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칼럼-이제는 애국도 글로벌하게 * 권 천 학

천마리학 2012. 12. 5. 05:46

 

 

 

이제는 애국도 글로벌하게 * 권 천 학

 

 

얼마 전 모 일간지 지상에서 갑순이 마음은···’을 읽고 빙긋, 웃음이 나왔다. 아들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자동차회사에 취직이 되어 그 회사의 제품인 벤츠를 타게 되었는데, 자신은 아직도 애국의 심정으로 국산차를 타고 싶다면서 미안스럽다는 내용이었다. 영낙없이 오래전, 삼사십 년 정의 내 모습이었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애국에 대한 막연한 충성이랄까. 물론 시대적인 배경이 있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순진하고 고지식했다. 70년대의 일이다.

그 시절, 지금 이곳에선 원주민이라고 불린다는 이민선배들이 선견지명으로 서둘러 이민을 떠나올 때 나는 한국에서 참 열심히 애국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안호상박사의 국민 재건운동과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에 이어 한국의 가난과 무지 타파를 위한 갖가지 사회운동과 캠페인들이 줄줄이 줄줄이 이어지던 시절이었다.

멸공통일! 때려잡자 김일성! 간첩은 뿔이 서너 개쯤 나 있는 도깨비처럼 무섭게 생긴 것으로 생각하며 펼쳤던 반공운동과, 4H 클럽운동과 농촌계몽운동에 열심이었던 청소년기를 거쳐서,

문맹퇴치 운동으로 완주군의 산골 벽지에 한 선배와 뜻을 맞춰 중학교를 세우고 산골 청소년들을 긁어모아 두 세과목씩 겹치기로 가르치며 가시내 선생이라는 타이틀을 얻었던 시절을 거쳐,

근면운동과 허례허식 버리기, 물자절약하기, 새벽별 보기 캠페인등 새마을 운동을 거쳐서,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저축운동, 한글애용운동, 생활개선운동··· 참 운동도 많았고 캠페인도 많았다. 그것이 애국이라고 생각하며 열심이었다.

 

 

 

사회가 후진일수록, 미개일수록 운동과 캠페인도 많은 법. 이데올로기도 펄펄하다. 지금이야 정말 아득한 옛날이야기처럼 들리지만 돌아보면 가난에 목숨 줄이 당겨지던 그 시절엔 가난도 우리의 중요한 이데올로기였다. 그렇게 채색된 나의 젊은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도 이미 나는 풍요와 비만의 자본주의 시대의 한 가운데 서서 즐기기도 하지만 가끔 어질병을 앓기도 한다.

물자절약운동과 함께 벌인 것이 국산품애용이었다. 일본제품인 코끼리 표 전기밥솟이 날개를 달고 가난을 막 벗어날듯 말듯 한 한국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한국의 부엌에 들어앉기 시작했다. 싱가 미싱과 올림프스 카메라, 코닥 필름··· 등 외제 물품들이 판을 쳤고, 창원에 수출자유무역단지가 생기면서 일본인 기술자들이 들어왔고, 서양에서 선교사들이 들어왔다. 중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가르쳤다.

그 시절, 여성단체 활동을 하면서 열심히, 참으로 열심히 국산품 애국운동을 펼치던 중 마산에 사는 사촌 언니와 오빠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마산 창원 지역에서 운수사업을 주 사업으로 하면서 인근지역의 부자로 꼽히는 형부와, 처남남매 사이인 오빠는 서로 나누어가지듯 마산과 창원 지역의 시내버스와 통운회사를 독점 운영하며 창원공단에 또 다른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언니와 나는 나이 차이는 좀 있었지만 죽이 잘 맞았고, 형부는 처제인 나를 끔찍하게 생각해서 늘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다.

한번은 형부가 선박회사를 하는 친구에게 말해서 배를 대절하여 마산 앞바다로 나가 하루를 바다위에서 즐기게 해준 특별한 기억도 있다. 그 때 언니와, 언니를 통하여 안면이 있는 형부회사의 일본인 간부부인, 셋이서 배위에서 먹고 마시며 딩굴딩굴 초봄의 바다햇살을 즐기면서 선장아저씨가 갓 잡아 올려 떠주는 싱싱한 고등어회며 갈치회를 맛보았다. 그런데 문득, 초고추장을 찍어가는 일본인 간부부인의 옷소매가 눈에 띄었다. 겉옷을 겹겹이 껴입은 상태였다. 왜 내복을 입지 않고 겉옷을 겹겹이 껴입었느냐고 물었다. 그 부인 왈, 한 달쯤 후면 일본으로 장기 휴가를 가는데 그때 가서 일본제품을 사 입으려고 참고 있다는 것이었다. 국산품애용운동을 벌리고 있는 나로선 얄미운 소리였다. 역시 일본인이야 하고 생각했다. 가난한 사람도 아니고, 창원지구에 와있는 일본기술자 중에서도 책임자에 속하는, 형부의 신뢰를 받는 중견사원의 부인이다. 허영으로 코끼리표 전기밥솥에 혈안이 되어 내가 침을 튀기는 국산품애용을 비웃 듯 하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또 있다. 독일여자 선생님 한분. 우리나라에서 독일어를 가르치며 3년째 보내는 분으로 가끔 만나 차를 마시는 사이였다. 어느 날 내 사무실을 찾아온 그분과 커피를 마시는데 검은색 코트의 닳아진 소매부리가 두툼하게 감침질로 꿰매어진 것이 눈에 띄었다. 순간적인 일이라서 얼핏 시선을 돌리긴 했지만 자신의 소매부리에 내 눈길이 뜻있게 멈춰 선 것을 눈치 채고 자진해서 설명했다. 20년째 입는 외투라고. 역시 가슴을 쿵 쳤다. 내 주변의 사치와 낭비가 심한 사람들이 떠올라서였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노랭이에 속했다. 가난하니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애국자였기 때문이다. 후후후. 엑셀GS15년째 몰고 다니는 나를 사람들은 신기하게 보았고,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 호텔에 가면 호텔보이들로부터 정중히 따로 모셔지는 경험도 했다. 비까번쩍 큰 차를 몰면 입구로 들어가기 무섭게 달려와서 어서오십쇼, 내리십쇼, 키 주십쇼, 하고 귀찮게 굴지만 나처럼 작고 허름한 차를 몰고 가면 거들떠보지도 않고 한쪽으로 제쳐둔다. 알아서 주차도 하고 자유를 만끽하라는 대우이니 얼마나 정중한가. 금강제화의 여름 구두를 13년째 신은 기억도 있다. 그런 내가 그야말로 열심히 애국운동을 하면서 비싸도 우리제품을 써야 우리의 기업이 자란다고 열을 올렸다. 그러는 사이 차츰 세상이 달라졌고 우리나라의 형편도 달라졌다.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나의 열성적인 애국심 효과도 있다고 자부했다. 사회는 크고 작은 노력의 힘에 의해서 느리게 변화해나가는 법이니까.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연차적으로 이어지고 열사의 중동으로 나가서 땀을 흘리는 역군들과 서독의 광부와 간호사들···차츰 우리의 경제도 기반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쯤 되어가면서 나의 애국행동도 궤도수정이 필요해졌다. 돈 많은 사람들은 고급 외제품을 여보란듯이 사용하고, 나는 값이 비싸도 국산품을 사 쓰면서 줄기차게 애국의 깃발을 마음속에 꽂고 있는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애국운동을 벌리는 대개의 소비자들은 나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이다. 잘사는 사람들에겐 먹히지 않았다. 그 어려움을 겪어내느라 애를 많이 썼다. 나와 비슷한 형편의 소비자들에게 계속해서 희생바가지를 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벌여온 애국운동의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최소한 시대적 상황을 고려한다 해도 하루 빨리 비싸도 국산품을 사라는 독려는 멈춰야 한다. 그것이 곧 기업을 나약하게 만든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궤도수정의 필요성이 느껴지면서 나는 사자를 선생으로 모셨다. 새끼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뜨려서 기어 올라오는 강한 녀석들에게만 젖을 물려 기르는 엄마사자의 안목 높은 모성애. 돈 없는 소비자를 계몽할 것이 아니라 기업을 더욱 튼튼하게 커나갈 수 있도록 자극해야한다. 나는 사자엄마가 되기로 했다.

기업들로 하여금 안일하게 국내소비자에게 의존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코 묻은 돈을 노리는 학교 앞 구멍가게의 경제논리다. 결국 학교 앞 구멍가게 이상을 될 수 없다. 국외의 기업들과 겨루어서 이겨낼 수 있도록 경쟁력을 기르게 해야 한다. 취향에 맞는 상품을 골라서 구입할 수 있는 소비자의 권리가 기업을 자각시키고 힘을 기르게 된다. 땀에 쩐 소비자들의 주머니로 든든해질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난장에서 스스로 이겨 내고 클 수 있도록 독려해야한다.

드디어 세월이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은 국제시장에서 선두를 다투는 세계기업이 될 만큼 한국의 기업은 성장했다. 한국의 산업이 발달하고 한국의 기업이 세계굴지의 기업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오늘의 성과도 역시 그 시절 일찍이 내가 애국운동의 방법을 사자엄마의 양육방식으로 바꾼 덕이 눈꼽만큼이라도 있을 것이다. 호호호.

이제는 당연히 애국도 글로벌하게 해야 한다.

갑순이 마음은···’을 쓰신 그분께 먼저 세계굴지의 자동차회사에 입사한 아들의 취업을 박수로 축하드리며, 따라서 싼타페에 마음이 가있는 갑순이의 마음을 훌훌 벗어버리고 신나게 벤츠를 타고 다니시라고, 어려움 많은 타국생활하시며 아들 잘 기른 덕을 누리시라고, 그래도 여전히 마음이 찜찜하다시면 그것은 오히려 국제시장에서 선두를 다투는 우리의 기업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한마디! 하하하.

 

<2012411일 수><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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