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천학의 수필방

맛있는 배우 유해진

천마리학 2012. 9. 27. 10:15

 

 

 

맛있는 배우 유해진

 

 

오늘 아침 그의 소식을 들었다. 배우 유해진.

그는 좋아하는 커피를 묻는 펜들에게 아메리카노를 좋아하고 한 가지 더, ‘아메리카예쓰라고 말 개그를 했다고 한다. 이번 추석에 개봉할 영화 간첩의 제작보고회장에서다. 이어 배우들이 우민호 감독을 무뚝뚝하다고 하자 그는 공통된 의견이라면서 앞으로는 뚝뚝하라고 연속개그를 날려 분위기를 살렸다고 한다. 그래. 맞어. 그에게는 유머감각도 있었지. 영화 속에서 보는 그의 능청스러움과 넉살과 흔연스러운 사투리구사 등이 충분히 그런 짐작을 하게 한다. 사소한 이런 일을 들추며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진정한 배우라는 것을, 그의 연기에 젖어들어 좋아한다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맛있는 배우다.

 

그가 김혜수와 연인관계라는 것이 공표 되었을 때 놀라움과 함께 대뜸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예감이 뒤따랐다. 이 무슨 망발이람! 남의 좋은 일에 재 뿌리는 격이라니. 고쳐 생각하려 했지만 지워지지 않았다. 미안하기보다 안쓰러움이 앞섰다. 오히려 설령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그가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부터 생겼다.

주유소습격사건에선가 그를 처음 본 것 같은데, ‘공공의 적’ ‘마파도’ ‘타짜도 거치고, 최근에 이끼가 내가 본 그의 마지막영화다. 외국에 살게 되어서다.

그는 언제나 조연이었지만 진짜 배우였다.

 

 

늘 어수룩해 보이고, 촌스러운 모습. 물론 배역 탓이겠지만 매번 바뀌는 조연역할을 능청스럽게 해낸다. 주연이라면 좀 부자연스러워도 덮어나가겠지만 조연은 다르다. 아예 잊혀져버리거나 눈의 가시처럼 걸리적거리게 된다. 그가 해내는 역할은 영화 속 인물이 아니라 실제인물처럼 느껴진다. 이웃집 총각 같기도 하고, 주막거리 아저씨 같기도 하다. 그토록 진지하게 몰입한 연기가 코믹하기도 하다. 그의 연기는 조연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면서 영화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양념이었다. 본 스토리와는 관계없이 그가 나오는 장면만으로도 웃고 울 수 있다. 평소에 주연 위주로만 보던 영화보기 취향이 달라졌다. 그가 나오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어떤 영화는 주인공보다 그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는다. 그는 내공이 쌓인 진짜 배우였다. ‘이끼를 보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하였다.

 

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던 초기 무렵, 어느 TV의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그를 보았다. 출연자들을 물탱크 주변의 위 나무판에 빙 둘러 앉혀놓고 질문을 한다. 틀린 대답을 하면 나무판을 떨어트려 물속으로 풍덩 빠지게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거기서 아, 그 조연배우! 이름이 유해진이었다. 솔직히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촌스러운 외모에 이름조차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남자이름이면서 여자이름도 같았다. 매우 수줍은 사람이면서 안으로 담긴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눌한 듯, 조용한 톤으로 하는 그의 말은 좀 성글면서 절대로 남의 말을 앞서거나 가로채지 않았다. 겸손했다. 남다른 색깔을 느꼈다.

 

지금도 확실히 모르지만 왠지 그는 충청도사람일거라고 단정했고, 은근히 수줍음 타는 스타일이라고 짐작했다. 그런 생각은 영화 속에서 만나는 그의 일반적인 배역 때문인지 아니면 그의 인상 때문인지 모를 일이지만 배역이 맡겨질 때는 풍기는 인상을 중요시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그의 실제 됨을 유추해볼 뿐이다. 그 유추는 앞서가기보다 한 걸음 뒤쳐져가는 타입, 덜 똑똑한 것처럼 보이나 속이 깊은 사람이라는 것을 눈치 채었다. 그가 영화 속에서 구사하는 사투리들과 어눌한 듯 한 몸짓에서 남다름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흡인력 있는 빨판이 되었다.

없어서는 안 될 조연, 주인공 못지않게 영화의 한 축을 들어 올리는 조연, 주연과 영화를 튼실하게 뒷받침해 주는 배경이면서 분명한 색깔로 영화보다 오히려 더 기억에 남는 조연등 나 나름의 평가가 붙었다. 그에 대한 신뢰가 커졌다. 그러던 차에 느닷없이 김혜수와 연인관계라는 발표를 접하게 되었고 대뜸 이루어지지 못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김혜수에 대해서는 파격적이고 색깔이 분명한 건강미의 여배우라는 것 외에는 모른다.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것은 뜻밖이었다. 그것은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의미이고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그만큼 두 사람의 색깔이 너무나 다르다. 남녀의 만남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좋은 사람 만났으니 잘 됐다!거나 축하해주는 마음이 아니라 오래지않아 맞이하게 될 이별에서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먼저 가지게 되다니. 유해진, 그에게 미안하고 걱정되고 안쓰러웠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 유해진씨는 왁자하게 떠올랐다. 겉모습과는 달리 그는 매우 예절이 바르고, 여러 분야에 걸쳐 박학함과 동시에 배려가 깊은 신사라는 것 거기다 겸손하다는 것 등등 미녀와 야수의 만남이라고 비유되기도 하면서 화제의 중심이 되어 그의 숨겨진 인간미, 품격, 예술에 대한 높은 안목과 지적수준까지 매일 업그레이드 되었다. 그런 현상은 곧 많은 사람들도 나처럼 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시시콜콜 왁자함이 못마땅했지만 어느 구석엔가 나도 그의 인간됨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반갑기도 하고 뜨악하기도 했다. 반가운 것은 그의 보이지 않는 사람됨이 높이 평가되는 것이었고 뜨악한 것은 끝까지 이루어지지 못할 것 때문이었다.

 

 

나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은 외모나 드러나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실수를 곧잘 저지른다.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다. 특히 드러나는 연예인의 경우 그 칼질은 더욱 심하다. 조심조심 지켜보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김혜수와 이별이 알려졌다. 빗나갔으면 좋을, 빗나갈 것이라는 예감이 적중했다. 그의 상심이 걱정되었다. 큰 상처가 되지 않기를 기원했다. 사실 연인과 헤어졌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어쩌면 더 먼 장래를 생각하면 잘된 일일수도 있다. 또 어쩌면 나중에 생기기보다 일찍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서로에게 잘 된 일일수도 있다. 그렇게 도움도 안 되는 위로의 마음을 가졌다.

그때쯤, 어떤 기자가 그에게 쓴 장문의 글을 보았다. 그도 겉모습으로 평가하고 무성의하게 그를 대했고, 대충 넘어가는 실수를 범했으며 알고 보니 너무나 진국인 것을 알아보지 못했음을 사과하면서 기자라는 직업의 속성 때문에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을 뿐 당신은 결코 루저가 아니다고 하며 다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한번 만나서 진솔하게 술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 거절하지 말고 받아주십시오하고 멋지게 끝마치는 글이었다. 그 글을 읽고 기분이 좋았다. 용감하게 자신의 실수를 드러내며 사과하는 그 기자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자의 말처럼 유해진 그가 이별의 아픔과 모든 세상의 빗나간 시선으로부터도 하루 빨리 벗어나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는 이상하게도 그와 가수 장사익을 겹쳐본다. 유해진을 생각하면 장사익의 노래가 떠오르고 장사익의 노래를 들으면 유해진이 떠오른다. 그것이 너무 강해서 장사익의 노래를 눈을 감고 들어보기까지 했다. 여전히 유해진이 떠올랐다. 그의 노래실력이 어느 정도인진 모르지만 장사익의 노래를 눈을 감고 듣는 동안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사람의 인상이, 이미지가 이렇게 비슷한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유해진의 노래하는 모습도 한번 보고 싶다. 두 사람이 서로 닮지도 않았고 하는 일도 서로 다른데 왜 두 사람의 이미지가 항상 겹쳐 떠오를까? 물론 뚜렷한 이유는 없지만 아마 두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가 같아서일 것이다. 두 사람 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두 사람이 다 충청도 사람일 것 같고, 두 사람이 다 진솔한 연습으로 내공을 쌓아가는 타입일 것 같고, 두 사람이 다 토속적인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그가 다시 평온을 되찾아 밝은 모습이어 좋다. 이번 영화에서는 또 어떤 끼를 발휘하며 주인공 제치는 조연을 소화해낼까. 사뭇 기대된다.