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비비자!

천마리학 2012. 12. 12. 00:21

 

 

 

비비자! * 권 천 학

 

 

언니, 군불 땐 황토방에서 언니랑 뒹굴고 싶어

달랑 한 줄, 고국의 후배시인으로부터 온 메일이다. 달랑 한 줄뿐이지만 긴 이야기가 담뿍 담겨 있어 읽는 순간 마음에 군불이 지펴지고 그리움이 온기(溫氣)로 퍼졌다.

 

날씨가 썰렁해셔서 찬물에 손 넣기가 꺼려지는 계절이다. 찬바람을 끌고 온 늦가을 뒤에 더 추운 눈보라의 겨울이 도사리고 있음을 예보한다. 가을을 따뜻하게 보내었으니 겨울도 더 따뜻하게 보낼 수 있으면 참 좋으련만.

 

얼마 전, 가족을 찾는 75세의 엄재우 할아버지의 기사가 떠올랐다. 10여 년 전 노숙 중 발견된 이후 이래저래 사회시설에 얹혀 지낸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이제 가족을 찾는 일이었다. ‘만나도 경제적 부담이 없다는 기사 속의 짤막한 몇 글자 속에 감추어진 세상 속 얼음같은 비밀이 서려있어 읽는 마음이 시렸다. 부양의 어려움으로 가족까지도 멀어져버리다니.

 

또 얼마 전 실종된 같은 나이의 오영국 할아버지를 찾는 가족들의 사연도 시리긴 마찬가지다. 버렸거나 버려졌거나, 양편 모두 이 겨울이 결코 따뜻할 수 없을 것이다. 체온으로 느끼는 추위보다 마음으로도 느끼는 체감온도가 더욱 견디기 어렵다. 하여, 이 겨울이 그분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에게 얼마나 혹독할 것인가.

 

가슴을 시리게 하는 일은 또 있다. 며칠 전(102), 소천(所天)하신 충현교회 김창인목사님(95)의 소식이다. 김목사님은 지난 6, 교회세습에 대하여 공개적으로 참회하셨던 분이다. 언젠가는 돌아가야 할 길, 누구라 막을 것인가. 아무리 하나님의 일꾼이었다 해도 하늘로 돌아가는 길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영전(靈前)에 세습 받은 자식인 김 모 목사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 나는 얼마 전 김목사님의 공개참회에 대해서, 그 실천의 용기에 대해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글을 썼기 때문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일이었다. 아무리 갈등을 빚는다 해도 아버지의 죽음 앞에 나서지 않는 자식을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썰렁함을 지나 얼음벌판에 서있는 기분이다.

 

지구는 온난화로 더워져 간다는데 이상하게도 사람과 사람사이는 차가워져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더워지는 지구도 걱정이고 차가워져가는 사람의 일도 걱정이다. 차제에 군불 땐 황토방에서 깊어가는 가을밤을 뒹구는 것이 얼마나 호사(豪奢)인가.

 

최신형 난방기구가 있어 공기는 데워줄 수 있어도 식은 마음을 데워 주지는 못한다. 마음을 데워주는 데는 서로의 마음을 비비는 수밖에 없다. 설거지를 마치고 나서 손을 비비듯, 차가움을 떨치는 일은 서로 비비는 일밖에 없다. 몸과 몸을, 마음과 마음을.

비비자!

엄마와 아기가 뺨을 비비듯.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몸을 비비듯.

 

한때 마음을 비비던 친구들 생각이 난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좋았던 그 시절, 어느 날 모임에서였다. 늘 하던 대로 모두 잔을 들었을 때 나는 비비자! 하고 돌출발언을 했다. 그냥 쨍! 하지 말고 잔을 비비자!로 하자. 더 정답고 더 섹시하잖아! 하면서 나의 잔을 마주 앉은 친구의 잔에 대고 비볐다. 밋밋하게 건배! 하면서 잔을 쨍 부딪치는 것보다 좀 색다르게 하고 싶어 한 제안이었다. 잠시 뜨악한 분위기을 지나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모두가 비비자! 외치며 서로의 잔을 비볐다. 하고 나니 기발하다고 모두들 좋아했다. 그 후로 우리는 비비자!로 통했다. 주위에서 따라 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 생각을 하니 슬며시 군불지핀 듯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렇다. 지금 우리는 마음을 비비는 일이 필요하다. 혼자 놀기 좋아진 세상이어서 더욱 그렇다. 컴퓨터를 비롯해서 온갖 최신 기기들이 만나지 않고도 되는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사람들을 각자의 방에 가두어버렸고, 각자의 세계를 만들어 혼자 놀게 방치해버렸다. 간섭받지 않는 서로의 방과 각자의 세계에서 몰입하고 침잠해버리다 보니 사람냄새 맡는 일이 드물어졌다. 혼자 놀고 혼자 중얼거리고마치 거대한 우울증의 날개가 덮쳐 올 것 같은 상황이다. 길거리에서도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풍경에 익숙해지기 전엔 혹시 정신이상자가 아닌가 되돌아보기도 했다. 과학이 발전시킨 생활기기(器機) 덕택에 소통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한편으로 용무와 사무적인 관계로 전락해버린 느낌이다. 사람 사이가 건조해졌다. 좋은 일 같으면서도 좋은 일만은 아니다. 시간절약이 되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더욱 바빠졌고 그로 인하여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다.

 

눈에서 멀면 마음도 멀어진다! 아무리 소통이 잘되어도 직접 만나 악수하고, 수다 떨고 하는 시간만큼 정겹지 못하다. 서로 만나서 실수도 하고 짜증을 덮어주기도 하면서 사람냄새를 맡아야 건강해지는데 그럴 기회를 기계로부터, 과학으로부터 박탈당해버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섬. 그 섬 사이의 길이 더욱 멀어졌다.

 

어렸을 적 겨울에 양 손등을 비비고 나서 코에 대면 나던 냄새가 생각난다. 닭똥냄새다. 야릇한 냄새를

친구들의코에 대는 장난을 치곤 했다. 처음엔 싫어서 도망쳤지만 차차 그 닭똥냄새가 구수해졌다. 사람냄가

바로 그렇다. 꼭 꽃향기처럼 향기로움만은 아니다. 더러는 다투기도 하고, 원망도 하면서 생기는 불협화음.

사람냄새. 사람과 사람이 비벼 내는 비릿한 그 냄새. 밥도 비빈 비빔밥이 맛있고, 국수도 비빔국수가 일

.

 

가족은 기쁨만이 아니라 어려움도 함께 견디며 이겨나가는 운명공동체여서 특별하다.

친구 사이도 마찬가지다. 살을 비비며 함께 하는 시간이 어떤 상황이든, 누구든 간에 결코 의미 없는 일이아

니다. ‘미운정 고운정이 바로 사람냄새이며 가족 이며 몸과 마음을 서로 비벼 생겨난 소중한 냄새다. 비록

어려울지라도, 밉더라도 떨어져나갈 생각 하지 말고 다투어가면서 곁에서 부대끼는 것이 훨씬 낫다. 찢어진

를 원상으로 돌리는 일은 매우 어렵다. 우선 당장 내키는 대로 떨어져나가면 다시는 건너지 못하는 강

이 되기도 하고 서로가 돌이킬 수 없는 섬이 되고 만다. 제아무리 난방기구가 뛰어나 이 겨울의 추위를 막아

준다한들, 사람사이의 온기만큼 구수할까. 겨울대비, 추위대비, 썰렁해지는 사람 사이의 강을 건너뛰는 가

장 좋은 방법이 바로 비비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는 무심히 던지는 건배사를 비비자!로 바꿔보기 권한다. 이제 파티의 시즌 연말이다.

파티나 조촐한 술자리에서 잔을 들 때, 친구끼리의 단출한 만남의 자리에서도, 매일 마주하는 가족들의

식탁에서도, 술잔만이 아니라 쥬스 잔이라도 마시기 전에 비비자! 하고 외치며 혹은 속삭이며 잔을 비벼보

시라.

처음엔 어색하지만 재미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것이 사람사이에 군불 때는 일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네가 있어서 좋아.’ ‘인생을 함께 해줘서 고마워!’, ‘우함께 있어서 참 좋아!’ ‘같이 있는

순간이 정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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