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교회세습에 대한 공개참회

천마리학 2012. 11. 23. 07:29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 권 천 학

-김창인목사의 교회세습에 대한 공개참회

 

 

 

나이 들어가면서 자주 가슴이 찡해진다. 세상일이 모두 안쓰럽게만 보이고 매사 여리게 받아들여진다는 의미이다. 부딪치거나 듣는 일마다 다 가슴에 품어낼 것만 같고,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공감하는 일이 많아졌다. 이해한다는 것이 지식적으로나 사리분별 따져서 알게 되는 이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있겠구나 혹은 내가 그런 입장이라면 나도 그럴지 몰라, 아니 나도 그랬었지 하며 그 안쪽이 헤아려진다는 뜻이다. 모두 품어 안아지고, 모두 품어 안고 싶고, 또 모두 품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도 있다.

 

나는 젊어서부터 눈물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실제로 가족이나 친구나 지인 등 가까운 사람사이의 일로 울어본 일은 별로 기억에 없다. 어찌 보면 주변에 크게 울만한 일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리지 않다. 돌이켜보면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입거나 상처를 받으면 울기보다는 가슴속으로 새겼다. 눈물을 흘려야하는 슬픔보다는 분노, 배신감, 짜증, 아픔... 같은 감정으로 처리하느라고 스스로를 칼질하고, 마음을 두드리며 참아내는 쪽이었다.

 

나와 내 가족과 내 친구가 아닌 생판 모르는 사람의 일로 마음이 절절하게 아팠던 기억이 몇 번 있었다. 그중 하나가 혼불의 작가 최명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다. 나는 그때 일주일동안 마음속에 상장(喪章)을 달고 살았다. 너무나 아까웠다. 차라리 무능한 내가 대신 죽고 능력 있는 그가 좀 더 살아서 더 좋은 작품을 썼으면 좋을 것을, 하는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또 한 사람, 북한 김정일의 처조카인 이한영이 분당 아파트에서 남파간첩으로부터 살해되었을 때이다. 그의 사망 소식에 가슴이 먹먹한 슬픔을 느꼈었다. 국민들은, 물론 특히 약자의 의미를 띠는 국민들에겐 무서운 힘을 발휘하며 폭력적 대상인 국가 권력이나 제도 권력이 지켜줘야 할 개인의 목숨 하나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슬픔과 분노였다. 그의 경우는 어떤 일이 있어도 국가가 지켜줘야 할 사람이다. 마지막 보루로 믿고 찾아온 대한민국에서 서른여섯의 나이로 암살당하게 하다니, 신분을 위장해가며 얼굴성형까지 하고 살아야했던 그를 보호해주지 못하다니 과연 이런 나라를 믿고 살아야 하는가. 정말 먹먹한 슬픔이었다.

눈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내가 눈물 많은 것은 주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잘 나타난다. 특히 영화 ‘Love story’를 보고 일주일동안을 밤마다 흐느끼며 울었다. ‘눈물의 여왕이라고 일컫던 배우 전옥씨를 충분히 능가할 수 있다고 스스로 생각할 정도였다. 슬픈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감동적인 작품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기도 한다. 내 눈물의 한 가지 특징은 다른 사람들이 다 우는 장면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무덤덤한 장면이나 다른 사람들은 싱겁게 생각하는 부분에서도 난다는 점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가면 눈물도 마른다는데 나는 오히려 더 많아진 것을 느꼈다. 아마 오십대에 들어서면서부터가 아닌가 한다. 사소한 이야기를 듣다가도 걸핏하면 툭 터진 물주머니처럼 눈물이 핑 돌곤 한다. 그때부터 늙음이 스미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고, 철이 들기 시작한 것인지도 모른다.

잘 훈련된 군대의 행진을 봐도 눈물이 났다.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메스게임을 보면서도 눈물이 났다. 예의바른 젊은이를 봐도 눈물이 나고, 온갖 어려움을 견뎌 성공에 이른 사람을 보면 비록 그 성공이 사회적으로 크지 않다 해도 눈물이 난다. 예쁘지 않아도 싱싱한 젊은 아가씨의 쭉 뻗은 다리를 봐도 눈물이 나고 북한인민들의 카드섹션을 봐도 눈물이 난다.

잘 훈련된 군대가 되기까지, 예의바르게 되기까지, 성공에 이르기까지, 쭉 뻗은 다리가 되기까지,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되기까지 그들이 겪어야했을 뒤안길이 먼저 보이기 때문이다. 사소해 보이는 그것들이 결코 사소하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젊었을 때 흘렸던 눈물과 지금 나이 들어가며 흘리는 눈물은 다르다.

감동적인 예술작품들을 만나면 소름이 돋는 것이나 눈물이 많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살다보니 갈수록 눈물 나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것은 슬픈 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만큼 메말라 푸석해졌다는 의미가 더 크므로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어제 또 눈물을 흘렸다. 다른 사람이 흘리는 눈물을 보면서 마음이 찡 해져서 눈물이 났다. 충현교회의 설립자인 96세의 김창인 노() 목사가 자신의 교회세습에 대한 공개참회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였다.

 

 

지난 1997년 목회에서 물러나며 당시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아들을 신학공부 시킨 뒤 교회를 물려줬습니다. 이후...’

충현교회라면 서울에 있는 대형 교회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내 친구가 참 열심히 다니고 있는 교회이기도 하다. 1953년에 설립해서 키워온 교회를 1997년에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아들 김성관에게 신학공부를 시켜서 물려주었고, 그 후 교회운영과정에서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의견충돌이 생겼고, 김성관 목사가 피습당하는 사건이 일어나 부자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찬반기립 방식으로 진행하여 위임목사로 세운 것은 일생일대 최대의 실수요...’

 

 

 

이 점에 대해서 교회 측은 김성관목사가 적법하게 선출됐고 지난 4월 만 70세가 넘었지만 총회결의로 김목사의 당회장직이 내년 4월까지 연장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구체적으로야 엇갈린 내용이 있을지라도 일단 교회세습의 고리를 끊은 것은 대단한 용단이 아닐 수 없다.

말을 이어나가는 도중에 손수건을 꺼내어 안경 밑으로 주름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는 그 모습이 얼마나 애잔한지. 늙음도 서러운데, 당신이 설립해서 당신이 물려준 교회를 아들로부터 다시 뺏어내어야 하는 그 마음, 오죽하랴.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심적 육체적 고통을 겪으며 했을 통한의 기도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보지 않았어도 다 보이는 일이고 몰랐어도 다 알만한 일이다.

재능이나 기질을 물려받는 DNA의 세습, 직업과 기능의 세습, 정신적 세습과 물질적 세습, ()와 권력의 세습... 세습무(世襲巫)도 있고 기능 보유자도 있다. 북한의 권력세습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기업의 세습이나 권력의 세습에도 익숙하다. 문제는 성공과 실패의 양면 중 실패 쪽의 확률이 크다는 것이다. 교회의 세습은 권력이나 부의 문제를 떠나서도 종교원리에 어긋나는 일이 아닐까. 권력이나 부의 세습은 까딱하면 악의 씨앗이 되기 쉽다.

자신이 창업한 유한양행을 사회 환원함과 동시에 전 재산을 교육에 기증한 유일한 박사를 오래 기리는 이유도 다 그 때문이다. 이번 일이 대형 교회들의 세습만이 아니라 일반 사회의 잘못된 세습까지도 환기시켜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이다.

교회의 모든 직책에서 떠나라, 물러나라, 너는 임기연장을 꿈도 꾸지마라.’

아들을 향한 목사님의 목소리는 다소 떨리면서도 단호했다.

 

사람이 저지르기는 해도 잘못을 깨닫기는 어려운 일. 설령 깨달았다 해도 실천에 옮기기 더욱 어려운 일임을 잘 안다. 늘 스스로 반성하며 되풀이 하는 일이기도 하다.

얼핏 생각하면 애잔한 일이지만, 한 번 생각해보면 더 늦기 전에, 그 분 살아생전 깨달은 점에 대하여 축하드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실천에 옮기신 용감한 행동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