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국궁(國弓)을 만나다

천마리학 2012. 11. 23. 07:20

 

 

 

국궁(國弓)을 만나다 * 權 千 鶴

 

 

새벽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마음이 움칠거리긴 했으나 작정한 일을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식구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시각이라서 사부작사부작, 고양이걸음으로 23일간의 국궁캠프에 떠날 채비를 했다. 정리할 원고와 써야할 원고가 줄 늘어서 있다. 더구나 출판사로부터 이달 말까지 기한을 두고 독촉 받고 있어서 시간을 잘게 잘게 쪼개어 쓰고 있는 판이다. 다른 일이었다면 날씨 핑계로 가볍게 포기해버렸을 텐데 과감히 집을 나선 것은 국궁이기 때문이다. 하긴 국궁이 아니었으면 작정도 하지 않았겠지만.

국궁은 말로만 알고 있었을 뿐 실제로 경험해본 일은 없다. 백제테마 연작시집 [청동거울속의 하늘]을 작업할 때였으니까 삼십년이 넘었다. 그때 나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비롯한 한국사를 두루 섭렵하면서 구진천(仇珍川)의 활을 알게 되었다. 마음이 뜨거웠다. 국궁이 양궁보다는 훨씬 과학적인 지혜가 스며있으며 우리가 간직해야할 소중한 문화유산 중의 하나임을 알고,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기회가 닿지 않았다.

양궁은 이미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이 되어 우리나라 선수들, 특히 여자선수들이 발군의 실력으로 대한민국을 장식하는 경기종목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국궁은 제자리걸음에 오히려 퇴보되어가고 있음이 매우 애석한 일이다.

 

우리의 중요한 전통문화가 나라의 운명과 함께 수난의 역사를 겪어왔듯, 국궁도 마찬가지다. 일제(日帝)시대, 일본의 우리문화 말살정책으로 국권과 인권은 물론 수많은 문화가 짓밟혔다. 이름도 바뀌고 품격도 격하되었다. 창씨개명을 당하고, ‘창경궁창경원이 되었다. 우리의 전통 다례(茶禮)’가 일본식 표현인 다도(茶道)’로 바뀐 것처럼 원래 궁술이라고 불리던 것이 궁도로 바뀐 것도 그 중 하나다. 해방이 되어서도 지속되던 일제(日帝)의 잔재(殘滓)궁도를 되 바꾸어 이제 국궁(國弓)’이란 이름을 찾게 된 셈이니 뜻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름은 되찾았으나 사실상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일제치하에서 오락차원으로 격()을 떨어뜨린데 이어 올림픽에서 양궁이 득세하게 되었으니 자연스럽게 국궁이 위축되어버렸다, 이처럼 손실되거나 유실된 우리의 문화유산을 찾아내어 복원하고 지켜나가야 할 의무가 우리에겐 있다.

그런 국궁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놓칠 수 없다. 그동안 의사로부터 운동처방을 권유받으면서도 게을리 했던 운동도 하고, 나라사랑도 하는 셈이니 일거양득이 아닌가. 단순이 육체의 운동만이 아니라 애국운동까지 된다면 화살 하나에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격이다. 이곳 토론토에서라니 더더욱 반갑다. 기대에 부풀었다.

 

적중했다! 내가 쏜 화살이 과녁에 적중한 것이 아니라 다른 운동과 비교해서 은근과 끈기로 생각보다 효과적인 운동이 되고, 조상들의 지혜를 만나게 되리라는 기대, 그리하여 애국운동도 되리라는 생각이 적중했다.

활을 쥐는 법부터 화살을 얹고 쏘기까지 단순한 듯한 동작이면서도 약간 까다로웠고, 까다로운 것 같으면서도 원리를 이해하면 단순했다. 무엇이든 알기 전까지는 어려운 법이긴 하지만 국궁의 경우 작은 지혜와 방법들이 상당히 과학적이었다. 인체의 힘을 드러나지 않게 분산시키고 모으면서 고루 안배하는 동작이었다. 과격하지 않으면서 힘이 들어가고 부드러운 것 같으면서 강해야하는 동작과, 과녁을 향해 시력도 정신도 집중해야 명중이 되었다. 운동량 위주의 운동이라기보다는 힘의 역학과 정신적 자세 가다듬기를 섞어놓은 인체공학적인 운동이면서 정중동(靜中動) 바로 그것이었다. 거기다, 시작하기 전에 예()부터 갖추어야 하는 점 또한 좋았다.

시작하기 전에 두 손을 모으고 활 배우겠습니다하고 인사하면 많이 맞추십시오가 답례이다. 등산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잠시 비켜서서 서로 응원하고 배려하는 인사를 나누듯이, 활쏘기도 활을 쏘러 가는 사람과 활쏘기를 마친 사람, 또는 잘 쏘는 사람과 처음 배우기 시작한 사람 사이에 서로 지켜야 할 예의가 있고, 배려와 양보가 선행되어야 했다.

활쏘기 실기(實技)에 앞서 배우는 9계훈(誡訓). 정심정기(正心正己), 인애덕행(仁愛德行), 말의 의미와 함께 마음가짐부터 다스리게 함은 물론이고 잊혀져가던 사자성어(四字成語)까지 상기시켜주었다. 규칙이나 공격 또는 방어의 방법을 강조하는 일반적인 경기와는 달리 사람과 사람사이의 예절과 몸의 근기 다스림을 먼저 터득하게 하니, 운동의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요시하는 수양(修養)이었다. 몸 교육만이 아니라 마음교육, 몸 건강만이 아니라 마음건강도 함께 다질 수 있어 매우 교육적이었고, 특히 외국에서 뿌리내려야 하는 우리의 이민 2세 청소년들에게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인 우리나라의 정신적 유산과 나라의 소중함을 갖게 하고, 운동과 법도를 배우는 사이 어른을 공경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인성(人性)을 가꾸고 저절로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갖도록 도와주었다. 동시에 속도와 경쟁에 치어 사는 동안 무디어진 어른들에게도 다시 깨우치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명약(名藥)이었다. 손자가 아직 어려서 동참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나는 열 살 안팎부터 중장년들인 참가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았다. 팔꿈치의 힘이 아니라 어깨의 힘으로 시위를 당겨야한다는 설명을 들으면서도 처음엔 체력이 딸려서 시위가 덜 당겨졌다. 그러나 반복하는 동안 힘도 생기고 요령도 터득하며, 스트레칭까지 되었다. 과녁과 화살이 일치가 되도록 노려봐야함도 묘미였다. 시력 집중, 정신 집중,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바로 그 시작이었다. 발 디딤부터 활을 얹고, 걸고, 당기고 잔뜩 힘을 실은 손가락을 펼쳐 화살을 날려 보내기까지의 연결동작이 한 모양새가 되도록 하는 품새 잡기가 만만찮았다. 만만찮았지만 점점 익숙해지자 독특한 멋도 느껴지고 유려한 춤이 될 것 같았다.

 

화살이 과녁판에 명중 될 때의 탕! 가끔 관중(貫中)이 될 때의 탕! 일순에 피로와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그러나 과녁을 넘어가거나 빗나가서 풀밭에 흩어져 꽂히기도 한다. 한 순()인 화살 5개를 쏘고 나면 팀원이 함께 과녁 주변의 풀밭으로 가서 땅에 박힌 화살을 찾아와야 한다. 여기에도 안전을 위한 규칙과 예절이 있다. 기다려야하고 협동해야하고 곁에서 서로서로 대화도 나눈다. 나이의 많고 적음은 사라지고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어 도란도란, 정이 깊어졌다. 서로의 품새를 보고 지적도 해주고 응원도 해주면서 교육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서툴고, 마음같이 되지 않아 이론만큼 실제 행동이 따라주지 않았지만 내내 즐거웠다.

유독 피부가 약한 나는 각주에 눌려 손가락이 벌겋게 부풀어 오르고, 활줄에 긁혀 손등에 멍이 들고, 살이 튕기면서 손톱까지 금이 가서 핏물이 배어나긴 했지만 못 견딜 만큼은 아니어선지, 그럴수록 오히려 운동을 한다는 기분이 솟았다.

23일이 금방 가버렸다.

모처럼 둘러싸인 소나무 숲과 잘 다듬어진 활인정의 초록에 쌓여 푸른 하늘에 둥실 떠있는 구름까지도 마음의 여유를 찾게 하고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다. 간간이 오락가락하는 비 또한 불편한 것이 아니라 비 온 뒤의 쾌청과 사이사이의 휴식을 더욱 상큼하게 해주었다. 거기다 비만걱정 없는 건강식까지였으니, 온갖 병()아 물렀거라!

태권도가 국가브랜드가 되었듯, 김치가 일본 것일 수 없음과 같이, 국궁 역시 우리가 지켜 나가야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긴다. 지금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떼를 쓰는 일본을 보면서, 조상의 얼이 스민 어느 것 한 가지도 더 이상 잃으면 안 되겠다는 절실함과 각오를 우리 모두 다졌으면 하는 마음이 더욱 간절하다.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되어서 뻐근했던 등허리도 하루 밤 자고나니 싹 나아버렸고, 멍들어 얼얼하던 손등의 멍 자국도 희미해졌다. 우리의 전통인 활쏘기, 국궁! 우리의 문화유산을 익혔다는 뿌듯함으로 몸도 마음도 상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