. 저사람 부인은 여자가 아닌가. 딸도 여자일 텐데.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유가 궁금하다기보다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 중에 사고로 일찍 남편을 여인 친구가 있다. 그 자체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인데, 정작 견디기 더 어려운 것은 주위의 시선이었다. ‘팔자 세서 서방 잡아먹었다는 말이 뼛속에 사무쳤다고 했다. 결국 아는 사람 없는 시골로 이사를 가버렸다. 단풍 고운 가을이면 죄 없는 중죄인(重罪人)이 되어 세상을 등지듯 살아야 했던 그 친구를 찾아가곤 했는데, 세월이 갈수록 점점 집 주위의 단풍처럼 곱게 익어가는 모습을 보며 안도(安堵)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불편한 안도였다. 가슴 깊이 박힌 상처로 뒤늦은 청혼조차도 모두 거절해버리는 모습을 보면서 왜 그렇게 살아야하는지, 결코 마음이 편안 할 수가 없었다. ‘여자라는 멍에가 인생을 묵살해버린 부조리. 그런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비혼이란 말이 당당한 사회적 용어가 되다니 혁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대통령. ‘대한민국을 신랑으로 받아들인 박근혜 대통령. , 이제 시작이다. 못하는 일 없는 어머니의 손길 같은 여성의 힘으로 이 나라의 구석구석 잘 매만져서 박수 받는 대통령, 독재자의 딸이라는 오명(汚名)도 벗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대통령이 되어주기를, 우리도 좋은 대통령을 가진 행복한 국민이 되게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